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라보는 세상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
  • 김희엽 기자
  • 승인 2015.05.10 0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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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인 A 씨는 장애인용 엘리베이터 버튼이 터치식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사실 참 편하다고 했다. 손을 편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A 씨에게는 감압식 버튼보다 터치식 버튼이 한결 편하다. 또 터치식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된 요즘 세상이 아주 좋다고 했다. 하지만 의수를 착용해 터치식 버튼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엘리베이터는 어떻게 다가올까. 그들을 생각한다면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는 감압식이어야 한다. A 씨는 이를 ‘가치의 충돌’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각기 다른 나이, 성별, 특성을 가지고, 다른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들이다. 때문에 각기 다른 가치를 갖고 산다. 우리는 살면서 서로 다른 가치를 맞춰나가며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에 『대학신문』은 다른 사람이 돼 보지 않고선 보이지 않는 그들의 시선 안으로 들어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공유하고 불편함을 느껴보고자 한다.

본문은 면담을 통해 재구성 된 상황이다.

 

“왠지 모르게 그래요”

임신부 서혜인 씨는 최근 불러오는 배가 왠지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감정까지 든다. 주변 사람들은 ‘잉태의 기쁨’ ‘행복’이라고들 하지만 밀려오는 창피함은 어쩔 수 없다. 평소 그냥 지나치던 건물 유리 앞에서도 멈춰 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데 여념이 없다.

아이를 가졌다고 해서 집 안에만 있는 것보다는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는 의사의 말에 큰맘 먹고 문 밖을 나섰지만 가까운 거리의 카페에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주기적으로 유축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사용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 할 수 없이 화장실에 가서 유축기를 사용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생각에 괴롭다.

 

“어른들은 절 못 보는 걸까요?”

여섯 살 승호는 밖을 나갈 때면 엄마의 손을 놓질 않는다. 몸집이 작은 승호에게는 세상 모든 것들이 위험하게만 느껴진다. 지하철을 타면 손잡이에 손이 닿지 않아 엄마 옷자락을 잡거나 좌석 양옆의 봉을 잡는다. 하지만 만원 열차에서는 이조차도 힘들다.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들이닥쳐오고 승호는 그 안에 갇혀버린다. 또 어른들의 손 높이와 승호의 눈높이가 비슷해서 가방이나 손에 자꾸 얼굴이 치인다. 가끔 승호를 친 줄도 모르는지 툭 치고 저 멀리 가있을 때도 있다. 길가를 거닐 때는 담배 든 손이 얼굴 가를 스쳐 크게 데일 뻔한 적도 있다.

 

“책을 뽑아 드는 느낌, 그게 참 좋아요”

지체장애인 김형우 씨는 척추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타야만 이동이 가능하다. 그의 휠체어는 종종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를 정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학내에 새 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좋은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기도 하지만, 화려한 경관만큼이나 늘어난 계단 앞에서 그의 휠체어는 우뚝 멈춰 서고 만다. 또 학교 주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카페 등의 문화공간은 섭렵한 지 오래지만 가끔씩은 평소와 다른 곳도 가보고 싶다. 조별 과제가 있는 수업을 들을 때 조원들과는 특정 장소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

책을 좋아하는 김형우 씨, 그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글을 읽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정신 과정을 즐기기 때문만은 아니다. 책 냄새, 책장을 넘기는 느낌, 서고에서 책을 뽑아 보는 순간의 기분. 형우 씨가 좋아하는 것은 이 모든 사소한 행위들까지 합친 것이다. 그러나 학교 도서관은 통로가 좁고 책꽂이 높이도 높아 형우 씨가 이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물론 도서관에서 그를 배려한 도우미를 배정해주지만 책에 관련된 또 다른 즐거움을 놓치는 것 같아 아쉽다.

 

“이 색이 저 색이고, 전부 외웠어요”

장수진 씨는 미술학도다. 어릴 적부터 미술을 좋아해 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지만 처음 본인이 적록색맹임을 알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색 감각을 훈련하는 등 남다른 노력으로 전공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씩 물감에 색 이름이 붙어 있지 않으면 초록 계열과 빨강 계열을 섞어 쓸 때가 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름의 요령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가끔씩 급한 일이 있어 멀리 초행길을 가야 할 때는 아직 당황스럽다. 최근 급하게 멀리 나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택시가 잡히지 않아 지하철을 탔다. 낯선 곳에 가야 하는데 시간에 쫓길 땐 지하철 노선도가 평소보다 더 구분이 힘들게 느껴진다. 자가용이 있으면 좋겠는데, 운전면허 시험 중 색맹 테스트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아 면허를 딸 수가 없다.

 

“세상이 많이 변했어”

환갑을 넘은 박춘식 씨는 일하던 직장에서 은퇴하고 자식들도 전부 독립해 소일거리를 하며 살고 있다. 춘식 씨는 요즘 들어 본인이 많이 늙었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소싯적 그랬듯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젊은이들이 시간에 쫓기는 건지 마음이 급한 건지 옆에서 자꾸 툭 치고 저 멀리 올라가고 있다. 지하철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쳐다봐도 젊은이들은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손바닥만 한 휴대전화만 쳐다보고 있다. ‘나도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에 휴대전화를 들여다봐도 침침한 눈으로 깨알 같은 글씨를 읽기에는 역부족이고 무슨 기능이 있는지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도 춘식 씨는 본인이 나이를 먹고 늙었기에 누릴 수 있는 여유를 향유하고 있다. 여느 때처럼 종로를 거닐고 탑골공원, 낙원상가에 앉아 비둘기에 빵 조각을 준다. 그런 자신을 외롭게만 쳐다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젊은이들이 누리는 최첨단 문화에선 이제 한 걸음 물러났지만 낙원상가 뒤편에서 김 씨와 나누는 장기 한 판의 여유도 충분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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