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 개강을 맞은 지난주에 학생들은 격조했던 친구들뿐 아니라 여러 명의 낯선 얼굴과 마주쳐야 했다. 화사한 개강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주름지고 그을린 얼굴로 학생회관 라운지 일대에 터를 잡고 있던 그들은 파업을 벌이고 있는 화물연대 노조원들이었다. 긴 파업기간동안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던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지난 2일 새벽 서울대에서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노조원들이 4일 오후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노조원들의 더부살이는 2박 3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그 짧은 기간동안 학내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들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씁쓸함을 안겨줬다.

수 주일째 신문지면을 장식하던 화물연대 파업의 당사자들이 서울대로 들어오면서 서울대 학생들은 파업이 ‘강 건너 불’이 아닌 ‘발등의 불’이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는 단지 학생회관 라운지 사용에 불편이 야기됐기 때문이 아니라, 대학 캠퍼스라는 일종의 해방구를 찾아들어온 파업 노동자들에게 학생들이 어떻게든 반응을 보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물연대가 학교에 들어온 이후 학내의 여론은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기보다 민원 제기 수준이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학내 여론이 파업에 대한 동조 혹은 반대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험악한 인상의 아저씨들이 두렵다”거나 “무식한 운전수들”에 동조할 필요가 있느냐는 식의 감정적 반응으로 크게 기울어진 것이다. 결국 그 속에서 ‘지입차주제’나 다단계 알선과 같은 갈등 현안들은 사라지고 “국가가 어려운데 툭 하면 파업이냐”와 같은 보수 언론들의 원색적 매도만 메아리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동연의 노조 진입 허용에 학내 부정적 여론 무시돼
라운지 사용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 했어야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더욱 큰 문제는 학생들의 여론은 물론 기본적인 절차도 무시하는 동아리연합회 등의 사업 진행 방식이었다. 노조 진입에 대한 학내 여론이 매우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라운지 사용을 결정한 동연이나 이를 논의한 총학생회, 각 단과대 학생회들은 학생들을 납득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4일 오후 노조원들이 학교를 떠날 때까지 학생회를 비롯한 어느 곳에서도 학생들에게 화물노조의 라운지 사용에 대해 의견을 묻지 않았다. 다만 “학우 여러분의 지지와 양해”를 부탁한다는 자보 몇 장과 “화물연대 파업 지지”라는 구호 몇 마디가 일방적으로 전달됐을 뿐이다.

특히 화물연대의 라운지 사용을 사실상 직권으로 승인한 동연은 이후에 학생들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할 책임이 컸다고 볼 수 있다. 화물연대의 라운지 사용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학생들은 동연의 이번 결정에 대한 불만과 함께 동연의 대표성에 대한 회의까지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동연 회장의 결정은 이후 동연 내부의 승인 절차를 거쳤다”며 절차적 정당성만을 항변하고 있는 동연의 대처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양해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동연에서는 명백히 자신의 결정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1년의 학생회 사업들이 대충 마무리되고 새로운 선거를 준비하는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학생들의 여론을 사업 추진의 필요조건으로 삼지 않는 일부 학생회의 구태가 올 가을 선거를 ‘무관심을 넘어 혐오감으로’ 끌고 가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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