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지는 기초학문의 불씨,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약해지는 기초학문의 불씨,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 대학신문
  • 승인 2015.05.17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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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기초학문 진흥 좌담회

대학가에 학과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학령인구의 감소란 현실 앞에서 대학들은 학생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더욱 강조하게 됐고 자연스레 취업이 잘 되지 않는 기초학문 학과들은 통폐합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에 더해 교육부가 노동시장과 인력공급의 불일치를 막겠다며 산업수요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하며 기초학문이 고사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한편 2012년 서울대가 법인화되며 가장 우려됐던 점도 기초학문의 고사였다. 대학이 자본과 경쟁의 논리에 노출되면 돈 되지 않는 기초학문은 천대받기 쉽다는 전망 때문이었다. 이런 우려 속에서 기초학문 진흥은 서울대의 법적 책무로 규정됐다. 실제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 제31조(국립대학의 사회적 책무 및 국가의 지원)에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는 기초학문 등 필요한 분야의 지원·육성에 관한 4년 단위의 계획을 수립·공표하고 매년 실행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법인화가 충분한 논의 없이 추진되며 상기 조항은 명목에만 그쳐 실효성 있는 기초학문 진흥 방안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학신문』은 지난 14일(목) ‘서울대 기초학문 진흥 어떻게 할 것인가’ 좌담회를 개최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원로들에게 서울대의 기초학문 진흥 현황과 개선점을 물었다. 호암교수회관(125동)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김성복 전 석좌교수(자유전공학부), 이준구 명예교수(경제학부), 이준규 명예교수(물리천문학부)가 참가했고 이재열 교수(사회학과)가 사회를 맡았다.

 

기초학문이 무엇이길래

▲ "기초학문은 응용학문을 가능케 해" "학부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해야"

김성복 전 석좌교수(자유전공학부)

사진: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기초학문은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기초학문을 정의하는 과정이 진행됐다. 김성복 교수는 응용학문을 가능케하는 것이 기초학문이라며, 이에 대한 표현으로 ‘핵심적 학문’이 더욱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런 핵심적 학문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그 영역을 넓히곤 한다. 예를 들어 18세기에는 중요한 기초학문으로 분류되던 라틴어와 희랍어가 지금은 그 중요성이 크게 쇠퇴됐고, 경제학은 기초학문 중 하나가 됐다.

이준규 교수는 기초학문을 두 가지, ‘자연과 인간에 대한 기본적 성찰을 다루는 학문’과 ‘여러 학문에 기초적 도구가 되는 학문’으로 정의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철학, 물리학, 생물학 등이 전자에 속하고 수학, 경제학 등이 후자에 속한다. 반면 수학과 물리학을 도구로 사용하는 공학, 생물학을 도구로 사용하는 의학은 응용학문이라 할 수 있다.

이준구 교수는 “기초학문의 정의를 엄밀히 내릴 수 없다”며 그의 전공인 경제학의 예를 들었다. 경제학은 수학과 철학이 기초가 돼 형성된 학문이고, 경영학은 경제학이 기초가 돼 형성된 학문이다. 이런 학문의 계보에서 수학, 철학 등 가장 기초가 되는 학문은 분명히 기초학문이지만 경제학은 경영학의 기초가 되면서도 수학, 철학이 응용된 것이기에 양면성을 띤다.

이준구 교수는 기초학문의 정의에 얽매이기보다는 그 성격에 주목하기를 주문했다. 철학과 같은 기초학문은 응용학문과는 달리 사회의 직접적인 수요가 적어 그것만으로 유지되기는 어렵다. 때문에 이준구 교수는 “국립인 서울대가 그런 학문을 보호하지 않으면 고사한다”며 서울대에 기초학문 진흥의 사회적 책무가 있음을 설명했다.

이런 사회적 책무 때문에만 아니라 기초학문 진흥은 응용학문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필요하다. 이준규 교수는 “기초학문이 효율성 측면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라며 “물리학의 새로운 이론은 공학 등의 분야에 응용된다”고 말했다. 미국 프린스턴대 등 선진국 유수 사립대학이 기초학문 진흥에 힘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초학문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따라서 서울대가 기초학문 진흥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선 패널들 간에 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패널들은 지금 기초학문이 처한 현실이 녹록치 않다고 진단했다.

◇한국에서 기초학문을 한다는 것=법인화를 통해 설립된 기초학문진흥위원회의 핵심 사업은 기초학문분야 학문후속세대 선정·지원이다. 이는 박사과정 재학생과 박사과정 수료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 학문후속세대’가 될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대학신문』 2015년 5월 11일자, ‘대학원생은 학문후속세대?’) 실제로 2015년 사회대 교수 중 최종 학위를 국내에서 취득한 비율은 7.5%에 그친다. 오죽하면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태평양 너머를 보게 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대학신문』 2014년 5월 19일자, ‘한 대학원생의 죽음’) 또 이재열 교수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도 정규직 취업률은 인문사회분야의 경우 20% 내외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해도 사회에 심어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학생들은 선뜻 기초학문후속세대의 길로 발을 내딛지 않아 학문 하는 사람들은 사라져만 간다.

◇학생, 교수, 제도. 무엇이 문제인가=그렇다면 위기에 처한 기초학문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김성복 교수는 기초학문 진흥을 가로막는 제도, 인식 등을 “다 뜯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핵심 주장은 기초학문을 연구할 수 있는 학풍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부가 아닌 대학원에서 연구를 시작한다는 인식이 그가 꼽은 문제점이다. 그는 “미국에서는 학부생, 대학원생 할 것 없이 연구에 참여한다”며 “우리도 학부 1학년 때부터 연구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학문 교육 분야에서 김성복 교수는 융합형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현행 학제는 학과들이 너무 세분화돼 있고 학생들은 한두 개의 전공만 선택하기 때문에 연구자로서의 기초 소양을 쌓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대대적 학제 개혁을 통해 학과 사이 벽을 허물어 문제를 해결하기를 주장했다.

▲ "기초학문은 생각의 기틀을 만들어야" "교수평가 개선 등을 통해 교육에 중점을 둬야"

이준규 명예교수(물리천문학부)

사진: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이준규 교수는 “학부생들은 그렇게 성숙하지 않다”며 학부생에게 연구자의 자세를 요구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학부에서 기초학문 연구를 진행하더라도 그것은 교육의 일환”이라며 학부에서 기초학문 진흥은 교육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초학문 교육은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기틀을 만들어주며 이 효과는 응용학문 분야 학생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 수학 수업은 수학이 어떻게 응용되는지 절대 가르치지 않는다”며 기틀을 만들어주는 기초학문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짚었다. 그는 “교수들은 논문 개수 채우기에 쫓겨서 학부 교육엔 관심이 없다”는 점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교수 평가 항목에 교육은 사실상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이준규 교수는 현행 강의평가 제도만으로도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강의평가 결과 하위 10% 교수에게만 주의를 줘도 교수들은 정신을 차린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사회가 바뀌어야=이준구 교수는 기초학문에 대한 기업과 사회의 오해가 문제라고 짚었다. 기초학문의 위기가 근본적으로 사회의 수요에서 파생하는 만큼, 기초학문이 쓸모없다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대(對) 사회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이 신입사원으로 경영학과 졸업생만 선호할 필요가 없다”며 취업시장의 예를 들었다. 신입사원으로 필요한 조건은 학과에서 배운 지식이 아닌 트레이너빌리티(trainability), 즉 직무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준구 교수는 이런 면에서 기초학문 전공자가 오히려 기업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기초학문이 쓸모없다는 사회인식부터 개선해야" "서울대가 '기초학문 중심대학'으로 거듭나길"

이준구 명예교수(경제학부)

사진: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위기론은 사회의 수요에서 파생되는 것”이라는 이준구 교수의 말은 장학금 지원에 급급한 현행 정책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기초학문 전공자들이 사회로 진출할 발판이 없다는 것이 궁극적인 문제다. 하지만 현행 정책은 당장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그치고 있다.

 

10년 뒤, 서울대 기초학문의 모습은

 

좌담회를 마무리하며 이재열 교수는 10년 후 바람직한 서울대의 모습과 기초학문 진흥을 위해 실현 가능한 목표를 패널들에게 물었다.

우선 이준구 교수는 서울대가 ‘기초학문 중심대학’으로 거듭나기를 주문했다. 그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의 존재 의의는 기초학문에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 자체로는 공공재, 가치재가 아닌 대학을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유일한 당위성은 다름 아닌 기초학문에 있다. 기초학문 지식은 외부경제, 즉 응용학문의 기반을 다지는 효과가 있지만 사회의 수요만으로는 충분히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준규 교수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한 기초학문대학을 만드는 안을 제시했다. 이준규 교수가 제안한 기초학문대학은 학부교육을 전담하는 형태로, 현재 연세대에서 기초교양교육을 담당하는 학부대학과 비슷한 형태다. 그는 기초학문 분과 간의 지나친 세분화를 막고 기초학문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제시했다.

이들 두 가지 제안의 현실화를 위해서 대대적인 제도 개편과 인식 변화가 필요함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이준규 교수는 연간 200억원의 기초학문 진흥 예산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기초학문 진흥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연간 30억원 규모의 ‘노벨상 수상자급 석학 유치’ 사업은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이준규 교수는 그 방안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대학원생 조교의 임금과 위상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이 방안은 우선 대학원생이 처한 경제적 문제를 완화해 그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강의 조교로서의 위상이 강화된다면 학부 교육의 질 또한 높일 수 있다. 기초학문 연구와 교육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그는 하버드대의 ‘주니어 펠로우’(junior fellow) 제도를 벤치마킹한 ‘관악 펠로우’를 기초학문 연구 진흥의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관악 펠로우는 기초학문분야 박사학위 취득자를 조교수 정도의 직위로 채용해 5년여 동안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는 기초학문후속세대가 학문을 후속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 받는다.

그럼에도 기초학문의 위기가 해결되기까지는 난관이 많다. 기초학문 진흥을 위해 수많은 제도 개편과 인식 변화가 필요함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는 사회가 기초학문을 받아들이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좌담회가 기초학문 진흥을 가로막는 문제 해결에 초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좌담 전문은 인터넷 대학신문(www.snunews.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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