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학내 문화공간 문화인큐베이터

학생회관의 미로 같은 계단을 올라가 4층에 도착하면 구석 어딘가에 유리문으로 된 카페가 있다. 따뜻한 색감의 벽지와 목제 테이블 위 봉제 인형들이 시선을 끄는 이곳은 ‘문화인큐베이터’(문큐)다. 학생들의 참여로 꾸려나가고 있는 이곳은 카페인 동시에 나름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문화양성소이기도 하다. 많지 않은 학내 자치 문화공간 중 하나인 문큐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문화를 펼쳐가고 있을까?

문큐는 과거 총학생회(총학) 주도로 생긴 공간이었지만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총학생회실 맞은편에 있는 문큐는 1996년 총학이 도서를 비치해 학생들이 독서를 할 수 있도록 꾸린 공간이었다. 하지만 총학 운영위원 한 명만이 담당하다 보니 운영이 소홀해졌고 재정문제도 생기는 바람에 임시 폐장됐다. 이후 학내 구성원들 사이에서 재개장 요청이 있어 2003년 46대 총학생회가 문큐를 다시 활성화했다. 이어 생협, 미대학생회, 관악작은도서관이 문큐의 공동 운영단체로 선발됐고, 총학에서는 운영할 의사가 있는 학생들을 새로 모집했다. 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찾은 문큐는 현재 학생으로 구성된 약 30명의 운영위원이 다른 단체의 도움 없이 직접 꾸려나가는 공간이다.

▲ 학생들이 문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점심시간의 문큐는 조용하고 한가한 분위기다.

사진: 유승의 기자 july2207@snu.kr

10평 남짓한 문큐라는 공간에는 운영위원의 손길이 곳곳에 닿아 있다. 운영위원은 카페에서 음료를 만들고 서빙을 하는 기본 업무는 물론 재료 조달부터 카페 인테리어까지 세심하게 관리한다. 재료를 준비할 때조차 의미 있는 소비를 지향하는 것은 문큐의 특징이다. 커피, 코코아, 홍차의 경우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하고, 우유나 과일의 경우 대형 체인점보다는 지역 마트를 통해 구매하고 있다. 카페 인테리어 역시 문큐 운영위원들의 몫이다. 그들은 직접 카페의 모습이 담긴 설계도를 그려보며 카페에 필요한 소품을 직접 구비한다. 카페 한쪽에 놓인 책들은 과거에 진행했던 ‘책방 탐방’ 활동의 일환으로 아름다운 가게와 중고서점에서 구매했다. 소설뿐만 아니라 여행, 요리 관련 책이나 만화책 등이 다양하게 구비돼 머무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카페 운영에서 나온 수익금은 학내 문화활동 지원의 원동력이 된다. 취지는 좋은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아리에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는 문큐는 최근 ‘브로콜리 너마저 주크박스 뮤지컬’, 미대극회 뮤지컬 ‘일천구백’에 도움을 보탰다. 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은데 마땅한 공간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카페 한쪽 벽을 전시벽으로 제공하는 한편 후원금도 지원했다. 지난번에는 디자인과 학생의 드로잉 작품을 전시해 손님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낸 적도 있다. 이문희 운영위원장(화학부·11)은 “수익금도 결국 학생들에게서 나는 것이라 돌려주는 차원에서 문화활동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큐의 운영위원들은 학내의 문화활동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매달 그들만의 자체적인 문화행사를 만들어나가는 데에도 힘쓴다. 가장 대표적인 ‘예술은 아무나 한다’는 기타, 작곡, 마술 등에 대한 강좌 프로그램이다. 지난 가을 문큐에는 학내에서 강사를 초빙해 기타, 작곡, 소묘, 마술 4개 강좌를 열어 약 10주간 진행했다. 작년 봄에 진행한 사진강좌의 경우 수업과 출사를 반씩 진행해 결과물을 전시벽에 전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강사의 도움 없이 문큐가 직접 진행하는 문화행사도 있다. 매 계절에 맞는 행사를 기획하는 문큐는 지난 4월에는 성년의 날을 맞아 향수 만들기 행사를 벌였다. 이 행사에선 한 커플이 실수로 오렌지향 향료를 쏟아부어 향수 이름을 ‘too much orange’로 지은 재미난 일화를 남겼다.

교내에 위치한 문화공간이다 보니 문큐는 학생들이 공연이나 촬영을 할 장소가 없을 때 ‘필요의 방’이 돼주고 있다. 과거 문큐의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졸업생들은 카페 공간을 결혼 피로연 장소로 쓰기도 했다. 신민재 운영위원(건축학과·13)은 “그 선배들은 학교에서 식을 올린 후 문큐로 요리를 싸와 이곳에서 피로연을 마무리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그밖에도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같이 할 사람이 없을 때 문큐는 모임을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베이킹을 좋아하는 한 운영위원은 문큐에서 사람들을 모아 베이킹을 하는 모임을 만든 적이 있다. 이문희 운영위원장은 “문큐가 학생들과 더불어 아이디어를 키워갈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며 바람을 내비쳤다.

소소한 분위기의 카페면서 문화를 키우고 만들어나가는 공간인 문큐는 운영위원과 손님 모두에게 의미 있는 곳이다. 문큐는 운영위원에게는 카페 운영과 함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경험을 주는 공간이면서, 그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학내에서 조용히 쉬거나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돼주고 있다. 황문규 운영위원장(건축학과·12)은 “문큐는 학내 다른 카페와 달리 조용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라며 “아지트 같은 분위기 덕분에 손님들에게 ‘컨셉을 잘 잡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손님 지수빈 씨(건축학과·15)는 “가까운 데서 수업이 있을 때 종종 오고 비치된 기타를 쳐보기도 한다”고 문큐에 대한 애정을 밝혔다. 바쁜 수업시간 사이에 나만의 쉬는 공간을 찾고 문화생활도 하고자 한다면, 학생회관 437호 문화인큐베이터에 들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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