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하영 기자
사회부

“시급 4,860원, 식대는 미지급.”

내가 생애 처음 작성한 근로계약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수능이 끝난 후 입학까지 한참 남은 시점에서 극도의 ‘잉여로움’을 견디지 못해 동네 수학학원에 찾아가 지원서를 냈다. “수습기간 3개월 동안은 시급 4,000원인 거 알죠?” 예비대학생을 헐값에 부려먹게 됐다는 흡족함으로 학원 원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주5회,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일해 받은 일당은 4만원도 채 안 됐다. 마음껏 쓸 수 있는 액수는 아니라서 좀 불편하긴 했지만, 부모님의 경제적인 지원도 있고 전적으로 먹고 사는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어서 생계에 위협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된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서울은 가뜩이나 물가도 비싸다. 교육비나 주거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부담되는 것은 물론이다. 현재 시간당 5,580원, 월 116만원가량인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산정한 단신 노동자의 최저생계비(약 150만원)에도 한참 못 미친다.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지역 최소주거기준 주거비가 한 달에 60만원, 식료품비가 40만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최저임금만 받으면서 서울에서 살라는 것은 택도 없는 소리다. 최저임금이 노동자의 기본적인 생계조차 보장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계유지를 위해 마련된 제도가 정작 사람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취지에서 대상이 빠진 느낌이다.

참 편리한 평등이다. 애초에 노동자의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설정된 최저임금이 오히려 임금의 ‘최고’선으로 작용해 저소득 노동자들의 임금을 하향평준화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실제로 많은 사업장에서는 최저임금을 실질적 최고임금으로 여기고 있다. 2년 전 최저임금도 안 되는 시급을 주며 나를 고용했던 학원 원장은 이 시대 많은 사업주들의 전형일 뿐이다. 노동자들이 최저임금만으론 최저 생계비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은 뒷전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저’임금이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최저임금이다. 이젠 생활임금이 여러 지자체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하니, 당초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취지가 달성되리라는 기대를 희미하게나마 걸어본다. 이제는 최저임금이 편리한 평등이 아니라 조금 불편해도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평등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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