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연구교수

글을 쓰기 며칠 전 학내에서 간행되는 한 저널의 학생 기자가 글쓰기교실을 방문했다. 사전에 연락을 받았을 때 학내 기관을 탐방하여 하는 업무에 대한 기사를 쓰고 싶다고 했었다. 학생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평소 해당 저널을 틈틈이 챙겨보던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자와 마주 앉았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기자가 돌아가고, 나는 애초 여기에 쓰려고 준비했던 내용을 급선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왜 이런 좋은 곳을 우리 학생들은 모르고 있는 걸까요?”라고 기자는 질문했고, 나는 “홍보를 더 적극적으로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렇다. 이 글은 그 대답에 대한 실천으로 쓰는 글이다. 대놓고 쓰는 글쓰기교실에 대한 홍보의 글이요, 광고의 글이다.

우리 학생들은 매학기 리포트를 쓴다. 아니 써야 한다. 리포트를 작성하는 목적에 대해서야 수업 내용의 응용과 활용이니 연구역량 강화니 하는 교과서적 답이 있겠지만, 우리는 학점을 받기 위해서 쓴다.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잘 써야 한다. 그런데,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가 쓴 리포트 점수는 정확하게 알기 힘들다. 날밤을 새우며 온몸을 비틀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쓴 내 글인데 독자가 어떻게 읽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성적 반영비율 속에, 평점 속에 포함되어 있겠거니 하고 추측할 뿐이다. 설사 교수자나 조교로부터 내 리포트에 대한 점수를 확인받거나 몇 마디 총평의 멘트를 피드백 받더라도 위안 받거나 납득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느 작가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그 여성 작가는 내가 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은 알몸으로 그 사람 앞에 서는 일과 같다고 수줍게 말했다. 글쓰기는 그런 것일까? 그래서 내가 쓴 리포트의 성적에 대해 더 캐묻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일까? 내가 쓴 리포트의 ‘안부’가 궁금해도 무소식이 희소식인 양 우리는 그렇게 잊고 지낼 수 있는 것일까?

글쓰기교실은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 향상을 위해 무료(!)로 상담과 교육을 하는 학내 기관이다. 이렇게 소개하면 남 얘기처럼 들린다. 정확하게 말해 학생들의 모든 리포트 작성을 과외 선생님처럼 돕는 곳이다. 성적과 직결된 리포트 작성을 도와주다니, 그것은 반칙 아닌가? 하는 반문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열려 있고 자발적으로 이용하는 곳이니 더 다른 말은 필요 없겠다. 그간 10여년 동안 약 1만여건의 리포트 상담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상담을 통해 작성된 리포트가 꼭 좋은 성적을 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한 번 상담을 받은 학생의 많은 수가 다시 찾는다. 즉 재방문율이 높다. 그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받았기 때문인지는 역시 모른다.

이런 심정도 이해한다. 뭐라도 써야 상담신청이라도 하든지 말든지 하지, 미리 쓰는 글이 어디 있나 데드라인까지 쓰는 게 리포트지. 맞는 말이다. 해서, 글쓰기교실의 상담은 무엇을 쓸 것인가의 단계에서부터 가능하도록 했다. 글쓰기교실을 이용하는 학생들 가운데는 주제를 잡고, 자료를 조사하고, 개요를 작성하고 초고를 쓰고 제출 직전에는 맞춤법까지, 단계별로 상담을 받아 리포트를 제출하는 학생도 있다. 영리한(?) 학생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이 홍보문을 마무리해야겠다. 내 글의 성실한 독자를 만나는 일은 특별한 경험이다. 내가 온몸을 비틀며 쓴 글을 한 문장 한 문장 읽어주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의 고민까지 공감해주는 충실한 한 사람의 독자를 대면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그 만남은 부끄럽다. 그래서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내 리포트의 성적은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특별한 만남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글쓰기교실(ctl.snu.ac.kr)을 통해 내 글의 독자와 특별한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 연구교수

교수학습개발센터 글쓰기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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