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시간선택제 일자리 2년, 평가와 과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하루 4~6시간만 일한다. 육아, 퇴직 준비,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도 일을 계속할 수 있다. 최저임금과 4대 보험 가입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도 보장된다. 전일제 노동자보다 짧은 시간 일하지만 차별받지 않는다. 이 일자리는 근로기준법상 ‘단시간 근로자’로, 정부 정책에서는 ‘시간선택제’라고 불린다.

 

시간선택제, 내가 선택하는 근무 시간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고용노동부가 지난 2013년 2월 ‘일家양득 캠페인’을 선포함에 따라 처음 도입됐다. 출산 후 육아나 가사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같은 해 6월 ‘고용률 70% 로드맵’이 핵심 국정 과제로 발표되면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활성화하기 위한 계획이 구체화됐다. 정부는 정규직만으로 200만개가 넘는 일자리를 추가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2017년까지 시간선택제 일자리 93만개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정부는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에까지 시간선택제 도입을 장려하고 있다. 시간선택제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의 130% 이상을 지급하고 전일제와 차별 없이 대우하는 사업주에게 1년간 매달 80만원 한도에서 월급의 50%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 지원으로 시행 2년차를 맞은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이제 고용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민간부문에서 정부 지원을 받은 시간선택제 노동자는 2013년 1,294명에서 올해 5,800명으로, 정부의 지원사업에 참여한 기업 수는 2013년 328개에서 올해 2,328개로 크게 증가했다.

 

유연한 고용인가 저임금·단기직 일자리인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가장 반기는 이들은 일과 가정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던 경력 단절 여성들이다. 일하는 시간을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 있어 육아를 병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 1월 ‘스타벅스 리턴맘바리스타’로 재입사한 이현진 씨는 평일 오전부터 점심 러쉬 시간까지 일한다. 대학 졸업반 때 스타벅스커피 코리아에 입사한 이후 결혼을 하며 직장을 떠난 지 10년 만이다. 두 아이의 엄마인 이현진 씨는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면서 오전 10시에 출근해 아이들이 돌아오는 오후 2시까지 일한다. 이현진 씨는 “하루에 4시간 일하지만 부점장으로서 정직원 대우를 받는다”며 “처음엔 남편이 한창 애들을 돌봐야 하는 시기에 일을 시작하게 됐다며 걱정했지만 이제는 아이들도 돌보고 즐겁게 일도 하는 걸 보며 안도한다”고 전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경력 단절 여성 외에도 장년층, 청년층에게도 안성맞춤이다. 장년층은 점진적으로 퇴직을 준비할 수 있으며 퇴직 후 제2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또 청년층은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 있다. 공부하는 동안에도 실무 경험을 쌓으며 취직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활용하면 탄력적인 인력 운용이 가능하다. 2014년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다수의 기업들이 시간선택제를 활용하는 이유로 ‘효율적인 인력 운영 시스템 마련’(45.1%)을 꼽았다. 특정 시간이나 요일에 업무가 몰릴 때 시간선택제 노동자를 활용하면 서비스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또 전일제로 채용하기엔 인건비 부담이 큰 고급 인력을 시간선택제로 고용하면 적은 비용으로 필요한 시간만 고용할 수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일자리는 늘었더라도 대부분의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저임금, 단기직의 단순 보조업무로 질이 낮다는 지적이다. 우선 시간선택제로 일해서 받는 월급으로는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버겁다. 2013년에서 2014년까지 정부가 지원한 민간부문 시간선택제 취업자 2,961명 중 약 40%는 100만원을 밑도는 월급을 받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실 이지환 비서관은 “고용률 70%를 위한 일자리 숫자 늘리기에 급급해 시간선택제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못한 것”이라며 “시간선택제 공무원들은 보통의 공무원들과 달리 영리활동이나 겸직이 허용되는데 이는 시간선택제 급여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하지 않는다. 비정규직으로 분류되는 시간선택제 노동자들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에 따라 2년간 근무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전일제 노동자의 무기계약직 전환도 꺼리는 기업들이 시간선택제 노동자를 2년 이상의 고용 기간으로 계약하는 것은 흔치 않다. 이에 정부는 기업들에게 2년의 고용기간을 채운 시간선택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면 인건비를 지원하는 유인책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시간선택제 취업자 2,091명 중 2년 미만 근무자는 79.2%에 이르렀으며 시간제 노동자의 근속기간은 1년 6개월에 그쳤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사람이 바뀌어도 별도의 훈련 없이 바로 업무를 할 수 있는 직종에만 시행 가능하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시간선택제 노동자를 모집하는 직종 중 67.2%가 콜센터, 판매, 매장 관리 등 단순 보조업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우문숙 비정규전략국장은 “고용시장에서 노동시간이 짧은 직종은 이미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정규직 일자리를 두 개, 세 개로 쪼개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고용주 입장에서도 소위 ‘반듯한 시간제’로 불리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창출되면 현재 183만명에 달하는 열악한 시간제 일자리의 질도 함께 올릴 수밖에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시간제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시간선택제처럼 정규직 수준에 맞추기 위해선 연간 7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아울러 새로운 고용 형태에 맞춘 인사운영이나 근태관리 등의 기반을 갖추는 데 추가적인 비용이 든다. 노무법인 유앤 안원복 노무사는 “일자리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채워지는 것인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퇴직금이나 관리비 부담이 큰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만만찮다”며 “회사 측도 시간제 일자리를 스스로 선택해서 만들고 채용하기보단 외부적 유인이나 요청에 의해 형식적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두 돌 맞은 시간선택제, 시간이 필요해

지난 22일(금) 고용노동부는 ‘시간선택제 2년의 평가와 향후과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일자리의 질 문제를 중심으로 시간선택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현장의 반응에 귀 기울여 앞으로 시행될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가한 패널들은 시간을 두고 현재 시간선택제의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패널로 참가한 권혁 교수(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시간선택제는 근로자에게 근로 시간에 관한 주도권을 쥐어주는 제도”라며 “앞으로 10, 20년간 다듬어야 안정화될 고용 모델이고 지금은 개선해나가는 단계”라고 말했다.

한편 고용노동부 고용문화개선정책과 윤수경 시간선택제 일자리 사업팀장은 “역할이나 기능에 따라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다양한 유형으로 나누고 이를 확산해 노동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고용 트렌드를 만들 것”이라며 향후 정책 보완의 굳은 의지를 밝혔다.

 

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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