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찾는 그 날까지 이어지는 해고노동자들의 기타 선율
제자리 찾는 그 날까지 이어지는 해고노동자들의 기타 선율
  • 강민정 기자
  • 승인 2015.05.17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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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밝음이 만날 즈음.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 서럽다 서럽다 삶이 서럽다.” (「고공」)

인적이 드문 보도블록 위 천막에서 노랫소리가 새어 나온다. 서럽다는 가사가 해질 무렵 빗소리와 어우러져 애절함이 배가 된다. 기타, 베이스, 까혼을 연주하는 이들은 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텍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금속노조 콜텍지회 이인근 지회장과 조합원 김경봉 씨(56), 임재춘 씨(52)다. 이들은 2011년 밴드 ‘콜밴’을 결성하고 음악을 통해 복직을 향한 뜻을 알리고 있다. 해고 노동자라 하면 빨간 띠와 불끈 쥔 주먹부터 떠올리는 이들에게 콜밴의 ‘음악 투쟁’은 사뭇 낯설 수도 있다. 지난 12일(화) 인천시 부평구의 옛 콜트악기 공장 맞은편 농성 천막에서 콜밴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위기를 이유로 '해고는 정당하다'

이인근 지회장은 2007년 4월 어느 월요일 아침을 회상하며 입을 뗐다. “사장이 공장 열쇠를 챙기고 도망갔어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공장에 출근한 노동자들은 공고문을 보고 벙쪘죠.” 공고문에는 3개월간 휴업 후 폐업할 예정이라고 적혀있었고, 정문은 사슬로 묶여있었다.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들에 통기타를 납품하는 콜텍은 2006년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세웠다. 그리고 2007년 7월 ‘경영상의 이유’를 내세워 대전공장 문을 닫고 40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했다.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은 조합원 24명은 해고가 부당하다며 회사를 상대로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2008년 1심은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에 따라 정당하다고 판결했지만 이듬해 2심은 “콜텍이 매년 66~11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고 부채비율도 동종업종 평균보다 낮다”며 정리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은 그로부터 3년 후에 나왔다. 이인근 지회장은 대법원 판결이 있던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2012년 2월 23일 오전에 콜트악기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서 우리도 같은 판결이겠구나 생각했죠. 한 사장 밑 같은 사안이니까요.” 재판부는 콜트악기가 계속 흑자를 낸 만큼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오후 2시 법정에 들어간 조합원들은 웃을 수 없었다. 재판부가 콜트악기와 달리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모회사는 흑자일지라도 자회사인 콜텍 대전공장의 사정이 안 좋아 공장 문을 닫아야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따져보라는 취지였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대법원이 지정한 회계사가 콜텍에 대한 특별감정을 시행했다. 감정보고서는 생산 물량이 해외 공장으로 이전돼 국내 공장이 손실을 보더라도 전체 회사 경영이 긴박할 정도가 아니면 정리해고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6월 대법원은 해고가 정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장래의 위기’가 근로기준법이 정한 정리해고의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에 포함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재판부는 닥치지도 않은 경영상의 위기를 내세워 당장 노동자들을 실직의 위기로 내몰았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8년간 다섯 번의 재판이 이어졌지만 조합원들은 일자리를 되찾을 수 없게 됐다. 임재춘 씨는 요즘 콜트 기타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해고 전에는 음악프로에서 비치는 우리 기타를 보면서 애들한테 자랑하고 뿌듯함을 느꼈어요. 지금은 콜트 이름이 붙은 기타에 메이드 인 차이나, 인도네시아가 붙어서 팔리는 걸 보면 착잡하죠.”

 

빨간 띠 대신 기타를 멘 콜밴

이인근 지회장은 처음부터 기타를 메고 정리해고에 맞선 건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2008년까지는 보통 노동자들이 하듯 고공, 단식, 본사 타격 투쟁을 했어요. 매일 경찰서에 쫓겨 다니고 손해 배상으로 피해를 보는 건 노동자들뿐이더라고요.” 실제로 2008년 11월 콜텍 본사를 점거한 노동자들은 무단침입과 기물파손 등을 이유로 경찰 기동대에 의해 전원 연행됐다. 공장을 점거했던 노동자들에게 회사는 주거침입과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변호사 수임료만 1억원이 넘게 들었다.

이에 이인근 지회장과 조합원들은 콜텍의 해외 거래처에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알려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주고자 했다. 이들은 2009년부터 독일, 일본, 미국에서 열린 악기 박람회를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미국 록그룹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가 그들을 지지한다는 뜻을 보내오기도 했다. “우리의 투쟁을 지지한다며 뉴욕에서 LA까지 와서 공연도 해줬어요. 톰 모렐로를 통해서 콜트악기에 가장 많은 주문을 주는 펜더사의 법무팀장과 면담했고 자체적으로 조사하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어요.” 음악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엿본 순간이었다.

그들이 스스로 밴드를 결성하기로 마음먹은 건 2011년 해고노동자들을 응원하는 음악가들을 다룬 영화 「꿈의 공장」 시사회를 다녀와서였다. 시사회에서 이인근 회장과 조합원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인디밴드 ‘킹스턴 루디스카’를 만났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밴드 매니저가 ‘형님들 뭐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팔뚝질보다 악기 배워서 거리 공연하면 시민들한테 더 어필할 수 있을 텐데, 5년 동안 뭐했냐고 질책했어요.”

며칠 지나지 않아 뜻이 맞은 조합원들이 모여 콜밴을 결성했다. 소셜펀딩을 통해 악기를 구입하고 평소 그들을 지지하던 음악가들이 악기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돼 줬다. 이인근 지회장은 처음 무대에 서기까지의 노고를 털어놨다. “손가락이 굳어서 코드 전환이 쉽게 안 되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또 원체 세 명 모두 박치다보니 불협화음이 많이 생겼죠.”

악기라곤 평생 처음 잡아본 그들은 두 달간의 우여곡절 끝에 첫 무대에 섰다. 홍대 앞 클럽 ‘빵’에서 열린 수요문화제에서였다. 이인근 지회장에겐 당시의 떨림이 지금까지도 생생한 듯했다. “앞뒤로 인지도가 있는 뮤지션들 사이에서 덜덜 떨면서도 감격스러웠죠.” 그들의 우려와 달리 관객들의 호응은 뜨거웠고 이에 힘입어 콜밴은 지금도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이면 같은 무대에 오르고 있다.

공연장에서의 공연도 재밌지만 콜밴의 주 무대는 시민들이 오가는 거리라고 이인근 지회장은 강조한다. 작년과 재작년엔 한 주씩 번갈아 서울과 인천에서 시민들로부터 콜트 불매 서명을 받는 유랑문화제를 진행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홍대, 인천 구월동, 신촌, 주안역 그런 데를 돌았어요. 장미여관의 「오래된 연인」, 조항조의 「사랑찾아 인생찾아」 같은 노랠 수도 없이 불렀죠.”

대중가요를 주로 부르던 콜밴은 지난해 말부터는 직접 작사, 작곡까지 한다. 지금까지 발표된 건 「꿈이 있던가」 「주문」 「서초동 점집」이다. 콜밴은 가장 애착이 가는 곡으로 「서초동 점집」을 꼽았다. 지난해 6월 대법원 판결과 법원 앞 1인 시위를 바탕으로 가사를 썼다. 김경봉 씨는 ‘난생 처음 가본 법원, 변호사 살 돈도 없어요’ ‘미래의 경영까지 점을 치는 신내린 무당인가’ 등 가사에 담긴 사연을 풀어냈다. “법원이 ‘장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를 내다본 게 공정하기보단 점집 같았어요. 또 우리뿐 아니라 다른 사업장에서 투쟁하는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가사여서 제일 좋아하죠.”

지금 콜밴은 네 번째 자작곡인「고공」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곡은 이인근 지회장이 2008년 한강 송전탑에서 30일간 고공농성을 했던 일을 회상하며 쓴 곡이다. 한 번 들려줄 수 있냐는 기자의 물음에 콜밴은 흔쾌히 응했다. 새벽녘 40여m의 송전탑에 올라야 했던 해고노동자의 절절함이 배어 있었다. 가사 속 ‘어둠과 밝음이 만날 즈음’은 송전탑을 올랐던 새벽을 뜻하고, ‘날지 못하는 새’는 높은 곳으로 올랐지만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 발이 묶인 스스로를 빗댄 것이다.

▲ 비가 내리던 지난 12일(화)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농성 천막을 찾아온 기자의 부탁에 이인근 지회장은 흔쾌히 기타를 들고 네 번째 자작곡 「고공」을 들려줬다

꿈의 공장, 노동자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꾸는 꿈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을 응원하는 것은 노동계만이 아니다. 다수의 문화예술계 인사들 역시 해고노동자들의 존재를 알리고 지지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인근 지회장은 문화예술가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견디기 힘들었겠죠. 때론 아픔도 있었지만 덕분에 9년이라는 시간을 웃으면서 지낼 수 있었어요.”

문화예술가들 또한 노동자와 예술가들이 같은 꿈을 나누기에 연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부평공장이 무너지기 전 미술작가들은 폐공장을 작업실로 삼고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그림을 그렸다. 미술작가 성효숙 씨는 둘의 공통점을 설명했다. “노동자와 예술가는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꿈을 공유하죠. 예술은 사회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어요.” 성효숙 씨는 부평공장의 벽면에 그린 그림 「새벽 3시」를 소개했다. “새벽 3시는 캄캄한 밤에서 새벽으로 바뀌는 전환점이잖아요. 우리 사회에 있어서도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과정의 선두에 선 사람들이 콜트·콜텍 노동자들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문화예술가들은 미술, 음악, 영상 등을 활용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고노동자들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조합원들의 투쟁 현장을 촬영해 두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한 영화감독 이수영 씨는 현재 세 번째 영화를 준비 중이다. 2008년 이인근 지회장이 송전탑에 올라간 이후로 시인 송경동 씨는 7년째 해고노동자들을 응원하는 시를 쓰고 있다. “「꿈의 공장을 찾아서」는 복직투쟁 1,000일을 기념한 시예요. ‘섬처럼 버려진 조그마한 악기공장’에서 통기타를 만들었던 이들의 이야기죠.” 시 「꿈의 공장을 찾아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30여년간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세계 기타 삼분의 일을 생산’했지만 ‘공장은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빼돌려져’ 갈 곳 잃은 사람들로 기억한다.

▲ 지난 9일(토) 보신각 앞 마당에서 열린 '콜친 3000+페스티발' 무대에 선 콜밴이 「서초동 점집」을 부르고 있다.

지난 9일 열린 ‘콜친 3000+페스티발’은 십시일반으로 이뤄진 문화예술가들의 후원이 맺은 결실이다. 인디밴드들의 공연이 한창인 행사장 한쪽에선 시민들의 얼굴을 캐리커쳐로 그려 발길을 사로잡은 20대 미술작가 최은혜 씨도 있었다. “처음에는 막연히 투쟁이라는 것이 무서웠는데 결국엔 사람 일이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당장 내일 우리의 일, 우리 아버지의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날 시민들은 문화예술가들의 활동을 통해 시민들이 부담 없이 해고노동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저녁 약속을 위해 행사장 앞을 지나가던 최연희 씨(직장인․25)는 멀리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공연을 관람했다. “얼마 전 취직 후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어요. 지금처럼 시를 읊거나 신나는 노래를 부르는 공연은 저처럼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달 30일엔 기타리스트 신대철과 장호일이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공연 <기타의 꿈>을 선보인다.

콜밴은 해고노동자들이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 기타를 만드는 그날까지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수요문화제, 유랑문화제와 함께 문화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모인 ‘꿈의 공장’ 만들기를 추진 중이다. 꿈의 공장은 3,000일이 넘는 해고노동자들의 기억을 나누고 다양한 문화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3,000일 혹은 그 이상의 날짜를 나타내는 숫자도 복직을 향한 이인근 지회장의 희망을 저버리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날짜라고 하는 건 복직투쟁의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한 하나의 숫자에 불과하죠. 기타를 만들던 그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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