학생의 학내 거버넌스 참여는 법인화 전후 학내외에서 대학의 의사결정기구에 대한 규정에 학생 참여가 명시되면서 본격화됐다. 과거에는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며 느꼈던 불편사항에 대해 본부와 논의하는 자리인 교육환경개선협의회가 학생이 학교에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주된 창구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 반값등록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했던 지난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 등록금에 관한 규칙’을 발표한 후 서울대를 포함한 모든 대학에 학생이 참여하는 등록금심위위원회(등심위)가 구성되면서 학생의 학내 의사결정기구 참여 확대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현재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는 학내 의사결정기구는 등심위와 장학·복지위원회, 시흥캠퍼스 대화협의회와 기숙사프로그램위원회다. 등심위에는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포함한 학생 심의위원 3명이 참여하며, 장학·복지위원회에는 학부생과 대학원생 대표 각각 1명이 참여 중이다. 또 시흥캠퍼스 사업 전반에 대해 심의하는 시흥캠퍼스 대화협의회와 시흥캠퍼스에 들어설 기숙사의 구성, 역할에 대해 심의하는 시흥캠퍼스 기숙사프로그램위원회에도 학생대표가 각각 1명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평의원회에는 학부생 대표와 대학원생 대표 각각 1명이 참관인 자격으로 회의를 참관하고 있다.

학생의 거버넌스 참여를 둘러싼 논의

최근에는 평의원회를 ‘대학의회’로 개편해 학생들이 학내 거버넌스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성낙인 총장은 기존의 평의원회를 교수, 직원, 학생을 비롯해 동문과 지역주민, 정부인사를 구성원으로 포함하는 대학의회로 확대할 것을 약속했다. 취임 후 성낙인 총장은 “평의원회의 인적 구성이 교수와 직원으로 한정되다보니 다양한 학내 구성원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었다”며 “대학의회에 학내외 인사를 폭넓게 포함시켜 대학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의사를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대학의회를 공약으로 내건 이유를 밝혔다.

학생들은 대학의회 공약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대학의회의 구성과 운영방향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주무열 총학생회장(물리천문학부·04)은 “대학의회 설립 자체는 대학 운영의 민주성 제고를 고려했을 때 환영할 만하지만 대학의회가 설립된다 하더라도 인적 구성과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학생들과 논의해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대 김상연 학생회장(사회학과·12)은 “직원과 학생들의 정당한 참여 지분을 확보하면서 외부 사회와의 연계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의 대학의회 도입은 찬성한다”면서도 “대학의회가 도입된다 할지라도 여전히 이사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남을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대학의회의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학생사회는 학생의 학내 거버넌스 참여의 필요성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쌓는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 3월 대학행정자치연구위원회와 대학원 총학생회는 「대학 거버넌스 구조에의 학생 참여 필요성」이라는 제목의 학생자치단체 공동연구보고서를 발간해 학생의 학내 거버넌스 참여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학생이 학내 거버넌스에 참여할 경우 제기될 수 있는 행정적 전문성이 낮다는 우려와 학생이 다른 대학의 주체들에 비해 학교에 단기간 머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학생은 행정 절차를 직접 체감하는 집단으로 학내의 사안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며 “학내 사안에 관해서는 ‘학생’의 지위에서 가장 전문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논박하며 학생의 학내 거버넌스 참여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주장했다.

학생의 학내 거버넌스 참여, 아직까지는 미완성

물론 학생들의 학내 거버넌스 참여 요구가 항상 긍정적으로 검토된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의 학내 거버넌스 참여 확대 요구는 시흥캠퍼스 대화협의체 같이 수용된 부분도 존재하지만 재경위원회나 총장 선출 과정에 학생 참여가 배제된 것처럼 수용되지 않은 부분 역시 존재한다. 학생들은 시흥캠퍼스의 강의 및 교육 활동에 대한 심의를 담당하는 교육프로그램위원회에 학생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을 요구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한 평의원회에 학생 대표를 참여시키라는 요구와 서울대의 예산 및 재정에 대해 심의하는 기구인 재경위원회에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라는 요구는 해당 내용을 담은 법인화법이 개정되지 않는 이상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학생들이 학내 의사결정기구에 참여한다 해도 해당 기구의 운영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장학·복지위원회에 대학원생 대표로 참여하고 있는 임재철 위원(생명과학부 석사과정·11)은 “지난해 10월 위원으로 임명됐지만 임기 동안 한 번도 회의가 열린 적 없었고 본부에 언제쯤 위원회가 열릴지 문의했지만 아직 정해진 바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며 “해마다 한두 번 위원회가 열린다고 들었지만 지난해 3월 이후로 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학복지과는 “최근에 장학·복지위원회에서 심의할 안건이 없어 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며 “관련 규정에 주기적으로 위원회를 열어야 한다는 조항은 없지만 이번 상반기에 현재 장학과 복지에 관련된 사안들을 위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시흥캠퍼스 대화협의회에 참여 중인 김두현 씨(행정대학원 석사과정·12)는 “시흥캠퍼스 대화협의회는 매달 1번 열리는 것이 명문화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일 대화협의회가 열리기 전까지 8개월 동안 대화협의회가 열리지 않았다”며 “대화협의체에서 본부는 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시흥캠퍼스 관련 사안을 논의한다기보다는 시흥캠퍼스 사업의 현황을 통보하는 식”이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학생이 대학의 정당한 주체로 서려면

학생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학생의 학내 거버넌스 참여가 확대되기 위해서는 대학 운영을 위한 하나의 주체로 학생을 인정하려는 본부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시흥캠퍼스 신축기숙사 TF팀 ‘세움단’ 장인하 단원(교육학과·09)은 “본부가 학생을 대학 운영의 한 주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단순한 민원인이라고 바라보는 점이 학생이 학내 의사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대학 운영의 민주성을 달성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말했다. 김상연 학생회장은 “본부는 대부분의 학내 의사결정과정을 그저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서비스 정도로 여기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학생들은 그저 서비스 수요자로서의 의미만을 갖게 된다”며 “본부가 대학의 공급자로서 모든 것을 결정하면 학생은 일방적인 소비자로서 이를 받아들인다는 틀에 박힌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학생들은 학생의 거버넌스 참여를 확대하라는 목소리를 낼 때 교수와 직원과의 협력이 학생들의 의견을 관철시킬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무열 총학생회장은 “본부가 시흥캠퍼스 설립안을 내놓았을 때 학생들과 교수들이 뜻을 모아 의견을 낸 결과 학내 교육단위의 이전이 없고 의무 기숙형 대학도 아닌 방향으로 시흥캠퍼스 사업 계획이 정해진 것이 좋은 예”라며 “학내 각 주체의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 다른 주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학생의 거버넌스 참여 영역을 확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상연 학생회장은 “이사회의 독재적인 권력 행사로 교직원들마저 학내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돼있는 지금, 교직원과 학생은 함께 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지난 총장선출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도 학생들은 배제한 채 교직원의 의견만 반영됐다는 점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평의원회와 교수협의회는 이러한 학생들의 주장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평의원회 정근식 의장(사회학과)은 “평의원회에 학생의원을 참여시키는 방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총장선출에 있어 학내 구성원들의 역할을 수렴하는 절차인 정책평가단에도 학생들이 참여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교수협의회 조흥식 회장(사회복지학과)은 “현재 일부 교수만 참여하는 현행 이사회 인적 구성에서 교수·직원·학생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인화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며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에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라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인화법이 모두 통과될 수 있다면 학생이 학내 의사 결정에 관여하는 범위가 확대될 것이고, 이는 진정한 대학 운영의 자율성과 민주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학생들은 학생들의 학내 거버넌스 참여 확대를 위해서는 학생사회가 당위성만을 주장하기보다 실질적인 행동에도 나서야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주무열 총학생회장은 “법인화법 개정안과 학생의 학내 거버넌스 참여 확대의 안건들이 실질적인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각 단과대 학생회 및 타대학 학생회와 연계해 지속적으로 주장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연 학생회장은 “학생회 위원들이나 학생회 선거 후보들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기반으로 학생회를 이끌어나가게 되는데, 이러한 고민이 대중적인 움직임을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과거 2011년 본부점거를 통해 본부-총학 간의 대화협의체가 만들어졌고, 2013년 시흥캠퍼스 천막투쟁을 통해 기숙사프로그램위원회에서 학생들의 참여권이 보장됐다는 것을 볼 때, 단순히 학생대표들의 의지뿐만 아니라 학생회의 힘을 이루는 대중적인 합의와 움직임을 조직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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