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창작집단 ‘별의별’

“별의별 거 다 하는 창작 공간 ‘별의별 프로젝트’입니다!”

 

최근 관악에서 팀명도 재미난 사람들이 색다른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엄연한 무대가 있는 두레문예관이나 학관 라운지를 두고 인문대 신양관 앞, 문화관 앞, 감골 식당 앞 길바닥에 출몰하더니 이제는 서울대입구역 근처 카페까지 갔다. 이제 막 꿈틀대기 시작한 젊은 예술가들이 대체 무얼 하려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셋이서 하고픈 것 다 해보자”

 

별의별 프로젝트는 지난해 12월 학부생 세 명이 모여 하고픈 걸 다 해보기 위해 만들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얼마 전 고은비 씨(국사학과·12)와 김한별 씨(사회학과·11)는 아프리카에서 펼치는 연극 공연을 기획해 공모전에 지원서를 냈지만 탈락하고 말았다. 아프리카에 가겠단 야심찬 계획이 흐지부지됐음에도 예술에 대한 이들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가까운 일상적 공간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새로운 계획에 김한별 씨의 동아리 후배였던 김주형 씨(지역시스템공학과·14)도 합류했다. 막연히 무언가 해보자고 모인 세 사람은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할 곳이 없던 찌질이 세 명”이라며 별의별 프로젝트에 몸담고 있는 자신들을 소개했다.

해보고 싶은 것이 각자 달랐던 세 사람은 하나의 분야가 아닌 ‘별의별 활동을 다해보자’는 의미로 별의별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길거리 곳곳을 무대 삼아 펼치는 ‘별난연극’을 비롯해 ‘별난사진’ ‘별난영상’ ‘별난동화’까지 서로의 관심 분야를 빠짐없이 모아 ‘별난’ 이름을 붙였다. 네 가지 지속적인 프로젝트 외에도 ‘별의별 짓’이라는 이름의 단기 프로젝트도 진행하기로 했다.

프로젝트의 큰 틀을 정한 별의별 예술가들은 파릇파릇한 3월에 사소한 것에서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첫걸음인 ‘모두를 응원합니다’는 정문에 현수막을 걸어 응원 메시지를 전하면서 별의별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일석이조의 ‘별의별 짓’이다. ‘당신의 취준(취업준비)을 응원합니다’와 같이 진지한 응원에서부터 ‘당신의 모탈솔출(모솔탈출)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쾌변을 응원합니다’ 등 농담 섞인 문구까지 한 학기 동안 10여개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거리 위의 4색 빛깔 창작극

 

세 사람은 자신들만의 힘으로 10분짜리 길거리연극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파란지갑’이 열리는 동안 학관 테라스는 별난 일이 벌어지는 식당이 됐다. 한 남자가 식당에서 음식을 시켜 맛있게 먹다가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줄행랑친다. 얼마 뒤 한 소매치기가 테라스로 훌쩍 뛰어 올라가더니 몸을 낮추고 남자가 먹다가 만 음식을 먹는 척한다. 테라스 바로 앞에서 허둥대는 경찰과 여인은 막 지갑을 훔쳐 달아난 그를 쫓는 모양이다. 들킬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진행되는 이 극은 배우들이 차에 치이지는 않을지 걱정될 정도로 박진감이 넘친다.

▲ 비도 오지 않는 날 펼쳐진 '빨간우산.' 소개팅을 하려고 한껏 차려입었는데 지나가던 남자가 빗물을 튀겼다. 순간 욕을 내뱉었는데 웬걸 수업 시간 눈여겨보던 훈남이다. 게다가 한없이 미안해하는 그. 이 상황에서 여자의 감정은? 사진: 김명주 기자 diane1114@snu.kr

별의별 예술가들은 극 창작에 속도를 붙여 점차 이름을 관악에 알리기 시작했다. ‘파란지갑’이 열리는 동안 세 사람은 ‘빨간우산’의 대본을 써 바로 그 다음 주에 극을 올렸다. 지난주에 열린 예술주간에서는 완성된 네 개의 극 ‘초록공책’ ‘파란지갑’ ‘갈색바지’ ‘빨간우산’을 관객 앞에서 선보였다. 처음에는 알림판을 세워놓아도 관객 하나 없던 이들의 공연에 이제는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이 많아졌다. 고은비 씨는 “사람들이 미리 알고 보러오는 무대연극과 달리 길거리연극은 보기 싫은 사람까지 보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며 “모르는 사람이 가다가 멈출 때 너무 신이 난다”고 길거리연극만의 특별함을 이야기했다.

별난연극의 대본은 일상에서 문득 떠오른 이미지에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아이디어 공책을 항상 지니고 다닌다는 김한별 씨는 ‘비가 오지도 않는 날에 새빨간 우산을 쓰고 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 ‘빨간우산’을 만들게 됐다. 제목에 붙은 네 가지 색 소품들은 모두 그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이미지다. 이 이미지에 여럿이 함께 살을 붙여 대본이 완성된다. 빗물이 튀기는 바람에 서로 미안해하다가 욱하기를 반복하는 전개는 ‘빨간우산’의 배우들이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며 만들어낸 것이다.

완성된 별난연극의 이야기에는 거창하고 무거운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 김한별 씨는 “예술에서 무슨 의미나 상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재미있다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자신의 예술론을 펼쳤다. 남녀 두 사람이 나와 아프리카 여행기를 익살스런 몸짓과 함께 풀어내는 ‘갈색바지’에 담긴 작가의 의도는 관객이 아프리카에 가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것이 전부다.

 

누구나 일상 속에서 창작욕을 뿜어낸다면

▲ 카페에서 사진전을 연 별의별 예술가들. 작품이 테이블 천장에 매달려 있어 관객들은 편히 커피를 마시며 세 작가의 일상 속 장면들을 엿볼 수 있었다. 사진: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길거리연극 외에도 별의별 예술가들은 다양한 예술활동으로 창작욕을 뿜어내고 있다. “사진전은 전문 사진작가만 열 수 있는 건가요?”라는 당돌한 질문을 던지는 세 사람은 지난 21일(목)과 22일 평소 찍은 사진들을 서울대입구역에 있는 카페 ‘가우스’(GAUSS)에 전시했다. 김주형 ‘작가’의 풍경 사진과 김한별 ‘작가’의 폴라로이드 인물 사진이 함께 걸려있는 전시장의 모습에 “자기만족을 위한 지 멋대로 사진전”이라는 그들의 말이 잘 어울린다. 그 밖에도 아이들의 선택에 따라 결말이 바뀌는 웹 기반 동화 ‘별난동화’와 자신을 달걀이라고 믿어 노른자가 터질까 항상 불안해하는 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별난영상’, 시를 외치는 플래시몹 ‘시발’(詩發)등을 구상 중에 있다.

세 사람은 창작을 일상에서 언제나 즐길 수 있는 놀이라고 말한다. 고은비 씨는 “우리 프로젝트는 모두 재밌어서 하는 놀이”라며 “하나에 재미가 떨어지면 별의별 다른 짓을 하면 되는 것이 별의별의 매력”이라고 이야기했다. 학업이나 직업과 같은 각자의 일상 속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는 것이 별의별만의 모토다.

나아가 별의별의 최종 목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창작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셋이서 그때그때 창작, 기획, 배우 등 역할을 달리해온 이들은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프로젝트에 참여시킬 계획이다. 길거리연극의 배우로 참여한 뒤 고정멤버로 합류하게 된 손유진 씨(조소과·13)는 “나 자신이 관심병임을 온 세상에 떳떳하게 알리는 느낌이 재밌었다”고 남다른 합류 이유를 밝혔다. 고은비 씨는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 꾹 참지만 말고 직접 해볼 용기를 갖게 해주고 싶다”고 소망을 이야기했다. 별의별이 교내 동아리에 속하지 않은 채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도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다.

창작이란 고통을 수반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별의별 예술가들은 여기에 반기를 들고 창작이 일상 속 유쾌한 놀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는 동안에도 이들은 틈틈이 어떻게 일상적인 공간을 캔버스 삼아 그들만의 예술을 만들어갈지 궁리하고 있다. 이들의 창작이 관악을 거쳐 이번엔 어느 색다른 공간에 가닿을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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