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지속되는 학보사의 위기
10년 뒤에는 극복될 수 있을까
열정에만 기대는 보상 구조로는
개선되기 어려울 것
학보사의 위기는 ‘학보사의 위기라는 표현이 진부해졌다’는 표현조차 진부해졌을 정도로 오랜 기간 지속됐다. 원인을 짚어보고자 인터넷에서 학보사의 위기와 관련한 수많은 기사를 읽어봤지만 2000년대 초와 2010년, 2015년에 작성된 기사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오래 전부터 학보사는 같은 문제 상황에 처해있었을지 모른다.
학보사의 위기와 관련한 글을 쓰고자 위기의 원인을 몇 가지 짚어봤다. 크게 편집권 침해와 독립의 문제, 열독률의 감소와 학생들의 외면,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꼽을 수 있었다. 각 문제들이 처한 현황을 조사하고 5학기 동안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진단과 처방을 정리했다. 글을 쓰기에 앞서 마지막 질문을 던져봤다. 과연 10년 뒤 학보사는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아니다’였다. 학보사의 모호한 정체성과 기형적인 구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정리한 진단과 처방은 그 구조 속에서의 실천 가능성을 따져보지 않은 당위적 주장에 불과했고 앞서 찾아본 기사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같은 얘기를 반복하기 보다는 그 모호한 정체성과 기형적 구조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여전히 많은 대학의 학보사가 편집권 침해의 문제를 겪고 있다. 학보를 만드는 학생기자는 청년과 학생의 입장을 대변하려 하고 재정 지원을 하는 학교는 학보를 학교의 입장을 대표하는 매체로 생각하는 기이한 이중 구조 속에서 학교는 간섭하고 학생기자는 저항하는 모습은 수십 년간 반복돼 왔다. 학보사가 대학 본부에 소속된 기관이 아닌 별도의 학내 언론 기관으로 독립하기 전까진 크고 작은 편집권의 간섭 가능성은 항상 내재돼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편집권 문제가 학보사에게 여전히 필수적이고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편집권 확보 이후의 문제다. 학보사가 처한 위기의 본질은 편집권의 확보라기보다는 학보사가 스스로 존재 가치를 입증하기가 점차 어려워져 간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학보사가 처한 어려운 상황과 그에 대한 개선 방향은 오래 전부터 논의돼왔고 편집국에서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학보사가 처해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발목을 잡는다.
변화의 발목을 잡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학보사의 모호한 정체성과 기형적인 유인 체계다. 학보사는 취미활동을 하는 동아리라고 보기에는 일과 짊어져야 할 책임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직장이라고는 볼 수 없는 학생 조직이다. 이런 학보사가 그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실질적인 이유는 시쳇말로 ‘열정페이’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목적으로 모인 학생들이 고생을 자처해가며 남아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명감과 성취감이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학보사의 위기를 타개하자며 변화를 요구할 때 학보사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열정뿐이다. 학보사는 사설과 기사를 통해 청년들의 열정을 착취하는 기업을 비판해왔지만 정작 학보사도 더 나은 성과를 위해서 학생기자들의 열정을 착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학보사의 변화, 더 나은 결과물 뒤에 감춰진 것은 학생기자가 학보사 때문에 휴학을 하고, 6과목 중 5과목의 수강을 취소하고, 몸이 아파 나오지 못하며, 숨어서 펑펑 우는 모습이다. 기존의 업무를 간신히 버텨내게 한 그들의 열정을 쥐어짜 위기를 벗어나기에는 너무 잔인한 구조고 변화를 이끌어낸다 해도 더딜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학보사는 10년 뒤에도 위기일 것이다. 학보사의 위상이 저 기이한 이중 구조 속에 있는 한 편집권은 여전히 위태로울 것이고, 학보사가 학생기자의 열정에만 기대는 기형적인 구조가 지속되는 한 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쫓아 존재 가치를 입증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그러나 그걸 아는 많은 학보사 기자들은 오늘 밤에도 여전히 열정을 쏟아 부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