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센터 원경주 전문위원/변호사

인권센터에 처음 왔을 때,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제목이 떠오른 것은 우정원 건물 주변의 좋은 시설들 덕분이었다. 이곳에서 서울대학교 사람들의 오래된 이야기부터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이야기까지 많은 일들을 보고 들었다. 사건 당사자와 주변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 때로는 담당 전문위원이 소용돌이의 일부가 된 것 같다가도 거리감을 유지하여 당사자의 온전한 목소리를 골라내어야 하는 시점이 있다. 이러한 작업을 게이트키핑이라고 부를 수 있다.

게이트키퍼(gatekeeper)라는 개념은 1947년 쿠르트 레빈(Kurt Lewin)이라는 심리학자가 식품이 식탁에 오르게 되는 회로이론에서 제시했다. 이는 나중에 언론인이 매체에 실을 뉴스를 결정하는 역할에 관한 말로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게이트키핑은 제3자의 역할만이 아니라, 당사자가 가장 먼저 스스로의 경험과 기억에 대해 하게 되는 것임을 짚어 본다. 이는 인권센터에서의 경험에 관해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새롭게 일어나는 인권침해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말하기 힘들었던 기억과 감정을 쏟아내는 이야기는 참으로 날 것이다. 이에 대한 섬세한 공감이야말로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게이트키핑의 시작점이 되며, 전문적인 도움은 그 마무리가 된다. 상담과 조사·심의 과정에서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여러 가지 방법에 관한 고민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누가 언제 누구에게 말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질문에 부딪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법정절차에서 논의를 거치며 원칙들을 만들어왔다. 가까이는 가족과 친구, 동료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운 일을 상담하기 직전에도 고민은 계속된다. 멀게는 헤이그에 소재한 국제형사재판소에서도 권력관계의 그물망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보다 멀리 있는 판단자들이 주효하게 보고 들을 수 있는 절차와 방법을 고민한다.

비슷한 고민은 지난 2월 크게 이슈가 되었던 사안을 마무리한 후 다녀온 국제인권연수에서 만난, 많은 국제기구의 실무자들에게서도 발견되었다. 또한 같이 연수를 다녀온 학생들과, 「샤를리 엡도」 출판사 사건을 계기로 주제가 설정된 ‘표현의 자유와 테러리즘’에 관한 토론회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말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의 ‘표현’에 대한 생각이 났다. 프랑스 현지 신부님이 표현의 자유가 프랑스인에게는 종교라는 농담을 하실 때도, 그 문화가 그냥 생겨난 것은 아니지 싶었다.

성희롱·성폭력을 포함한 다양한 인권침해의 피해자들이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대한 게이트키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상상보다 좋은 그 다음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과 같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의 기회를 미술관 옆 인권센터에서 만나게 되는 일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대화 당사자의 목소리와 느낌을, 당사자가 바라고 필요한 때에, 그 사람 대신 왜곡 없이 효과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서 중요한 일이다. <1박2일> 프로그램에 나온 서울대학교의 모습은 밝고 화사하게 간직되었다. 이처럼 소중한 공간에서 유사한 인권침해 사안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선택의 순간에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을 분명한 명암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원경주 전문위원

인권센터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