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르가 떠난 뒤 100년
파브르가 떠난 뒤 100년
  • 대학신문
  • 승인 2015.05.17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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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몸속에 인문학 성향의 피가 철철 흐르던 내게 ‘곤충신’이 내렸을 땐 불혹의 나이였습니다. ‘곤충에 대하여’ 갈증이 극에 달한 나머지 내 발로 찾아간 곳은 성신여자대학교 곤충분류연구실. 퀴퀴한 담배 냄새 폴폴 나는 연구실에서 나를 맞으신 분은 딱정벌레목 연구의 대가이자 한국산 풍뎅이 연구의 산 증인인 백발의 노학자였습니다. 애꿎은 혈기 하나만 믿고 곤충을 연구하겠다고 불쑥 나타난 중년 여성의 방문에 적잖이 놀란 표정이 역력했지만, 흔쾌히 자신의 제자로 삼아주었습니다. 그 노학자가 바로 『파브르 곤충기』 전권을 완역한 나의 은사님, 김진일 교수입니다.

딸 또래의 ‘선배 대학원생’과 때로는 함께, 때로는 경쟁하며 5년의 석사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곤충학도로서의 꿈을 키워나갈 즈음, 은사님의 연구실에서는 100년 전 세상을 떠난 파브르의 숨결이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은사님은 프랑스에서 파브르가 학위를 받은 프랑스 몽뺄리에 이공대학교에서 유학하던 시절 다졌던 『파브르 곤충기』 완역의 꿈을 야심차게 실현하고 있었는데, 강의 시간 빼고는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작은 글씨체로 지면을 빽빽하게 채운 원문을 하루에 3쪽씩 번역을 하셨습니다. 그 작업이 얼마나 지난했던지 줄담배로 스트레스를 달래 졸지에 연구실이 담배연기로 뿌옇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덕분에 나는 은사님의 번역작업에 얽힌 수많은 일화를 목격했었고, 갓 번역된 따끈따끈한 원고를 교정 차 자의반 타의반으로 읽었는데, 되돌아 생각해보니 그 덕에 파브르 곤충기 전권을 읽는 호사를 누린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파브르 곤충기』는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보는 필독서로 여겨질 만큼 유명한 터라 어린 시절 언뜻언뜻 읽어봤지만, 이렇게 방대한 완역본 내용을 꼼꼼히 접해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파브르 곤충기』를 한 마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곤충의 한 살이, 습성, 행동과 애환을 관찰해 글로 적은 책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여느 곤충책과 달리 딱딱함이 없고,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예술가처럼 관찰하고 시인처럼 느끼고 표현하는 과학자 파브르’의 숨결이 녹아있는 책인 것이지요. 이 책은 파브르가 평생을 온전히 바쳐 관찰한 곤충의 모습과 행동의 기록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그의 나이 쉰다섯 살에 시작해 여든여섯 살에 곤충기를 마무리했으니 무려 장장 30년의 긴 세월에 걸친 고된 작업의 결과인 셈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공로를 인정받아 파브르는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종 드뇌르 훈장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파브르 곤충기』는 교과서 못지않게 필독서로 자리매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곤충을 파브르의 눈을 통해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최근 2000년대 초반에 출간된 완역본은 쪽수가 4,000쪽이 넘을 정도로 방대한 내용이나 이 책을 완벽하게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파브르 곤충기』는 10권, 각 권마다 여러 꼭지(chapter)로 구성됐는데, 총 꼭지 수는 223꼭지입니다. 1권에서 10권까지에 등장한 곤충을 살펴보니 딱정벌레목 71꼭지, 벌목 65꼭지, 파리목 9꼭지, 노린재목 13꼭지, 나비목 15꼭지, 거미류 30꼭지, 버섯살이 곤충 1쪽, 개인 일화 2꼭지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가위벌, 나나니벌, 노래기벌, 조롱박벌, 코벌 등 사냥벌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걸 보면 파브르는 ‘사냥벌 애호가’였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파브르 하면 소똥구리를 자주 떠올립니다. 실제로 처음 시도한 진왕소똥구리에 대한 연구는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소똥구리 애벌레의 밥은 양의 똥인데 파브르는 엉뚱하게도 어미 소똥구리의 밥인 소똥만 여러 해 찾으러 다녔기 때문입니다.(1권) 진왕소똥구리 연구에 실패한 후 파브르는 “일반화된 견해를 뒤엎으려면 논리만 앞세운 탁상공론은 무의미하다”라며 잘못된 기존의 정보와 옛날 선배들의 피상적이고도 잘못된 관찰 정보는 정확한 관찰과 실험을 통해 검증돼야 한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합니다. 후에 그는 여러 종류의 소똥구리들을 연구하면서 잘못 알려진 소똥구리에 대한 생태를 수정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집파리류의 애벌레인 구더기와 노린재를 연구했습니다.(8권) 구더기는 큰 턱이 바닥을 찍는 갈고리로 변형되어 이동하는 데 쓰이고 먹이는 씹어 먹지 않고 소화효소를 체외로 분비해 액화시킨 후 먹는다는 점, 갓 부화한 노린재 애벌레는 알껍질에서 탈출할 때 특수기구나 폭파장치를 이용한다는 점 등을 발견한 업적은 끈기 있는 파브르 아니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 종의 메뚜기, 개미, 매미, 사마귀, 바구미, 거위벌레, 가뢰 등 다채로운 곤충들의 관찰기록을 흥미진진하고 감질나게 풀어썼을 뿐만 아니라 파브르 자신의 개인감정과 추억까지 서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나이 70대 후반에 쓴 8권 이후로 넘어가면서 그는 곤충기 군데군데에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마치 지난날을 정리하듯 써내려 갑니다. 25년 전에 폐렴에 걸려서도 곤충을 관찰했는데, 그 때는 곤충을 관찰하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자신을 관찰했다는 소회, 아들을 잃은 가슴 아픈 일화도 담담히 밝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빛나는 그의 곤충기에도 약간의 아쉬움은 남아있습니다. 파브르는 자신을 시인이요, 철학자요, 사상가라고 자칭한 것처럼 여러 분야에 박식한 곤충학자였습니다. 그래서일까, 그는 곤충의 사소한 모습도 철학적이며 시적인 문장으로 풀어내 어느 문장은 수십 개의 어구와 단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곤충들을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에 바탕을 두고 의인화시켜 문학작품을 연상케 합니다. 더구나 같은 내용이 여러 번 반복되고, 한 종을 설명하다가 뜬금없이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고, 글 전체를 볼 때 기승전결이 부족한 편이라 완독하는 데는 정말로 독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또한 자신의 박식함에 대한 자만심에서 비롯됐는지는 모르지만, 파브르는 이따금씩 다른 분야에 대하여 비아냥 어린 표현도 서슴지 않았고, 혼자 독학한 탓에 가끔씩 학문적 사실이나 각 분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무시한 채 자신의 주장을 거듭할 때가 있었고, 곤충의 행동은 오직 본능에 의할 뿐 행동의 진화는 절대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고 진화론을 부정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세를 넘어서까지 곤충을 관찰하며 곤충기를 펴낸다는 것은 굉장한 업적이며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세계에 애독자가 퍼져 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곤충기의 바이블’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지요. 현재에 들어 유전학, 분자생물학 등 신학문의 눈부신 발전으로 파브르가 행했던 ‘고전적 실험’ 방식은 퇴색할 법도 하지만 여전히 하나의 생명체인 곤충을 연구하기 위해선 파브르가 했던 연구 절차가 해상도 높은 연구결과를 낳게 해줍니다.

파브르의 연구는 후세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분류학자인 필자는 우리나라 땅에 사는 한국곤충들의 이야기를 『파브르 곤충기』와 비슷한 형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파브르 곤충기』는 우리 땅이 아닌 프랑스 땅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곤충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 실정에 잘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 땅에 사는 곤충들을 보전하며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파브르가 했던 것처럼 곤충을 꾸준히 연구・관찰하고 있으니 파브르가 떠난 지 한 세기가 지났어도 그가 우리 곤충학계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정부희 박사

(고려대 한국곤충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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