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우리 사회의 특정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한국 사회 특유의 ‘사회문제’가 응축된 결과로 인한 또 다른 ‘사회문제’인데, 여기서 서울대를 원인제공자로 지목하고 서울대를 폐지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은 원인-결과가 뒤바뀐 채 이루어지는 논의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입시과열, 사교육비의 문제가 꼭 서울대에 들어오고자 하는 데에서 비롯한 것일까? 서울대가 없어진다면 다른 대학들(예컨대 연․고대)이 그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는 게 상식적 예측이다. 그러한 예측이 이루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특정 교육기관에 귀속시킬 수 없는 어떤 심각한 문제가 실재함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서울대 폐지론은 원인과 결과 뒤바뀐 논의
학벌 문제 해결 위한 ‘사회적’ 장치 찾아야
모든 정책 결정과 대안의 모색이 현실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할 때, 어떤 사회적 요인이 지금의 문제를 가져왔는가를 정확히 진단하는 일은 적절한 대안 모색에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이 사회학자는 고등학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각종 대학에 진학한다는 이 세계적인 진학률의 ‘사회적’ 원인이 무엇인가는 덮어둔 채, 그리고 이에 따른 고등교육의 질적 저하는 안중에도 없이, 마치 모든 입시과열경쟁 및 사교육비 문제가 서울대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데에서 기인한다는 인상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사회적’ 장치이다. 그 장치가 없는 한, 서울대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입시경쟁은 지속될 것이다. ‘학벌주의’와 ‘대학서열화’는 서울대학교 기타 세칭 ‘일류대학’이 존재하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개개인의 능력을 존중할 줄도 모르고 이를 차별화할 수 있는 별도의 사회적 장치도 갖고 있지 못하며, 오로지 출신 대학을 식별의 도구로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이 점은 문제의 핵심이 한국 사회가 다같이 풀어나가야 할 성격의 사회문제이지 결코 특정 교육기관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것임을 말해준다.
그간 우리 사회는 장기적이고 일관되게 수행되어야 하는 교육 문제를 너무도 빈번하게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빌미로 사용하였다. 어떤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느냐 하는 본질적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늘 눈앞의 사회문제에 대처하는 데에 급급했던 것이다. ‘서울대 폐지론’ 역시 이러한 단선적 사고의 산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더구나 일류 대학, 아니 초일류 대학의 육성이 국가 경제를 위한 핵심적인 과제가 되어야 하는 현 상황에서, 지식 산출과 연구자 육성을 목표로 하여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도 그런대로 성과를 보이고 있는 서울대를 없애자는 것은 국가를 위해서도 위험천만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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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
인문대 교수 ㆍ영어영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