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SA의 탑 꼭대기, 기울어가는 대한민국 교육
PISA의 탑 꼭대기, 기울어가는 대한민국 교육
  • 대학신문
  • 승인 2015.07.1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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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에 한 번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가 시행될 때마다 전 세계는 들썩인다. PISA는 OECD 국가 학생들이 학업 역량을 겨루는 장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PISA 시행 첫해인 2000년에 종합 7위였으나 순위가 차츰 올라가 2006년부터는 5위 이내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학생들의 우수함을 인정받았다고 자축하기엔 순위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크다. 우리나라는 왜 PISA 순위만큼 많은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는 걸까? 이 질문에 『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의 저자인 성원중학교 사회 교사 권재원은 우리나라가 PISA를 이해하는 방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PISA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싹트면서 PISA가 대한민국 학생들을 평가한 결과를 잘못 받아들였고, 여타 선진국의 학생들보다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우수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PISA는 학업성취도평가가 아니다

▲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권재원 저| 지식프레임272쪽|

먼저 저자는 PISA의 '교육'이 통상 기본적인 권리로 받아들여지는 교육과 다르다는 점을 짚어낸다. 그는 OECD가 명백한 경제기구이기 때문에 철저히 '인간 자본론'의 관점에서 교육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즉 OECD의 '교육'은 사람을 훌륭한 인적 자본으로 양성함을 목표로 한다. PISA의 주최 기관이 OECD인 만큼 PISA 사무국은 교육에 대해 OECD와 같은 견해를 공유한다. 만일 PISA가 지향하는 교육이 기본권으로서의 교육이라면 지속 가능한, 평등한, 시민 양성을 위한 교육을 지향하는 UNESCO(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가 PISA를 주관했을 것이다.

또한 저자는 우리나라가 PISA를 ‘국제 학업성취도평가’라고 오역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PISA의 정확한 명칭은 "OECD 국제 학생평가"이다. 인적 자본을 양성하려는 PISA의 목적을 강조한다면 PISA를 "국제 학업 역량평가"로 번역하는 것이 올바르다. 학습된 지식을 평가하는 학업 성취도 평가와 달리 학업 역량평가는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한다. 따라서 PISA는 본래 알고 있던 것을 정확히 파악해 새로운 문제 상황에 적용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며,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시험의 개념과 다소 차이가 있다.

게다가 책에 따르면 언론에서 수없이 인용된 PISA 국가별 순위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PISA는 획득 점수에 따른 등급제로 학생들을 가장 낮은 1등급부터 가장 높은 6등급까지로 평가한다. 스마트폰 산업을 예로 들자면 5등급 이상의 학생은 새로운 스마트폰을 만들어 낼 수 있고, 1등급 미만은 스마트폰에 대해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고 평가된다. 저자는 한국 학생의 평균점수가 500점을 넘었는가가 아니라 한국 학생 중 5등급 이상 학생의 비율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수치가 가까운 미래에 한국사회에서 훌륭한 인적 자본이 될 가능성이 큰 학생의 비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강조하는 국가별 순위보다 그 안에 등급분포가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교육의 어두운 민낯

2000년도 PISA 국가별 순위에서 우리나라 학생의 등급분포를 따져볼 때 우리나라는 3등급 학생 비율이 76%로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5등급 이상 비율은 6%로 20위였다. 저자는 이러한 결과를 두고 '대한민국 학생들은 똑똑한 소비자가 될 역량은 풍부하지만 새로운 지식의 생산자가 될 역량은 거의 없다'고 해석한다. 또한 그는 한국 학생들의 평균점수가 높은 건 점수의 중위권 분포가 두터워서 생긴 현상이기에 무조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순 없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저자는 PISA가 부가적으로 진행했던 학습전략선호도조사를 분석해 우리나라 학생들이 공부에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는 점을 읽어냈다. 학습전략선호도에서 평가의 첫 번째 축은 여러 명이 함께 공부하는 방식과 혼자 공부하는 방식 사이의 선호도이며, 두 번째 축은 지식을 실생활에 적용한 예시를 통해 배우는 방식과 지식의 요점과 핵심을 암기해 배우는 방식 사이의 선호도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각 축에서 어떤 식의 학습도 더 선호하지 않는 상태인 중간지점에 위치한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여러 가설을 세우나 그 중 ‘우리나라 학생들은 애초에 학업에 흥미가 없으므로 학습전략을 묻는 문항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근본적 원인으로 꼽았다.

나아가 저자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학업에 흥미가 없는 상태임에도 과도한 시간을 학습에 투자하고 있다. 2006년도 PISA 결과에서 우리나라는 일본, 홍콩 학생들과 국가별 평균 점수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습시간은 일본, 홍콩 두 나라 학생들의 학습 시간보다 월등히 길었다. PISA가 국가별 평균 점수를 학습 시간으로 나눈 학습 효율화 지수로 다시 순위를 매기자 최상위권에 있던 대한민국의 순위는 OECD 평균 아래로 떨어졌다. 저자는 대한민국 학생들이 더 공부해도 학습역량이 커지지 않는 과포화 상태가 될 때까지 학습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저자가 책에서 교육문제를 다소 단순하게 분석한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저자는 학습전략선호도조사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의 가설을 들었으나,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세 번째이다’라는 언급 외에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세 번째 가설을 선택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습시간이 과도하게 길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일본과 홍콩의 예시를 들지만, 이것 역시도 일본과 홍콩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습전략 등의 기타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평균 성적만 비슷한 두 나라의 학생들과 단순 비교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학습전략선호도조사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다른 가설을 선택했거나, 과도한 학습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더 세밀하게 관련 요인을 분석하는 등 보다 다각도로 문제에 접근할 때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성립할 수 있는지는 아직 모호하다.

학교가 변해야 학생이 변한다

저자는 책의 뒷부분에서 학습총량제를 통해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시간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한다. 학습총량제란 학생이 일주일에 받을 수 있는 수업량과 학습량에 상한선을 두고 방과 후에는 일체의 수업을 금하는 방식이다. 또한 그는 학생들이 공부에 흥미를 갖게 하려면 학교의 교육과정이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변화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학교는 시행착오와 실험을 통해 기존 교육방식을 PISA가 권하는 교육 방식인 '배우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향하도록 방향을 틀어야 한다. 저자는 '혁신학교'를 시행착오와 실험의 장으로 적합하다 보고 이곳에서 새로운 교육법을 터득한 교사들이 전국에 퍼져 학교 교육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혁신학교가 저자가 문제점이라 짚은 것을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저자는 혁신학교가 학생 개개인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자신의 학업역량을 향상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며, PISA의 교육관을 별다른 검토 없이 혁신학교가 추구해야 하는 대안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PISA의 교육관인 ‘인적 자본을 양성하는 도구로서의 교육’을 행한다면 학생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으로부터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뛰어난 인적 자본' 이상의 다양한 길을 선택할 가능성은 적다. 저자는 혁신학교가 학생 개인의 개별성을 키우도록 도와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PISA의 교육관으로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검토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

또한 그는 일반학교와 혁신학교 사이의 제도적 장벽에 대한 고려 없이 막연하게 교사를 매개로 혁신학교의 교육과정이 대한민국 전체에 퍼져 나갈 수 있다고 기대한다. 그러나 혁신학교의 설립 취지는 일반학교와 다른 제도를 도입하여 교육 혁신을 이루고자 함에 있다. 일반학교와 혁신학교의 제도적 차이를 간과하고 교사만을 교육 변화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저자의 제안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인 접근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책을 통해 저자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교육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려 한다. 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이 어디 갔느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나라 교육이 똑똑한 아이들을 길러낸 것이 맞는지 확인해보라고 대답한다. 이 책은 평균인만, 지식사회의 소비자 계층만 양성하고 있을지도 모를 우리나라 교육이 반드시 대면해야 하는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저자의 노력이 대한민국의 교육계를 걱정하고 해결책을 논의할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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