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사립대학 적립금을 둘러싼 논쟁과 해법

사립대 적립금은 매해 증가하는데

등록금 수준에 미달하는 교육 여건

관련법 지키지 않아도 불이익 없어

제재 강화와 정보 공개 필요해

 

최근 적립금을 넉넉하게 쌓아놓고도 학생들의 열악한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소홀한 사립대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과도한 적립금을 쌓은 수원대에 등록금 일부를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탄탄한 곳간을 놔두고도 학생들의 교육 환경 투자에 인색했던 사립대학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부당한 적립금 축적 관행에 경종 울린 수원대 판결

수원대 학생들은 낸 등록금에 비해 교육여건이 열악하다며 2013년 학교법인과 총장, 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등록금 환불 소송을 제기했다. 한 해 등록금 규모만 1,000억원이 넘고 적립금은 매해 늘어나는데도 학습 여건이 형편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원대에선 기본적인 냉난방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실험․실습 기자재가 부족해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날이 비일비재했다. 공과대학에선 공식 수업에서 정품이 아닌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인증에 문제가 생겨 실험실습 수업이 이론 수업으로 대체됐다. 컴퓨터 수 역시 학생 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어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연극영화학과의 경우 연습실이 없어 창고를 전전하면서도 공연을 한 번 할 때마다 등록금 외에 100만원 정도의 비용을 별도로 부담해야 했다. 수원대 등록금환불추진위원회 채종국 대표는 “1998년 학과가 처음 생긴 이후 연습실은 단 한 번도 수리가 되지 않아 발에 가시가 박힐 수 있는 마룻바닥에서 연습해야 했다”며 낙후된 시설을 꼬집었다.

이에 재판부는 수원대의 부당한 적립금 운용을 문제 삼으며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3년 동안 착공이 불가능한 건물의 신축공사비를 예산으로 잡는 등의 방법으로 907억원의 이월금을 증가시켰고, 아무런 사용계획이 없이 669억원을 적립하면서도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데 소홀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박주선․안민석 의원과 정의당 정진후 의원, 국회혁신교육포럼이 공동으로 주최한 ‘수원대 등록금 반환 판결 의미와 쟁점 분석 토론회’에서 법무법인 정평 하주희 변호사는 “실질적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던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고 이번 판결을 평했다.

 

적립금은 늘어나는데 교육 여건 개선엔 관심 없어

적립금은 사립대학이 특정 사업을 위해 쌓아두는 돈이다. 적립금은 사용 목적에 따라 연구․건축․장학․퇴직․기타 적립금으로 나뉘며 적정 규모의 적립금은 목돈이 필요한 장기 사업을 위해 필요성이 인정된다. 이에 대학들은 학생들의 등록금인 등록금회계와 기부금, 법인전입금 등으로 이뤄진 비등록금회계에서 일부 금액을 적립금으로 쌓아놓고 필요한 사업에 쓴다.

문제는 사립대학들이 거액의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교육 투자에는 소홀하다는 데 있다. 실제 사립대학의 적립금 규모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대학교육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 사립대학 156개교의 적립금은 2009년 7조797억원에서 2010년 7조6,677억원, 2011년 7조9,463억원, 2012년 8조153억원, 2013년 8조1,888억원으로 4년 새 1조원 이상 늘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교육 여건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수원대의 적립금은 2013년 3,367억원으로 전국 사립대학 중 4위였지만 학생들이 낸 등록금 중 학생 교육을 위해 지출한 비율인 교육비 환원율은 2011년 72.8%에 불과했다. 이에 수원대는 교육부의 대학평가 하위 15%에 해당하는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잠정 지정되기도 했다.

총학생회가 학교를 상대로 등록금 반환 소송을 준비 중인 청주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3년 청주대는 지방대 중 가장 많은 액수인 2,864억원의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전국 156개 사립대학 중 107위에 그쳤다. 학생 1인당 교육비가 낮다는 것은 장학금, 실험실습비 등 학생들에게 투자되는 금액이 적어 교육 여건이 좋지 않다는 말이다. 결국 청주대는 지난해 8월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 명단에 포함됐다. 청주대 박명원 총학생회장은 “등록금이 전국 대학 상위 15%에 해당하는 만큼 학교는 평균 이상의 교육을 제공해야 하지만 학생들의 등록금이 대형 토목공사나 조경 사업에 과도하게 투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무분별한 적립금 쌓기 관행은 수원대나 청주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2년 기준으로 누적 적립금이 가장 많은 상위 10개교 중 6개교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전국 대학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홍익대는 수원대, 청주대를 제치고 2013년 전국 사립대학 적립금 2위를 차지했지만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전체 대학 평균의 83%에 불과했다.

이러한 적립금 운용 실태에 대해 학생들의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지난 6일 이화여대, 성공회대 등 10개 대학 총학생회가 참여하는 ‘2015 대학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연석회의)는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사립대학들의 적립금 쌓기 관행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공회대 이동제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이 낸 등록금이 과도하게 적립되고 학생들의 교육 환경과 무관한 사업에 쓰이고 있다”며 “정부는 대학들의 부당한 적립금 운용에 대해 눈감아주지 말고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연석회의는 적립금이 과도한 사립대학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실효성 떨어지는 교육부 제재

교육부도 수수방관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교육부는 2000년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조항을 신설해 사립대학이 적립금 운용계획을 사전에 보고하도록 했다. 사립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적립금 중 실제로 사용할 금액과 새로 적립할 금액을 미리 계획하도록 해 무분별한 적립금 축적을 막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사립대학들은 교육부에 보고한 계획을 실천하지 않았다. 2013년 적립금 상위 20개교 중 15곳이 계획보다 적립금을 더 적게 사용했고 16곳이 적립금을 더 많이 적립했다. 이들 대학은 5,560억원을 인출해 사용하기로 계획했지만 실제로 사용한 금액은 3,761억원뿐이었다. 반면 적립한 금액은 목표치인 3,749억원보다 1,669억원이나 초과했다. 이에 대해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대학들이 사전에 보고한 운용계획을 지키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어 사실상 운용계획 보고 조항이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2011년 사립학교법은 교육부장관에게 운용계획과 달리 무분별하게 적립금을 운용하는 대학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사립대학의 적립금 운용 전반에 대해 교육부장관이 직접 시정 요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교육부장관의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제재 방안이 없어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무분별한 적립금 축적 관행이 개선되지 않자 정부는 2009년 사립학교법을 개정해 아예 적립금 규모를 제한하기도 했다. 등록금회계의 적립금을 건물의 감가상각비 상당액으로만 제한한 것이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의 사용내역을 명확히 하고 과다한 적립금이 등록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처사였다. 하지만 오히려 감가상각비만큼 적립금을 축적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실제로 사립대학 적립금은 법이 개정된 2010년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했고 이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건축적립금이었다.

이어 정부는 2013년엔 목적이 불분명한 기타적립금을 ‘구체적인 목적을 정하여 적립하는 특정 목적 적립금’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은 사립학교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했다. 기타 적립금은 사용 목적이 불분명해 그동안 사립대가 필요 이상의 적립금을 축적하는 데 악용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명목을 정해 적립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적립금 축적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규제는 아니다”고 개정안의 한계를 지적했다.

 

대학 운영의 자율성 vs. 대학의 교육 투자 의무

사립대학들은 교육부가 대학들이 장기 발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자 적립금을 쌓는 것 자체를 부당하게 본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이번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 직후 수원대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2009년 10대 명문 사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장기 비전을 세우고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계획 실현을 위해 적립 노력을 경주해왔다”며 적립금 축적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교육부가 대학들의 적립금 유용을 우려하며 적립금 사용 용도를 규제하는 것에 대해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사립대학들은 이미 적립금은 사용 목적이 정해져 있고 그에 맞게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소재 한 사립대 예산팀 A 씨는 “장학으로 분류된 적립금은 장학에만 쓰이는 등 적립금의 용도가 다 고정돼있다”며 “교육부가 사립대학의 적립금 사용 용도를 규제하는 것은 자율성 침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한편 사립대학 측은 미국 사립대학과 비교하면 적립금 규모가 결코 크지 않음을 내세우기도 한다. 사립대학들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적립금을 쌓은 하버드대의 누적 적립금은 35조6,320억원으로 우리나라에서 누적 적립금이 가장 많은 이화여대의 약 45배에 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A 씨는 “스탠퍼드대는 약 30조원의 적립금을 쌓고 매년 3~4%의 예금이자로 수익을 낸다”며 적립금 운영해 얻을 수 있는 과실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적립금 축적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사립대학들이 운영의 자율성만 내세우며 최소한의 교육투자조차 소홀히 해 교육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에 적립금을 왜 쌓는지, 쌓인 적립금이 용도에 맞게 쓰이는지 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용도가 불분명한 기타 적립금이 전체 적립금의 27%나 차지한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몇몇 대학은 이월·적립금 규모가 1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목적이 불분명한 기타적립금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불확실한 명목으로 적립금을 쌓아두지만 말고 교수 확충, 장학금 지원 등 교육 환경 개선에 써야 한다는 의미다.

또 미국 사립대학의 적립금 재원은 우리나라 사립대학과는 다르다는 점도 지적된다. 대학교육연구소 김삼호 연구원은 “미국 사립대학들의 적립금의 대부분은 설립 재단이나 외부 기업들로부터 오는 것이어서 우리와는 전제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은 66.6%로 미국 사립대학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이에 대학 운영에 필요한 비용의 상당 부분을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등록금으로 쌓은 적립금을 학생들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제재 강화와 함께 적립금 내역 투명하게 공개해야

결국 대학 운영의 자율성만을 중시하는 사립대학은 교육 기관으로서의 책임부터 다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하주희 변호사는 “사립학교법이 적립금에 대한 규제를 둔 것은 교육부의 감독을 통해 학생들의 교육 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다”라고 전했다. 대학 운영의 자율성만큼이나 학생들이 낸 등록금 수준에 맞는 교육투자를 해야 하는 대학의 책무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사립대학의 과도한 적립금 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립학교법의 개정 등을 통해 교육부의 제재가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은 규정을 지키지 않는 대학에 불이익을 가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사립대학들이 적립금을 교육 여건 개선에 사용하도록 유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감사를 통해 수원대의 적립금 운용 실태를 적발했음에도 경고나 시정 처분 등 경징계를 내리는 데 그쳐 부당한 관행을 묵인했다고 지탄 받은 바 있다.

사립대학의 적립금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점도 빠질 수 없다. 현재 학생들은 자신이 낸 등록금이 어떤 항목의 적립금으로 쌓였고 등록금 수준에 맞는 교육 투자가 이뤄졌는지 알기 어렵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 정책연구팀 강낙원 팀장은 “적립금이 어떻게 쌓이고 사용되는지 명확하게 공개된다면 적립금을 둘러싼 논란들이 해소될 수 있다”며 “대학알리미나 정보공시 등 학생들이 직접 적립금 내역을 볼 수 있는 장치들이 정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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