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5월 14일 목요일 3시~6시
장소: 호암교수회관(125동) 2층 플럼룸
사회자: 이재열 교수(사회학과)
참석자: 김성복 전 석좌교수(자유전공학부), 이준구 명예교수(경제학부), 이준규 명예교수(물리천문학부)

*좌담회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 및 사실관계와는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재열: 어려운 발걸음 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오늘 ‘서울대 기초학문 진흥 어떻게 할 것인가?’ 좌담회를 열게 됐는데, 간단히 배경 설명을 하지만 서울대에 기초학문진흥위원회가 있고 법인화 이후에 기초학문 진흥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큰 이슈가 돼 왔다.

하지만 별 준비 없이 법인화가 급히 이뤄지다보니까 과거에 하던 관행대로 이뤄진 면이 있다. 기초학문이라 그러면, 대학이 점점 효율성과 경쟁의 논리로 가는데. 기초학문의 시민권이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선생님들은 대학 다니실 때 어떻게 지금의 전공을 선택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읽어보면, 학문을 하는 것은 정신적 귀족이 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어떻게 정신적 귀족이 되는 길을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대학 시절을 돌이켜 보고 기초학문이 당시와 지금 사이 어떤 차이와 변화가 있는지 질문한다.

김성복: 기초학문, 영어로 말하자면 basic arts and sciences. 미국에는 이련 표현이 없다. 한국에서는 학문의 초석이 된다는 생각에 ‘기초’라는 단어가 나온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소위기초학문이라 불리는 것은 핵심적 학문, core를 쓰면 그 중요성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기초학문이라 하면 고등학교 교육의 연장전상에 있는 느낌을 주는 등 등 낮게 보는 경향을 조성한다. 옛날에 아버지가 너 사학을 공부하면 가난뱅이가 된다고 했다.

당시에 나는 역사학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역사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른다. 과거를 모르면 현재도 모른다’ 이런 포부를 가지고 공부했는데 아편쟁이처럼 공부에 빠지게 됐다. 동숭동에 있을 때 미국에서 공부하라는 말을 듣고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The Rise of American Civilization』을 읽고 미국사에 빠지게 됐다. 우리 또래는 돈벌이 생각은 전혀 없고 학문에 대한 낭만이 있었다. 특히 핵심적인 학문에 대한 현실 등을 그 가난한 50년대에 깨달았다.

당시 문리대, 법대는 엘리트만 가는 곳이었다. 한국은행에서 문리대 출신을 선호했다. 문리대 학생이 상대 학생보다 좋다고 여겼다. 공부로 돈벌이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1학년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대학원은 독일에서 시작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미국에서 여기로 전파됐다. 대학원에서 연구를 시작한다는 인식이 전파된 것이다. 대학원에서 연구한다는 생각을 극복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학부 1학년 때부터 연구에 뛰어들어야 한다. 미국 좋은 대학은 1학년부터 연구를 시작한다.

이재열: 50년대 문리대 분위기 말씀하셨는데, 60년대 문리대 분위기는 어땠나?

이준규: 나는 고등학교 3학년까지 화공과를 지원했다. 당시엔 공부 좀 잘하면 무조건 화공과였다. 하지만 화학은 재미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수학을 잘했다. 3학년 담임 선생님이 체육 선생님이었는데, “너는 적성이 물리학이다”라고 하셨다. “그 파고드는 성격이면 자기가 보장할 테니까 물리학을 해라” 수학을 한다고 하면 집에서 반대했다. 고등학교 선생님밖에 못한다며… 굶어 죽는다고 했다. 하지만 물리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분야였다.

그래서 나는 결국 물리학과에 들어왔다. 들어오고 보니 체육 선생님 말이 옳았다. 물리학 하는 걸 살면서 즐겼고. 대학생활 분위기도 좋았다. 요즘 학생처럼 죽어라고 공부하는 것도 아니었고 여유가 있었다. 대학원을 가서는 기초가 아주 튼튼하다고, 학부에서 잘 배웠다고 칭찬을 들었다. 미국 가서 무슨 전공을 할까 고민하던 중 “너는 미국 가서 입자이론을 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물리학에선 가장 fundamental하며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 하는 영역이다. 그 선생님의 말도 옳았다.

이준구: 제가 경제학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나는 수학이 무지 싫어서 이과는 가기 싫었다. 부모님은 취직 잘 되는 공대를 가기를 원했다. 나는 68년에 문과에 입학했다. 당시에는 경제 발전이라는 게 한국사회의 화두였다. 그래서 경제학의 학문적 위상이 높아졌다. 60년대는 문리대의 화려함이 퇴색되는 시기였다. 나는 경제학이 각광받기 시작하니 순진한 마음으로 선택했다. 경제학을 하려면 수학을 해야 한다는 건 전설처럼 떠올랐을 뿐 와 닿지는 않았다. 경제수학에서 가장 기초적인 게 미적분인데 고등학교에선 이걸 안 배웠다. 경제학에선 수학, 통계가 중요한데 통계학을 매우 부실하게 배웠다.

미국을 가보니 충격 그 자체였다. 경제발전론은 한국에서는 주축을 이루지만 미국에서는 하나의 전공으로서 거의 무시되는 시기였다. 당시 한국 경제학자들은 아서 루이스를 존경했는데 프린스턴에서 그 사람은 노벨경제학을 받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축하를 안 했다. 행정대학원 소속이어서 경제과 사람들이랑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개발경제학은 천대받는 학문 분야였다. 대부분이 이론 분야를 전공했다.

대학원에서 기초를 할 때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을 지나가야 하는데 미시에서는 일생동안 듣도 보도 못한 해석학을 주축으로 증명이 이뤄졌다. 대학원 들어가서 해석학을 들어야 한다고 해서 동기인 이지순 교수랑 문리대 2학년 수학과 해석학을 청강했다. “수학과 아닌 학생들 손들어라” 해서 손을 들었더니 “어느 소속이냐?” “경제학과 대학원입니다” “너희들이 듣는다고 알겠냐? 내일부터 오지 마라”고 했다. 한국에 와서 그 교수님을 비난하는 소리도 했었다. 결국 해석학을 모르는 나는 미시경제학 자격시험을 암기로 돌파했다. 증명은 못 하지만 암기로.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은 맨땅에 헤딩한다는 느낌이었다. 1년 내내 허덕였다. 내가 4년 동안 배운 경제학 지식이 모두 소진됐다는 느낌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후회되는 건 역사, 문학, 철학이 재미있고 고상하다는 걸 너무 뒤늦게 알았다는 것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그리고 내 적성을 본다면 역사, 문학, 철학이 더 재미있지 않았겠나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 교육에 문제가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 넓은 시야를 키워주지 않는 점은 안타깝다.

이재열: 다음 질문으로, ‘기초학문이 무엇인가’는 항상 문제다. 법인화 후 만들어진 소위원회에서 16번의 회의 끝에 기초학문이 무엇인지를 결론 내지 못했다. 현직을 떠나셨으니까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무엇이 기초학문인지 진단해주길 바란다.

김성복: 17~18세기에는 라틴어, 희랍어, 히브리어, 수학, 지리학, 철학, 등이 기초학문이었다. 이들은 다른 학문의 기반이다. 19세기 들어서는 기초학문의 내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기초학문이 커버하는 영역이 넓어졌다. 역사, 문학, 수학, 경제학 등이 주된 기초학문이었고 라틴어, 희랍어는 퇴보하기시작했다. 코어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리학, 수학, 역사학, 지리학 등을 중심으로. 한국에선 열 몇 개가 기초학문으로 있지만 다 소용없고 재편성해야한다. 5~6개 기초학문 외에는 선택과목으로 해야 한다. 과 이기주의 때문에 너도나도 기초학문이라 한다. 옛날의 문리과대학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

이재열: 역사적인 트렌드를 이야기해 주셨다. 과거 라틴어의 역할을 지금은 디지털이 하고 있다.

이준규: 포괄적이고 과격한 말씀 해 주셨는데, 나는 서울대의 현실에 맞춰 둘로 나눠 제시한다. 현시점에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기본적 성찰을 다루는 학문, 여러 학문에 기초적 도구 역할을 하는 학문. 역사, 철학, 물리, 화학, 생물학 등이 자연과 인간에 대한 기본 성찰을 다루는 학문이고 수학, 경제학, 컴퓨터 등은 기초적 도구 역할을 하는 학문이다. 공학 등은 응용학문이다. 공학의 기초라고는 하지만 기초학문에선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그쪽에서 기초는 물리, 화학, 산업공학 같은 경우는 경제학의 논리를 끌어다 사용하는 것이다. 예술 등 문화는 좀 다른 성격이다. liberal art는 예술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에 속한다.

이준구: 옳은 지적이다. 나는 기초학문의 정의를 엄밀히 내릴 수 없다고 본다. 수학, 철학은 여지없이 기초학문이지만 경제, 정치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들은 완전한 응용학문은 아니다.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경계가 명확하지는 않다. 학문의 hierarchy에서 어떤 학문이 기초가 돼서 그 위에 학문이 응용이 돼서 형성될 수 있다. 경제학은 수학과 철학이 기초가 돼서 형성된 것이고, 경제학 위에 응용이 돼서 경영학이 형성됐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걸 의문의 여지가 없는 기초학문이라 칠 수 있다. 자연과학, 역사, 문학, 철학 등이 있을 것이다.

서울대에서 기초학문 진흥 이슈를 다룰 땐 사회적 수요도 생각해야 한다. 경영학, 법학, 의학, 공학은 직접적인 수요가 있다. 학문 자체가 사회적 수요가 있다. 철학 등 기초학문은 직접적 수요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국립인 서울대가 그런 걸 보호하지 않으면 고사한다. 그런 관점에서 기초학문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김성복: 기초학문은 사립대학에선 못하는 거다. 국립대학에서 ‘이거는 꼭 알아야 한다. 이게 없으면 응용학문을 할 수 없다!’ 하고 해야 한다. 국립대학에서 못하면 못한다.

이재열: 응용학문의 효율성의 논리와 대비되는 정당성의 논리가 기초학문과 관계된 것 같다.

이준규: 기초학문이 효율성 측면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가장 우수한 대학에서 우수한 사람들을 데리고 해야 한다. 기초학문은 모든 기본 도구를 준다. 미래에 대한 투자다. 현실적인 투자가 아니라. 예컨대 물리학의 새로운 이론은 공학 등의 분야에 이용된다. 그래서 전 선진국에선 가장 우수한 대학에서 기초학문에 매진한다. 국가 전체를 이끌어나가는 통찰력 있는 인재가 기초학문을 해야 한다.

이재열: 서울대에서 가장 핵심적 사업이 학문후속세대 양성이다. 대학신문에 교수가 ‘이들이 정말 학문후속세대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학문후속세대는 외국에서 학위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서울대에선 학문후속세대를 지원하는데 실제 학문후속세대는 외국에 있는, 어긋나 있는 구조다. 인문·사회계열에선 박사 학위를 따는 데 100개월이 걸릴 만큼 학위 따기가 어렵다. 학위를 따고 나서도 취업을 하지 못한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도 정규직 취업률은 인문·사회분야의 경우 20% 내외에 불과하다. 기본 생계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운 시절에 기초학문에 all-in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정작 풍요로운 시대에 들어서는 다들 안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이제 기초학문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나? 현실을 어떻게 진단해야 하나?

김성복: 서울대 대학원 교육과정이 내가 보기엔 대학원 과정의 실태 보고서를 보니 잘 안 되고 있다. 학부생들은 4학년 마치면 외국을 간다. 그렇게 좋은 학생들이 서울대에 안 온다. 특히 어떤 분야는 대학원 학생이 없다. 우리는 연구중심대학에는 동의하지만 정작 대학원생은 없다. 우리 대학의 문화, 조직과 학제, 이것들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대학원 과정은 가중치로 두고 예산 편성을 할 때 학부는 적다. 이거는 다 뜯어 고쳐야 한다. 그런 차별, 학부 대학을 그렇게 등한시하는 건 그만둬야 한다. 학점도 융통성이 있어야. 교수에 따라 (강좌) 제목에 따라 학점 수도 달라져야 한다.

둘째로는 대학원에게 예산편성 가중치를 두는 것도 없애야 한다. 그래야 학부 대학이 살아남는다. class 사이즈도 대폭 삭감해야 하나. 250명 강의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 식으로 서울대가 해서는 안 된다. 우리 때는 사학과가 1년에 15명 뽑았다. 학부생 전체 합쳐 봐야 60명밖에 안 되는 셈이다. 그래도 나라에서 투자를 하고 그랬는데…

그리고 교수들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active하게. 학생들보고 active learner가 되라는 것보단 active teacher가 돼라. 50년대 교수들은 그랬는데, 나는 그걸 본받아서 교수가 됐는데… 그리고 학풍을 조성해야 한다. 학교가는 게 재미있게 돼야 한다. 학부생도 연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은 대학원생만 연구하러 간다. (학부) 1학년 때부터 해라! 연구소 교수 등에게 가서… 교수, 학생 간 밀착 관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대 행정 체제가 일을 할 수 없게끔 돼 있다. 보증 받은 사람들이 학과장, 학부장, 연구처장 등을 하고 있다. 2년 짧은 임기는 일을 못 하게 만든다. 손을 딱 붙잡아 두면 어떻게 하나… 미국에선 총장이 15년 하고 학장도 4년에서 8년까지 한다. 연구소장 임기가 2년이면 어떻게 정성을 들여서 일을 할 수 있나. 일을 하려면 보증 받은 사람에게 힘을 줘야지. 서울대가 지도적인 역할을 못 한다.

우리도 학과제에서 꼭 하나만 선택하는 거 없애야 한다. transdiscipline, crossdiscipline, 이런 걸 할 수 있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줘야 한다. 그런 거 안 하고는 좋은 학자가 될 수 없다. 경제, 물리, 천문, 역사, 문학 별걸 다 하는 게 진짜 전임교육이다. 전임교육을 발휘하려면 우리도 학제가 바뀌어야 한다. interdiscipline도 안 되고 transdiscipline이 필요하다. 2개만 해서는 안 된다. 젊을 때 안 하면 언제 하겠나. 이를 위해 대폭적인 행정 제도적 개편이 있어야 한다. 이거 안 하고는 하버드, 프린스턴 못 따라간다.

이재열: 이상적인 transdiscipline이 좋긴 한데 학생들은 취업에 고민이 많고 현실은 학과제로 돌아가고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나?

이준규: 너무 세분된 학과가 있는건 반대한다. 학과가 너무 넓게 돼 있는 것도 반대한다. 그걸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학부생들은 성숙하지 못했다. 자기 스펙 쌓기 위해 여러 전공 하는 거지 깊이 있게 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제도적으로 복수전공 장려하는 건 찬성한다.

하지만 서울대에선 반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심화전공 제도는 정반대의 움직임이다. 복수전공 안 하면 심화전공을 하란 소린데 그럼 대부분이 심화전공을 할 거다. 단일 전공 학점을 잔뜩 들으라는 거지만 학부에는 들을 게 별로 없다. 매우 잘못된 제도다. 지금이라도 바꿔야 한다. 나는 학부에서 기초학문은 연구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본다. 학부에선 생각하는 기틀이 거기서 정해진다.

응용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도 기초학문은 기틀을 제공한다. 학부에서 기초학문 연구를 진행하더라도 그것은 교육의 일환이어야 한다. 선생님들이 교육을 할 때 자기 전공 중심으로 교육하는 건 안 된다. 지금 수학 수업은 수학이 어떻게 응용되는지 절대 가르치지 않는다. 수학 수업에서 물리이야기, 경제이야기 못 한다. 공학에 어떻게 응용이 되는가를 말해줘야 한다. 이렇게 해야 응용학문 하는 사람들에게도, 기초학문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기초학문 하는 대학은 전 대학의 기초학문이 된다.

하지만 교수들은 학부 교육에 별로 신경을 안 쓴다. 어떤 단과대 연구실은 학생이 문에 들어오지 못하게 문이 두 개가 있다고 한다.

이재열: 교수 평가가 너무 연구 중심이기 때문 아닌가?

이준규: 교수들은 논문 개수 채우기에 쫓겨서 학부 교육엔 관심이 없다. 진정한 멘토? 상담? 관심조차 없다. 일부 이공계 교수는 모든 학생을 자기 입장에서 생각. 프로젝트나 연구 업적 쌓는 데 이 학생들을 어떻게 부릴지에 관심을 갖는다. 학생이 국가의 일꾼이나 연구자가 되게 한다는 게 아니다. 1차 목적은 자기 일에 어떻게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교수가 그런데 학생들도 똑같이 이기적이다. active한 연구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하고 결국 젯밥에만 관심을 갖는다. 어느 중견 교수는 “내 실험실 오는 학생 아니면 관심 없습니다”라고 하기도 했다. 젊은 교수는 그것보다 더 한다.

이준구: 대학생도 연구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대학의 현실은 생각과 큰 차이가 있다. 이재열 선생님도 말했지만 학부생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건 당장 몇 년 앞의 진로다. 취업, 의전, 법전 등… 경제학부에서 똑똑한 사람은 전부 법전을 간다. 그런 사람들한테 학문후속세대로서의 자세를 기대할 수는 없다.

김성복: 머리를 뜯어고쳐야 한다.

이준구: 그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학생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당신은 내 처지가 아니니까 모른다”고 한다.

김성복: 미국에선 적어도 직종을 세 번 바꾼다. 한국에도 급변하는 사회, 경제, 문화에서 하나만 가지고는 안 된다.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이준구: 그 사람들이 사회 나가서 정말로 자기 인생을 보람 있게 꾸려나가기 위해선 그런 approach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당장 취업을 하지 못하면 사회생활의 첫 발을 뗄 수 없다. broad한 기초학문이 아니라 스펙, 자격증 등 스펙 쌓기에 골몰하는 학생들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건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걸 뜯어고칠 수는 없다. 그런 행동을 주어진 조건으로 받고 학생들을 인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 나는 기초학문이 어려움에 처한 이유가 사회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문리대 출신을 우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했다. 사회에서 대학 졸업생을 선발할 때 전공을 볼 필요가 없다. 꼭 경영대를 쓸 필요는 없다.

대학 졸업생에게 필요한 조건은 trainability, 목적에 맞는 training을 했을 때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졸업생들 뽑아봤자 하나도 모른다, 처음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불평한다. 기업에서 필요한 스킬을 대학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대학이 ‘쓸모 없는 애들을 키우고 있구나’ 하고 반성하고 커리큘럼을 바꾸고 있다. 사회가 그렇게 몰고 가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불리한 입지에서 싸우고 있다. 하루아침에 총장의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 사회와 맞서 싸워야 한다.

이준규: 15년 전 학생하고 요사이 학생하고 뭐가 변했는가? 첫째 사회 환경이 변했다. 고등학교에선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해 학생들은 선행학습에 시달리고 익숙해있다. 배운 것은 쉽고 안 배운 것은 어렵다. ‘왜?’ 하고 물을 생각을 해선 안 된다. 무조건 받아들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그런 것은 없다. 학문을 깊이 있게 따진다? 없다. 스스로 생각하는 걸 무서워한다. 하지만 찾는 거에는 도사다. 지금은 모든 생각이 획일화됐다. 옛날에는 미친놈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학생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심하다. 미국은 독립심이 강하고 자기가 어떤 인생을 사는 게 바람직한지, 원하고 좋아하는 게 뭔지를 우리 학생보단 더 많이 생각할 것이다. 우리 학생들은 부모에게 밀려서… 아주 이기적이다. 남에 대한 배려, 추호도 없다. 이걸 바꿔야 한다.

그때와 비교해서 지금 학생들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교육하는 세대의 잘못이다. 옛날의 좋은 건 살리고 지금의 좋은 것도 살려야 한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교육에 너무 무관심하다. 논문 쓰는 것도 1년 단위가 아니라 몇 년 단위로 평가한다면 숨통이 트일 것이다. 학생 교육도 점수를 주어야 한다. 대학교과과정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외국에서는 가장 중요한 커뮤니티가 커리큘럼 커뮤니티다. 하지만 우리 학교에서 만들면 모든 학과에서 다 싫어한다. 그래서 교과과정위원회가 없다. 지금은 기초교육원이 그 역할을 맡고 있지만 다 서로 봐주는 식이다. 교과과정위를 만들어 권위를 주고 동시에 거기에 평가까지 맡기자. 현행 강의평가 결과 하위 10% 교수에게만 주의를 줘도 교수들은 정신을 차린다!

이재열: 교육 이야기가 나온 김에 기초학문과 교육의 관계를 말해 달라.

이준규: 학부에서 기초학문은 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연구도 교육의 일부로 진행될 뿐이다. 교육은 빼 버리고 논문 개수만 늘리는 게 무슨 연구중심대학이냐. 교육과 연구가 같이 가야 한다. 교육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대학원은 교육과 연구를 같이 하되 학부에선 기초학문대학이 대학 전체교육에 영향을 준다. 대학 전체 학생에 대한 교육이라 생각하고 학생들에게 기초학문을 듣게 해야 한다.

이준구: ‘어떻게 키워야 사회의 인재가 될 수 있나?’라는 관점에서 교육해야 한다. 교수들은 강의할 때 그들이 학문후속세대인 양 착각하고 가르친다. 하지만 그들 중 학문후속세대는 10%정도다. 사회에 들어갈 사람들을 위해 경제학을 가르쳐야 한다. 나는 애들한테 경제학은 최소한으로만 들으라고 한다. 나머지는 광범위하게 기초학문을 섭렵하라고. 내 모교인 프린스턴대 잡지를 받아보면 모든 학생들에게 자연과학 이수를 의무화했더라. 현대사회에서 자연과학 기초지식을 모르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가능하다면 그런 방향으로 전환점을 찾는 게 좋겠다.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한국 최고의 철학자이며 문학 교수는 한국 최고의 문학평론가다. 학생들한테 한국 최고의 철학자, 문학평론가한테 수업을 듣게 하고. 시민대학 가서 돈 주고 들을 필요가 어디 있나.

김성복: 부연해서 말하자면, 연구에 학점을 할애해서 학생이 연구소에서가 교수들과 interact하면 교육과 연구를 따로따로 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할 수 있다. 그러려면 교수가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안 되고 있다.

이준구: 학생들 지도에 reward가 있어야 한다.

이재열: 하지만 교육보단 연구, 연구 못지않게 바깥활동이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준규: 교육은 교수 중 바보들이나 하는 거라도 한다. 옛날엔 안 그랬는데…

이재열: 이제 다음 질문으로… 한국 전체의 연구소 시스템을 보면 지속성 없이 가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연구소가 지식, 경험이 축적되는 구심점을 가지고 간다기보단 겉도는 느낌이다. 과제나 프로젝트가 끊기면 사람과 축적된 지식이 모래 탑처럼 무너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준규: 서울대 연구소는 형식적이고 존재가 미미하다. 연구소는 돈을 수급받기 위한 통로일 뿐이다. 외국에선 단체로 연구비를 받지만 우리나라에선 개인이 연구비를 탄다.

이종섭: 모든 교수들은 벽돌만 찍어낸다. 벽돌로 집 짓는 걸 연구소가 할 수 있지 않나. 개별 교수 네트워크를 관장할 수 있는 연구소가 있으면, 적어도 인문·사회계에는 연구소가 필요하지않나.

이준규: 기초과학공동기기원이나 반도체연구소 등은 그 나름대로 발전시켜야 한다. 통일연구소 등 학문과 연계된 건 서울대에서 키워야 하지 않나.

김성복: 미국 좋은 연구소는 학부생을 많이 고용한다. UCLA 데니스 홍 로봇 실험실엔 학부생이 대학원생보다 3배 많다. 미국에서는 학부생, 대학원생 할 것 없이 연구에 참여한다. 한편 서울대에는 아시아를 키워드로 하는 연구소가 15개일 정도로 우후죽순 연구소가 있다. 하지만 폐지되는 연구소가 없다. 연구 자체를 밑에서부터 확 개혁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이재열: 대학을 군 단위까지 만든 다음 구조조정해서 있는 대학을 유지하게 하는 것과 서울대의 연구소가 비슷한 사례인 것 같다. 기반 인프라 생태계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이준규: 돈을 관리하는 인프라는 완성됐다. 하지만 교수 간 협업이 없어 학문 하는 자세가 밑바닥일 뿐이다.

이준구: 자연과학은 위기까진 아니다. 그러면 인문학은 서포트 없느냐? 그것도 아니다. 사회대보다 많다. 사회에서 서포트는 하지만 위기론은 근본적으로 사회의 수요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박사를 마련해봤자 직장을 마련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양성해도 심어줄 수가 없는 것이다. 정부는 돈으로 때우고 HK 등 대증요법으로 대학원에게 ‘당장 가난을 면해라’ 하는 것에 급급하다. 근본적 수급과 구조에 문제가 있다. 과거엔 고용이 확대되며 대학도 확대됐지만 이제는 (고용을) 줄여나가니까 출구가 점차 작어진다. 근본적 위기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

이재열: 암울한 현실이다. 그런데 서울대는 4년 단위의 기초학문진흥계획안을 만들고 정부에서는 그 계획을 보고 그에 필요한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는 강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준구: 격려는 근본적 해결책이 못 된다. 나도 답이 없지만 뭘 해야 하는가? 피켓 들고 나가서 사회에 선전포고를 해야 한다. ‘기초학문을 무시하지 말라. 기초학문은 삶에서 무지 중요하다.’ 기업들에게 ‘당신들이 단기적 시각에서 사람을 고용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교육해야한다.

이재열: 기초학문의 진가,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걸 드러낼 수 있는 모범사례 발굴이나 홍보가 너무 안 됐다.

이준구: 기업 CEO가 모두 경영대는 아닌 것이다. 인문학적 소양이 기업 성공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교육해야 한다. 대(對)사회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재열: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나? 액션플랜이 필요하다. 기초학문진흥위가 법적인 기구이므로 예산이 들어갔을 때 어떻게 결과를 낼까가 중요하다.

이준구: 학교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도 우습다. 장기적인 싸움일 뿐이다. 이데올로기는 장기적 기간에 걸쳐 변한다. 단기적 프로그램은 그다지 효과가 없다.

이재열: 4년짜리로라도 액션플랜이 없을까. 지금의 기초학문진흥계획은 있던 것들을 재분류만한 것이다. 실제로 디자인해서 쓰는 건 학문후속세대 후원 뿐이다.

이준구: 생계비 지원은 당장은 고통을 덜어주지만 졸업하고 난 뒤 커리어는 전혀 무관하다. 고민이 안 풀어졌다.

이준규: 여기서 논하긴 어려운 문제다. 사회가 받아들이도록 해야 하는데 너무 어려운 일이다. 외국에선 인문사회계 박사 받고 상당수가 직장은 고등학교 교사로 간다. 우리나라는 법으로 못하게 해 놨다. 고등학교에서 전문 분야 교육도 할 수 있고 그들에게 직장도 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다면 사범대에서 반발하겠지.

이준구: 졸업생이 고등학교 교사로 간다? 그런 방안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김성복: 교양교육도 기초학문이다. 예컨대 기초학문인 컴퓨터의 교양 강좌는 한 학기에 3강좌밖에 개설돼지 않았다. 한 강좌를 수백 명이 듣는다는 얘기다. 기초학문 교육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버드 교양교육 개편에 역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다. 옳은 일이다. ‘이거는 다 해야 한다’고 다른 과목을 넣은 것이다.

이준규: 동감한다. 자유가 좋은 게 아니다. 어느 정도는 학생들한테 요구해야 한다. 단대한테 맡길 게 아니라 대학 자체에서 안을 세워야 한다. 교양교과목 수, 반으로 줄여야 한다. 지금은 300 몇 개가 있지만…

이준구: 핵심교양을 선정할 때 관여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핵심교양 교과목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학과 이기주의가 작용했다. 모든 과에서 강좌 하나씩 핵심교양으로 선정해 달라고 했다.

이준규: 단과대의 힘이 세다

이재열: 그래서 서울대를 종합대학이라기 보단 연합대학이라 한다.

이준규: ‘거기에 과목을 안 넣으면 학과가 망한다’는 인식은 버려야 한다. 김성복: ‘이것도 해야 한다, 저것도 해야 한다’는 학과 이기주의. 아주 개판이다.

이재열: 그래서 요즘엔 기초학문과 구분되는 기반학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다. 개념이 정치화된 것이다. 기초학문이 정치화되면 학내에서 제 갈 길을 잃어버린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10년 후 바람직한 서울대의 모습은 무엇이어야 할까?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제시해 주기 바란다. 최대한 노력할 수 있는 극단치는 어느 정도까지인가?

이준구: 당국에 바라는 건 ‘기초학문중심대학’이라는 걸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는 것이다. 인문대, 자연대가 주축이고 사회대가 가세한 걸 서울대의 중심이라는 컨센서스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런 건 본부 회의에선 꿈도 못 꾸는 일이다. 그런 총장은 당선되지 않는다. 내가 밖에서 하는 이야기로, 기초학문이 중심이 된다는 것에 대해 ‘정부가 대학에 지원해야 할 당위성이 있느냐?’는 걸 묻곤 한다. 당위성이 상당히 희박하다. 대학이 공공재, 가치재도 아니고… 유일한 당위성은 기초학문이 이로운 외부성을 발휘하기 때문에 이에 개입팔 필요가 있어서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다. 국립대학법인 서울대의 존재 의의는 기초학문에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 기본 정신이 자라날 수 없는 분위기다. 비(非) 기초학문이 너무 많은 voting power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총장이 용기를 내서 ‘우리 학문의 정신은 기초학문이다!’라고 선언하면 좋겠다.

이준규: 그것이 하버드, 프린스턴의 정신이다.

이준구: 프린스턴을 롤모델로 삼을 수 있다. 그곳의 기초학문은 집중돼있는 반면 우리는 백화점식이다.

이준규: 10년 후 액션플랜을 꿈꾸자면 학부과정의 기초학문에 해당하는 문리대 같은 걸 만들었으면 한다. 교육의 중심으로 기초학문대학을 인문, 사회, 자연 중심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나친 학과 세분은 안 좋다.

이재열: 그런 실험을 연대와 성대에서 하고 있다.

이준구: 하지만 지금의 세력관계에서 도저히 불가능한 꿈이다.

이준규: 또 서울대는 기초학문을 먹여 살릴 생각을 하고 돈을 쓸 때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노벨상 수상자 석학 유치는 상당한 돈 낭비다. 차라리 그 돈으로 조교 임금을 올렸으면 한다. 그러면 BK, HK 못 받는 데를 지원할 수 있다. 조교의 위상을 확실히 하고. 조교의 의무, 권리를 확실히 해야 한다. 미국에선 TA teaching fellow에 예산의 상당부분을 지원한다. 외국 일부 대학은 반드시 모든 박사과정이 TA를 해야 한다. 교육도 연구의 일부라 본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선 교수들이 자기 심부름꾼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울대가 기초학문에서 독보적 수월성을 나타내려면 관악 펠로우를 도입할 수 있다. 하버드 주니어 펠로우는 조교수급으로, 전국에서 제일 우수한 박사 10여명을 모은 것이다. 관악 펠로우는 박사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연구만 하게 하는 것이다. 포스닥이랑 조교수 사이 5년 정도 기간을 둘 수 있다.

이준구: 기초학문후속세대한테 좋은 출구가 될 것이다. 다만 인원 채우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정말로 미래가 보장되는 인재를 모으는 게 중요할 것이다.

이준규: 이에는 별도의 위원회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의 비전으로 생각하면 좋지 않겠나.

이재열: 그럼 토론은 이정도로 마무리 하고, 혹시 빠진 것이 있나?

김성복, 이준구, 이준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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