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에서 ‘어머니’와 ‘주부’로 가정학으로 보는 여성의 ‘근대화’

일본으로 유학 간 조성 여성들이 가정학을 통해 근대적 여성의 역할을 경험했지만, 이들이 습득한 근대 지식이 식민지 권력에 의해 전유됐음을 주장하는 내용이 10일 (금)에 열린 「일제강점기 여성 연구 집중 집담회」의 1차 집담회에서 발표됐다.

 

「가정학이라는 새로운 앎의 전파자 - 일제 하 여자 일본유학생의 지적 경험」을 발표한 박선미씨(교토대 박사)는 “일제 시대 조선에서 일본으로의 인구 이동에 대한 연구 중 조선 여성 출신의 일본 유학생에 관한 연구는 매우 부족하다”며 조선인 여성 유학생의 지적 경험을 가정학을 통해 검토했다.

 

그는 당시 조선 여학생이 근대적 지식이라 여겼던 일본의 가정학을 “기존의 며느리 중심이었던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을 주부ㆍ어머니 중심으로 재확립하고 나아가 가정 내 역할과 충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여성의 역할을 사회로 확장시키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친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또 박 박사는 동아시아에 가정학을 보급한 미국인 가정학자 마일럼의 활동을 제시하며, 당시 조선 여학생들의 지적 경험을 “가정학을 통해 당시 세계에 파급됐던 ‘여성의 근대화론’에 대한 경험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조선 사회 속에서 여성의 가정학에 대한 경험의 활용과 관련해 박 박사는 “가정학을 배운 여성들이 학교와 지역에서 생활개선 지도 및 교육을 담당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당시 조선총독부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조선 여성들을 내선일체론에 따른 조선인 생활 개선에 동원했다”며 “이는 여성 유학생들이 근대적 지식을 획득하고 유통시키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식민지 권력에 흡수됐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질의 시간에 이민주 상임연구원(여성 연구소)은 “당시 신문을 보면 기혼 여성이 소박맞아 유학을 갔다는 기사가 있는 등 유학 동기가 흥미로운데 실제로 어떤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박 박사는 “신문 기사의 사례는 1900년대 초창기의 경우이며 유학 열풍이 불었던 1930년대는 대부분 지주 계급의 미혼 여성들이 유학을 갔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람들이 3ㆍ1운동과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지배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등 사고가 변했고, 유학 관련 제도가 정비되면서 그 당시 유학 붐이 일어났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집담회를 주최한 정진성 교수(사회학과)는 “일제 강점기는 여성이 근대적 교육을 받기 시작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라며 “당시 실상과 변화의 의미, 또 다양한 이론적 시각을 배워보고자 했다”고 이번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집담회는 3차에 걸쳐 진행되며 18일(토)에는 「천황제와 여성 : 군위안부」를 나가이 교수(교토대)가, 20일에는 최경희 교수(시카고대)가 「식민지 검열과 여성의 공적 가시성」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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