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자리싸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수요일 낮. 인문대 신양관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아닌가. “그 자리 제가 주인인데요?” “네? 제가 먼저 왔는데요?” ‘예술주간’ 푯말이 박힌 터 앞에서 성량 좋은 두 사람이 티격태격 자리싸움을 하고, 주변 사람들이 킬킬대고 있다. 아마 길거리 연극이 벌어진 모양이다. 관객 틈에 들어가 함께 박장대소하고 있으니 눈 깜짝할 새 마법처럼 시간이 흘렀다.

지난 11일(월)부터 15일까지 학내 이곳저곳에서 온갖 예술 행사가 벌어지는 ‘2015 서울대학교 예술주간’이 진행됐다. 일상공간에서 펼쳐진 게릴라극, 6개의 언어로 읊는 시 낭송회, 전공생이 들려주는 길거리 음악공연, 도서관에 터를 잡은 미술 전시 모두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학생처와 미술관을 비롯해 인문대, 미대, 음대가 공동 주관한 이번 행사는 축제와 더불어 캠퍼스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인문대 신양관 앞을 비롯해 학생회관 테라스, 감골식당 앞, 셔틀버스 내부까지 무대로 삼은 게릴라극은 중앙동아리 ‘총연극회’와 창작집단 ‘별의별’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 재밌을 것 같다며 모인 사람들은 2~3명씩 짝을 이뤄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극에도 출연하며 그들만의 짤막한 길거리극을 기획했다. 연극 「자리싸움」의 전찬호 씨(정치외교학부·11)는 “학업 등으로 지친 일상생활에 변화를 주고자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며 “길거리에서 벌어진만큼 좀 더 즐겁고, 중간에 보더라도 웃고 지나갈 수 있는 연극을 하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실제로 이 날 열린 극은 짧은 시간 동안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유쾌함과 재미를 안겨줬다.

▲ 시 낭송회 '사랑과 죽음과 동물과 시'

한편 미술관에서 벌어진 시 낭송회는 조금 더 진지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사랑과 죽음과 동물과 시’라는 이름의 이 행사는 한글과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독일어를 포함한 6개 언어권에 속한 시를 번갈아 읊는 낭송회였다. 행사는 사랑과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테마부터 언어권별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동물이라는 테마까지 폭넓게 다뤘으며, 마지막에는 학생들이 각자 좋아하는 시를 읊으며 행사가 마무리됐다. 시 낭송에 참여한 이혜진 씨(독어독문학과·15)는 “평소 시 낭송을 접하기 쉽지 않은데 막상 읽어보니 스스로 교양을 쌓은 느낌”이라며 “시를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을 관객들도 느끼는 걸 봤을 때 신기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 공연 '피아니스타그램#5월#성공적'

예술주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행사는 길거리 음악공연이었다. 문화관 앞, 아크로 앞, 농생대 식당 등 캠퍼스 곳곳에서 열린 이번 공연에는 음대 전공생이 주로 참여했다. 11일(월)에 문화관에서 열린 ‘피아니스타그램#5월#성공적’에서는 4명의 기악과 피아노 전공생들이 관객에게 친숙한 쇼팽과 리스트의 독주곡을 각자 연주하다 마지막에 네 명 모두가 한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는 진풍경을 보여줬다. 8개의 손이 동시에 건반을 누르는 순간 주위 모든 관객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쏠렸다. 두 명만 연주하는 부분에서 다른 연주자들은 꽃다발을 들고 고백 퍼포먼스를 보여주거나, 연주와 동시에 가위바위보를 하고 셀카를 찍는 장면을 연출했다. 공연을 지켜본 박인애 씨(대치동, 58)는 “날씨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도와주지 않았음에도 연주자들이 최선을 다해 해줬다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 참여예술프로젝트 'Tag me'

한편 도서관을 비롯해 교내 곳곳에 자리 잡은 설치미술은 캠퍼스의 분위기를 한층 다채롭게 했다. 중앙도서관 관정관에 들어가는 입구에 마련된 작품 ‘쪽지벽’은 열람실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양한 책들이 배치돼 있는 도서관처럼, 사람들이 적은 쪽지는 벽 사이사이에 꽂혀 하나의 도서관을 이룬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다짐, 남모른 사랑고백, 다른 학우들에게 보내는 응원이 적힌 쪽지 밑에는 그 쪽지를 펼쳐본 사람들의 답장 또한 적혀있다.

이번 예술주간은 예술 행사들이 일반적인 무대가 아닌 캠퍼스 내의 일상적인 공간을 무대로 삼았다는 점이 독특했다. 덕분에 캠퍼스를 거닐다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들까지도 함께 예술적 경험을 나누는 이채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성악과 재학생들이 참여한 ‘합창으로 하나 되는 우리’ 공연을 감상한 정권대 선임주무관(컴퓨터공학부)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를 들으러 가다가 우연히 발길을 멈추게 됐다”며 “그냥 지나가기엔 화합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일상으로 내려온 공연 무대는 공연을 주최자에게도, 참가자에게도, 관객에게도, 예술을 더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예술주간 준비위원회의 봉준수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예술주간의 모든 행사가 그렇지만 특히 시 낭송회와 게릴라극은 시와의 거리, 연극과의 거리 등 예술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고 이번 행사의 의의를 밝혔다. 그랬기 때문일까. 초록의 녹음이 우거진 5월의 관악 캠퍼스는 닷새 동안 한층 더 생명력 넘치는 모습이었다.

 

사진: 장은비 기자 jeb1111@snu.kr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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