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허름한 옷, 삶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 듯한 표정으로 술병을 들고 역 주변을 배회하거나, 지하보도, 상가, 공원 등에서 박스를 깔고 신문지를 덮은 사람들. 우리가 ‘홈리스’(Homeless)라고 할 때 떠올리는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편견과는 다르게 과거의 자신을 딛고 일어나 다시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때 무기력하던 그들은 세상의 무관심과 자신의 실패를 한탄하던 과거를 극복하고 경제적 자립을 이뤄냈다. 또 과거의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오천원에서 다시 만난 삶

영국에서 창간된「빅이슈」의 한국판인「빅이슈 코리아」는 많은 사람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져 홈리스에게 자활의 계기를 주는 대중문화 잡지다.「빅이슈」는 권당 5,000원에 판매되며 홈리스에게만 잡지를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빅이슈」 판매원은 서울과 대전 지하철역과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매일 저녁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는 빅이슈 판매원 이무재씨가 언제나 밝고 친절한 모습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맞는다. 그는 사범대학을 졸업해, 한때 교편을 잡았고 농사도 지었지만 여러 번 사기에 휘말려 모아놓은 돈을 모두 잃은 과거를 갖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너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라는 친구의 말에「빅이슈」 판매를 시작하게 되었다.

 

 

▲ 사진: 김명주 기자 diane1114@snu.kr

“전 이런 내용과 취지가 좋은 잡지를 팔 수 있어서, 또 이런 잡지를 사주는 독자님들과 함께 공유하고 호흡할 수 있어서 굉장히 행복해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상처를 받았지만 이렇게 선하신 분들이 있다는 것 자체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빅이슈」에 재능기부 해주시는 분들에게도 아주 고맙고요. 이제 산업사회와 정보화사회를 지나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과 내면적 가치를 추구하는 감성의 사회에 돌입했다고 봐요.「빅이슈」는 감성적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길잡이 역할도 하는 것 같아요. 이런 감성의 사회가 지나면 절대 남을 속일 수 없는 신성 사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하루에 7시간 일하고 많아야 스무 권이고 열 권도 못 파는 날이 많아요. 그래도「빅이슈」를 봐주시는 독자님들께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따뜻한 세상을 배우다

원효로 1동의 주택가의 아담한 집. 이곳은 ‘아랫마을 홈리스야학’이 열리는 곳이다. 홈리스야학은 반빈곤단체인 ‘홈리스행동’이 2005년 마련한 홈리스를 위한 일상적, 문화적 교육의 장이다. 협소한 공간이지만 29명의 학생이 모여 한글, 컴퓨터, 탁구, 공예 등을 배우고 함께 어울리고 있다.

 

 

▲ 사진: 김명주 기자 diane1114@snu.kr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는 홈리스야학에서 스스로를 ‘바보천치온달’이라고 표현한 이세원 학생회장은 소싯적엔 배구선수로 활동을 했고 작은 키 탓에 은퇴한 이후에는 30년간 공무원이었다. 정년퇴직 후 벌인 부동산중개업이 망하는 바람에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는 그렇게 2년간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다가 7년 전 홈리스들에게 커피를 나눠 주던 홈리스야학을 우연히 만났다. 홈리스야학은 오랜 시간 그의 회생을 도왔고 결국 그는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사진: 김명주 기자 diane1114@snu.kr

“홈리스야학은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이에요. 이곳에서 선거를 통해 4년간 회장도 맡을 수 있었어요.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은 거리에 계신 분들에게 이곳에서 함께 활동하자고 ‘끌어올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좁은 공간에 많은 학생을 수용할 수 없어서 아쉽지만 많은 사람이 참여해줬으면 좋겠어요. 전 나이가 많아 다른 일을 하기 어려우니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다른 홈리스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살고 싶습니다. 제 별명인 ‘온달’처럼 평강공주도 만나고요.”

▲ 사진: 김명주 기자 diane1114@snu.kr

 

새로운 미래를 조각하다

대구의 작은 건물 지하 1층에는 원목을 이용해 수제 목공예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이들은 동대구노숙인쉼터에서 생활하다 자활의 의지를 갖고 ‘늘품공방’에서 직접 제품을 만드는 홈리스들이다. 늘품공방은 오랜 시간 노숙인쉼터를 운영한 임정만 대표가 홈리스들의 자활과 독립을 위해 직접 시작한 사회적 기업이다.

 

 

▲ 사진: 김명주 기자 diane1114@snu.kr

이곳에서 1년 8개월째 일하고 있는 김수두 씨는 목공예에 굉장한 애착을 갖고 있다. 그는 공방을 찾는 손님들을 가장 반갑게 맞이하고 언제나 일에 열정이 가득해 늘품공방의 연예인으로 불린다. 그는 자신이 직접 원목을 깎아 만든 만년필을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 사진: 김명주 기자 diane1114@snu.kr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실패를 겪어 희망이 없었던 사람들이에요. 여기는 그 사람들을 같이 이끌어 나가는 방법을 찾아줬어요. 저도 앞장서서 먼저 술도 먹지 않고 독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지 않겠어요? 다들 어디 떠돌지 말고 일도 하고 돈도 벌고, 그리고 독립도 하면서 희망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최근엔 작은 가게를 하나 얻었어요. 우리 돈으로 직접 공방을 운영하고 싶은 큰 뜻이 있어요. 또 사람들이 노숙인쉼터에 있는 사람들을 너무 색안경 끼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들 막노동이라도 하면서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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