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이 교실에서 시험을 치른 후 창 밖으로 몸을 던졌다. 이 학생은 곧바로 응급실로 이송됐고,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 날, 교감선생님이 전교생을 대상으로 교내 방송을 했다. “투신한 학생은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으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달 말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일이다. 이 학생이 치료를 마치고 학교에 돌아와 생활을 잘해 나갈 수 있을지 우려되는 한편, 이런 의문이 든다. 모든 학생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자 한 교감선생님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분의 말에 따르면, 투신한 아이가 학교를 잘 다닐 수 있도록 이해하고 보듬어주고 또한 투신을 목격한 학생들도 트라우마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머릿속에 불순한 상상이 떠오른다. ‘여러분, 이런 일로 동요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개인적 일탈의 문제일 뿐이에요. 면학의 분위기를 흐리고 학교의 규율을 깨뜨리는 일이 있어선 안 돼요.’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뉴스에서 종종 접하는 누군가의 자살 소식 마지막에는 으레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란 멘트가 따라붙는다. TV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이 우울증 또는 공황장애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경험담을 고백하기도 한다. 군대에서 발생한 각종 사고의 배경으로 정신질환이 거론되며, 며칠 전 발생한 예비군 총기사고의 가해자 역시 우울증과 인터넷 중독에 빠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언론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다수의 사건, 사고의 발생이 개인의 정신적 문제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너무나 쉽게 진단되는 듯하다. 문제가 있는 사람을 미리 격리하고 치료하지 못해서 이런 일들이 발생한 것처럼 보여진다. 그런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전제를 망각하지 않았다면, 다음과 같은 물음이 제기돼야 한다.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는 학생에게 어떤 스트레스가 가해졌기에 투신으로까지 이어졌을까.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어떤 고통이 더해졌기에 스스로 목숨을 버렸을까.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병에게 어떤 부조리한 상황이 발생했기에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을까.

학교, 일터, 군대 등 각 조직에 확립된 규율에 따라 정상-비정상, 이성-비이성, 합리-불합리가 나뉘고 이 기준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문제아, 트러블메이커, 고문관 등으로 낙인이 찍혀 배제되고 격리된다. 이들이 사고를 일으키면 전적으로 개인적일 문제일 뿐, 조직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은폐된다. 입시교육에만 매달리는 학교, 사람보다 이윤이 우선인 일터, 구시대의 폐습이 여전한 군대에서 정상적으로,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정상처럼 보이는 내가 오히려 미쳐버린 게 아닌지, 우울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윤리적인 것은 아닌지 한번 되새겨본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산업재해 사망률, 근무시간, 노인빈곤율, 저출산 등 1위, 최저임금, 청소년 행복지수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마치 주먹이 날아올 때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것처럼 사회적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 불편하고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그들을 유폐시켜 버리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 사회의 문제는 더 곪아갈 뿐이며, 날아오는 주먹은 거리를 좁혀올 뿐이다.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정신을 잃기 전에 두 눈 부릅뜨는 수밖에.

 

장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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