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최저임금 보완 위해 등장한 생활임금

최저 생활 보장 못하는 최저임금

생활임금으로 보완하려는 지자체

5월 국회서 법적 근거 마련될 듯

“최저임금 높이는 견인차 되길”

▲ 삽화: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이직이 없어졌어요.”

생활임금 시행에 따른 변화를 묻자 성북구청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박용범 씨(61)는 주저 없이 답했다. 용역업체에서 일하던 박용범 씨는 성북구 도시관리공단에 직접고용되면서 2013년부터 생활임금 적용 대상이 됐다. 용역업체에서 일하면서 최저임금을 받았을 때보다 임금이 20~30만원 올랐다. 박용범 씨는 생활임금제가 실시된 후 노동자들의 사기와 책임감이 향상되고 직장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의 이직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부천시 장미공원에서 장미 가꾸는 일을 하는 부천시청 계약직 노동자 문종식 씨(69)도 마찬가지다. 작년 4월 1일부터 부천시가 생활임금 조례를 시행하면서 문종식 씨의 월급도 올랐다. 그는 “당초 이것저것 다 떼면 80~90만원이었는데 이젠 100만원 좀 넘으니까 기분이 좋다”며“나와서 일하니까 재미가 팔딱팔딱 난다”고 기뻐했다.

생활임금은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 등 야당들이 주요 선거공약으로 채택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시를 시작으로 서울시 성북구와 노원구 등 28개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생활임금제를 실시하고 있거나 실시할 예정이다. 이처럼 지자체를 중심으로 생활임금제가 확대되는 가운데 5월 임시국회에서 생활임금제의 법적 근거가 마련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앞으로 생활임금제의 확대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생활임금

생활임금은 저소득 노동자들이 인간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다. 생활임금은 최저임금이 노동자의 최저생계비조차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시간당 5,580원, 월 116만원가량인 현행 최저임금만으로는 4인 가구의 최저생계비(약 167만원)는 물론 최저임금위원회가 산정한 단신 노동자의 최저생계비(약 150만원)조차 충당하기 벅찬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재계가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어 최저임금을 획기적으로 인상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노동계와 일부 시민단체의 지지에 힘입어 생활임금으로 낮은 최저임금을 보완하자는 주장이 활기를 띠게 됐다.

생활임금은 지자체별 생활 여건과 재정 상황을 고려해 정해진다. 서울시의 경우 올해부터 ‘서울형 생활임금제’를 시행하기로 하고 각 자치구에는 매뉴얼을 통해 생활임금제 실시를 권고했다. 서울시는 올해 생활임금 수준을 시급 6,687원으로 정했다. 이는 최저임금보다 1,107원 많은 금액으로 서울시 평균가구원 수 3인을 기준으로 주거비, 교육비,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해 결정됐다. 서울시 일자리기획단 노동정책과 오현석 주무관은 “서울시의 경우 다른 지자체에 비해 교육비나 물가, 주거비가 높아 서울시에 사는 근로자는 최저임금만 갖고는 생활이 불가능하다”며 “서울시에 사는 근로자가 생활을 가능하게끔 하는 정책임금으로서 생활임금이 도입됐다”고 말했다. 생활임금이 현행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보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생활임금은 긍정적인 도입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상위법 위반’ 논란을 피하기 어려웠다. 지자체들은 대개 조례를 제정해 생활임금제를 도입하는데 상위법에 이와 관련해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는 근거 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여야는 지난 2월 헌법 제32조에 규정된 ‘국가의 적정임금 보장 노력’ 조항을 최저임금법에 명시해 생활임금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생활임금’이라는 용어가 ‘최저임금 이상의 적정임금’으로 조정됐지만 여야는 법 개정취지에서 이번 개정안이 생활임금 제도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것임을 명확히 밝혔다.

합의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지난달 말에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겨우 통과한 상태다. 논의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적정임금’의 범위를 둘러싸고 여야가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쟁이 일단락된 만큼 5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크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생활임금제를 도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예방할 수 있게 된다. 법적 분쟁을 우려해 생활임금제의 도입을 망설이던 지자체의 고민이 해결되는 셈이다. 이에 생활임금제가 지금보다 확대 실시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생활임금제를 둘러싼 논란

생활임금제 도입에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생활임금제 실시가 지자체의 재정난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에 따르면 생활임금제를 실시 중인 19개 지자체 대부분은 재정자립도가 전국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원구는 지방세 수입 대비 인건비 지출 비율이 약 141.9%로 지방세로 걷는 세금보다 인건비 지출이 높아 재정자립도 악화가 우려된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연합회 양근원 책임위원은 “지금도 지자체의 부채가 심각하고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생활임금을 도입하면 결국에는 포퓰리즘으로 귀결될 것”이라 우려했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재정 안정과 생활임금의 균형을 모색하기 위해 나름의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실제로 노원구는 열악한 재정 상황을 고려해 생활임금 적용을 점차 확대해왔다. 노원구는 구청 서비스공단 소속 노동자 68명으로 시작해 2014년엔 도서관 저임금 노동자들까지 대상을 확장했다. 작년부터는 기간제 근로자들에게도 생활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노원구청 일자리경제과 임미영 직원은 “재정상황을 생각하면 한 번에 모두 지원하기는 어려웠지만 시간을 두고 점차 대상을 확대해나가면서 재정 타격을 줄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낭비되는 예산을 줄여 생활임금 도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곳도 있다. 성북구청 일자리경제과 김지은 주무관은 “성북구는 행사 경비 등의 소모적인 경비를 줄이고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생활임금제가 오히려 지자체의 재정부담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참여연대 최재혁 간사는 “생활임금제 시행을 오래 한 미국 등을 보면 임금을 일정 수준으로 보장해주면 인건비는 늘 수 있지만 복지 비용을 비롯한 사회적 비용도 줄어들기 때문에 지자체나 정부의 총비용은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생활임금제가 호응을 얻으면서 민간기업으로 확산될 여지가 생기자 기업들은 불안한 눈치다. 사업주들은 생활임금으로 인건비 부담이 높아질까 걱정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생활임금제는 장기적으로 사업주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노동자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가 늘고 기업생산도 증가해 경제가 활성화되는 선순환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오현석 주무관은 “생활임금제는 최경환 부총리의 소득주도 경제성장론과도 부합되는, 내수를 살리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황선자 선임연구위원도 “소득주도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득 대비 지출의 비율이 높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주는 것”이라고 짚었다.

 

저소득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선

저소득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 이에 생활임금이 간접고용 노동자와 민간 기업 소속 노동자들에게도 확산되길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은 지자체가 공공부문 직접고용 노동자에 대해서만 생활임금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지자체 사업을 위탁하는 조건으로 용역업체가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게 한다면 자연스레 생활임금이 민간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노원구청 일자리경제과 임미영 직원은 “공공부문은 지자체장의 의지가 있으면 다 진행될 것”이라며 “민간도 강요는 할 수 없지만 인센티브제 등을 통해 유도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생활임금제의 확산이 최저임금제 인상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입장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중앙연구원 황선자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결정되는 생활임금제가 저임금노동자의 임금 하한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생활임금이 확산되고 높아지면 궁극적으로 최저임금을 높이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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