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치현 학술부장

가치관 대결로 전환된 정치적 대립 
상대에 대한 혐오로 책임정치 어려워져 
다른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 필요해 
다양한 토론으로 정치 쇄신 이어져야

“그래서 너는 진보야, 보수야?” 평소에는 모임에서 정치 얘기가 오가는 것이 싫다던 친한 친구가 지난 술자리에서 던진 물음이다. 어려서부터 같이 어울려왔던 그는 성인이 된 이후 정치적 입장 표명으로 인해 친구들 간의 사이가 나빠질 가능성을 염려했다. 그런 그가 이분법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은 무엇에 의해서였을까?

정치적 입장을 보수와 진보 양 진영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면, 2008년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양 진영의 대립은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세월호 참사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는 듯하다. 특히 SNS를 통한 의견 교환이 대폭 증가하면서 서로에 대한 비판이 격화돼 인신공격으로 이어지는 일이 허다해졌고,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넘어 서로를 혐오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건강한 민주사회에서 각기 다른 의견들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될 수 있으며, 나아가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이런 분열을 수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양 진영의 대립은 이익의 충돌이라기보단 가치관의 충돌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한 진영에게 2008년 촛불집회나 세월호 1주기 추모 집회에 대한 경찰의 강경진압은 정권의 소통 부족을 넘어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는 적극적 행위로 비춰졌고 이는 정권의 선거개입이라는 사태로 재확인되기도 했다. 반면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진영의 지지자들은 국가의 권위에 대한 부당한 위협과 이에 따른 사회적 불안정성을 우려했다. 나아가 국가 체제의 불안이 현 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레드콤플렉스(red complex)도 한 몫을 했다. 이처럼 양 진영의 지지자들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여기며 서로를 결코 허용해선 안 되는 집단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 내 주변의 사람들을 ‘허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요구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절차의 결과를 우려해 정치적 입장이 감춰져야 할 필요가 생기기도 하는 듯하다.

이와 같이 허용할 수 없는 행위를 자행하는 상대에 대한 적대감은 도덕적 판단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느끼는 본능적 혐오와 같이 각 진영의 지지자들은 상대방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 정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데,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결국 그로 인해 자신이 혐오하는 정당을 지지하게 되진 않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제3당을 지지하는 투표가 사표(死票)가 될 위험이 농후한 상황에서 양당제가 완전히 고착화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선거에 지더라도 제1야당으로 굳건한 지위를 지킬 수 있는 상황에서 거대 정당이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근본적 쇄신에 힘쓰게 될 인센티브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층(浮動層)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해진다. 변화할 수 있는 표심(票心)은 정당들을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그럼에도 그런 부동층을 설득하려면 정치집단의 변화가 필요하며 이를 이끌어내는 것은 집단 내부로부터의 노력이다. 이런 노력에는 중요한 가치를 훼손하는 상대방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겠지만 다른 시점에서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쇄신을 도모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혐오를 간직한 채 대립이 계속된다면 모든 정치적 사안에서 크나큰 비효율성이 발생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지나친 적대감 자체도 해소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사항은 서로의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을 이해하는 일일 것이다.

크나큰 정치적 실패를 불러올 수 있었던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선거에 승리해 온 거대여당을 지켜봤을 때, 양당정치체제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와 동시에 진행되는 이분법적 대결구도는 민주사회의 기본적 요건인 다양한 의견의 제시를 억압하는 폐쇄적 정치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혐오’ 자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으키는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더 다양한 논쟁의 장을 열 수 있도록 시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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