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근우 부편집장

증오에 기반한 인터넷 커뮤니티간의 비방전

커뮤니티의 특수성에 동일시하는 사람들

소비하는 다수는 제한된 정보만을 얻을 뿐

한 발 떨어져 보는 선순환의 공론 만들어야

현재 인터넷 커뮤니티계는 전쟁 중이다. 전쟁이라는 표현이 과장되게 느껴진다면 이 사태의 주축인 커뮤니티 ‘여성시대’(여시)는 회원 수 60만명을 자랑하는 집단이고 그와 대립하고 있는 다수의 인터넷 커뮤니티는 그에 못지않은, 혹은 더 거대한 규모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게다가 상대 커뮤니티의 반응을 구해오는 ‘종군기자’, 위키백과에 이를 기록하는 ‘사관’, 사이트의 몰락으로 인한 ‘난민’ 등의 단어가 실제로 사용되고 있고, 상대방의 염탐을 대비해 역공작을 하거나 프레임을 만들어 여론을 형성하는 등의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한국 인터넷 역사상 전례 없는 대규모의 움직임은 전쟁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2주 가까이 분쟁이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심화하면서 여시 사태는 단순히 상대 커뮤니티에 대한 조롱을 넘어서 증오 감정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인터넷 사회에서는 더 재미있고 자극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이 인정을 받고, 이를 위해 서로를 비난하는 말은 점점 더 원색적으로 변해간다. 특히 여시가 여성들이 모인 커뮤니티라는 점 때문에 성 대결의 구도 또한 엿보인다. 이러한 증오의 감정은 인터넷을 넘어 현실까지 발을 뻗고 있다. 실제 친구와 이 문제로 싸웠다는 ‘인증글’을 넘어서 여시의 행위에 대한 고발과 신고가 빗발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증오의 대상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으며 만들어진 이미지에 가깝고 이 과정이 확대재생산 된다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가상세계이고 이곳에서의 일이 현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커뮤니티에 소속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자신을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소수의 콘텐츠 창조자와 그에 이끌린 다수의 소비자로 구성돼 있다. 사람들은 그 중 콘텐츠가 비교적 자신과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곳을 찾아간다. 만약 커뮤니티의 성격에 맞지 않는 사람이 유입될 경우 구성원들은 힘을 합쳐 이를 쫓아내고 집단의식은 더 공고해진다. 이에 생산자들은 점점 더 커뮤니티에 맞는 정보를 생산하게 되는 순환구조를 형성한다. 개방적인 인터넷 공간의 커뮤니티 속에서 특수한 배타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난민’이 된 사람들이 다른 커뮤니티에 정착하면서 그에 맞는 말투나 은어 등을 사용하는 모습은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을 커뮤니티에 맞추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생산자는 소수이고, 다수의 소비자는 적극적으로 커뮤니티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산자들은 소속 커뮤니티에서 더 인정받기 위해 나머지 구성원들의 입맛에 맞는 정보를 취사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이성적인 비판글이나 타협을 원하는 글들은 무시된다. 그 결과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제한된 정보만을 얻는다. 인터넷 세계에서 여시는 낙태를 옹호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존재가 되고, 여시 속에서 다른 커뮤니티의 이용자는 여혐종자에 선동된 사람이 된다. 이러한 사고 속에서 커뮤니티는 하나의 실체로 형성되고 결국 사용자들은 코끼리의 코, 호랑이의 발, 곰의 몸을 가진 괴물과 싸우게 된다.

한편 이러한 전쟁이 낯설게 만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현실 세계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특정 집단들이 전쟁 아닌 전쟁을 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뒤통수를 잘 치기에 믿을 수 없는 전라도인’ ‘뻔뻔하고 고집 세며 가부장적인 경상도인’은 ‘친구의 지인이 직접 겪은’ 경험담을 통해 힘을 얻어 재생산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의 불명확한 정보는 개인의 일이 아닌 그 집단에 속했기에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사건으로 탈바꿈한다. 그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집단을 형성하는 개개인이 모여 선순환의 공론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은 한 발짝 떨어져 보는 것이다. 스스로가 속한 집단에서 벗어나 상대 집단을 객관적으로 보고자 할 때, 그리고 주어지는 정보를 믿기 위해 먼저 의심할 때 서로에 대한 감정적인 싸움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