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서의 역사 ①금서의 의미와 범위
한국 금서의 역사 ①금서의 의미와 범위
  • 한상범
  • 승인 2004.09.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서, 시대의 억압과 모순의 기록
한국 사회에서 ‘금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많은 책들이 금서 목록에 올라있으며, 지금도 ‘운동권’ 학생들이 ‘불온서적’을 소지하고 있다는 죄목으로 연행되고 있다.

 역사 속에서 금서는 한 시대의 요구와 모순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대학신문』 에서는 금서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금서와 당시 사회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연재 기획을 마련했다.


연재순서

①금서의 의미와 범위

② 조선시대의 금서

③ 일제 강점기∼대한민국 건립 시기의 금서

④ 박정희 독재 정권 시기의 금서

⑤ 전두환 정권 시기(5공화국)의   금서

⑥ 6공화국 이후∼현재 시기의 금서

 

출판과 표현의 자유라는 근대적 제도를 기준으로 금서(Banned Books)를 생각하면, 서양에서 인쇄술의 발달에 대응해서 나온 검열제도의 타도를 위한 자유주의의 확립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물론 자유주의 대두 이전에도 책에 대한 지배세력의 통제는 있었다. 근현대 이전의 조선시대 금서까지를 대상으로 금서의 역사를 따져 보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위 두 가지를 함께 아울러서 금서를 보면, 우선 ‘금서’란 당대의 지배세력이 발매와 배포 및 독서 등을 금지한 책을 말한다. 근대의 서양을 보면 인쇄술의 발달과 서적의 보급으로 로마 교황청이 ‘이단’ 사상의 전파를 금압하고자 검열과 금서제도를 도입했고, 권력자는 그것을 모방 채택해 이용했다. 조선시대를 봐도 일찍부터 기성 지배권력이 해롭다고 본 서적은 금압했다. 이는 영ㆍ정조 시대 이래 중국을 통해 천주교가 들어와 유교적 세계관과 가치체계에 위협을 줌으로써 두드러지게 문제됐고, 이조말기 대원군 집정 때 천주교 탄압에서 절정에 달한다.

 

한국 금서의 역사는 조선시대 이후에는 일제강점기(1910∼1945)를 거쳐서 해방 후 과도기(1945∼1948), 분단시대(1948∼현재)로 나눠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분단시대 이후에는 이승만 시대와 군정 및 신군부 집정 등으로 이어졌다.

금서는 무슨 이유로, 어떤 제도를 통해서 규정돼 왔는가?

 

▲ © 김동인 기자

먼저 당대의 지배세력이 사상의 표현에 대한 규제의 필요를 이유로 금서를 만들어 왔다. 기성 질서와 풍속·습관에 해를 끼친다고 보이는 사상ㆍ신조ㆍ신앙ㆍ세계관 등 지배 세력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단속의 대상이었다. 카롤리데스(N J. Karolides)의 『100권의 금서(100 Banned Books)』를 보면 금서로 규정된 이유를 ①정치적 근거 ②종교상 사유 ③문란한 성 표현 ④사회질서 문란 등으로 나누고 있다. 그런데 현대의 법률적 근거를 기준으로 해서 보면 ①기존질서와 체제에 대한 도전(예:내란선동과 이적표현) ②성 표현의 음란성으로 인한 사회풍속 문란 ③타인의 명예인격권 침해 등 외에 특히 청소년 보호차원에서 위험한 표현과 내용(예:잔혹한 범죄 등의 장면과 그 수법)을 들 수 있다.

 

검열과 금서 지정은 권력자의 어리석은 실수

 

당대의 실정법은 위의 사유에 따라 금서의 대상이 되는 서적을 정하고 관련 행위를 처벌, 각종 징벌적 제재를 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라에 따라서는 검열을 전담하는 관청이 설치되어 있었다. 전제 폭정이나 식민지 지배, 군사독재 하에서는 정보 공안 경찰기구가 총동원돼 정보와 지식의 유통체제를 통제하고 조작했다. 검열과 금서 제도는 역사적 체험을 통해서 보아도 권력자의 어리석은 실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말까지 사상탄압으로 악명 높은 일제 치안 유지법(1925) 하의 사상전향강제제도가 유지돼 온 우리의 실정은 자유주의 이전의 시대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제7조의 이적표현물의 유죄 증거로 단죄돼 좌경서적의 리스트에 오른 책을 보면 기막힌 사실을 보게 된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 도피』라는 유명한 저술부터 조정래의 장편소설 『태백산맥』까지 불온서적으로 지정돼 있다. 우리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천 수백 여종의 금서 리스트를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더욱 놀랄 일은 그 리스트 선정과 감정 및 법정에서의 증언을 맡은 경찰청의 산하에 있는 공안문제연구소나 금서 리스트 작성을 맡은 대검찰청의 민주이념연구소라는 국가기구가 있고 행정기관의 금서규제 검열기구인 간행물윤리위원회라는 사실상의 사전 검열기구가 있다는 것이다. 해방 후 잠깐 자유공간이 열렸던 1945년 직후에 전석담이 번역한 카우츠키의 『자본론 해설』과 이시첸코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바탕한 『철학사전』 등이 간행되던 시절은 지금도 꿈만 같다.

 

한국사회 아직까지 천 수백종의 금서 존재

 

결국 금서제도의 존치는 사상통제이고 지적 호기심의 원천적 거세로 통한다. 이 는 법률적으로 사상표현의 자유의 면에서 연구되고 역사적으로는 인류의 지적 유산의 억제라는 측면에서 탐구될 수 있는 것인데, 우리는 그 연구 성과를 높이 평가할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