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가 사라졌다. 뉴욕의 세계적 보석상 티파니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관악구 봉천4동에 있는 극장 '티파니 시네마'가 지난 8월 29일 영업을 종료했다. 신림력 근처에 초호화 시설을 갖춘 대형 복합영화관이 개장했고, 서울대입구역 근처에도 대형 쇼핑몰과 복합영화관 공사가 한창이다. 티파니는 이들과의 경쟁에서 패배를 예감하고, 일찌감치 백기를 들고 투항해 버렸다.

 

1996년 개장한 이후로, 티파니는 영욕의 세월을 보냈다. 330석 규모의 개봉관 2개로 출발했을 때만 해도 관악 주민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영화 한 편 보려면 종로나 강남으로 나가야 하는 불편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장은 영화만을 상영하는 곳이라는 개념에서 탈피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합영화관이 속속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기대치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복합영화관에 맞서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티파니는 몇 년 후 2개의 상영관을 4개로 나누게 된다. 그 결과 한꺼번에 상영할 수 있는 영화 수는 늘어났지만, 작아진 화면을 보느니 차라리 비디오방에 가겠다는 사람도 늘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시 종로와 강남으로 떠났지만, 여전히 티파니를 고집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예약이 필요 없었다. 지정석에 앉지 않아도 되었다. 불현듯 영화를 보고 싶을 때 불쑥 찾아가도 언제나 극장은 한산했고, 원하는 자리에서 호젓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좁은 극장 안에 있다 보면 모르는 사람도 왠지 낯익은 느낌이 들었고, 영사실에서는 알프레도와 토토가 영사기를 돌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 어떤 아이는 부모와 함께 난생 처음으로 영화를 보았고, 몇몇 연인은  처음으로 손을 잡거나 입을 맞췄으며, 혼자 앉은 몇몇은 청춘의 아픔과 고독을 어둠 속에 묻으며 세월을 견뎠다. 티파니는 그렇게 복합영화관과는 다른 방식으로 극장의 개념을 바꿔 나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티파니는 영화를 소비하는 데 머물지 않고, 꿈과 추억을 생산할 수 있는 ‘시네마천국’이었다.

 

티파니가 초대형 복합영화관에 밀려난 것처럼, 언제부턴가 우리 주위에 있던 작은 것들이 사라져 간다. 살아남기 위해서 몸집을 불려야 하는 현실을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계속 이렇게 큰 것만을 추구하다가는 공룡처럼 제 덩치를 이기지 못하고 영영 멸종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든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저자 E. F. 슈마허는 “인간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집단 속에서만 인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작은 것이고, 작은 것이 훌륭한 것이며, 거대함을 추구하는 일은 자기 파괴로 통한다고 말한다. 낡고 허름하고 좁았지만, 그래서 티파니는 인간적이었다. 작고 좁은 탓에 사람들 사이는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랬던 티파니가 사라졌다. 티파니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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