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제16회 한국 퀴어문화축제

화창한 일요일 아침, 서울광장은 무지갯빛 물결로 가득 찼다. 무지개 부채를 든 사람들은 흰 천막으로 된 부스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녔다. 코스튬 복장을 입고 독특한 가발을 쓴 사람도, 온몸에 무지개색 바디페인팅을 한 사람도 있었다. 지난달 28일(일)에 열린 제16회 한국 퀴어문화축제의 풍경이다. 퀴어문화축제는 2000년 이래로 국내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한국사회에 드러내고 그들 역시 사회의 일원임을 인식시켜온 행사다. 이 날은 19일간 열린 축제의 마지막 날로서 축제의 주요 행사인 부스행사와 퍼레이드가 진행됐으며 약 3만 명이 참여했다.

▲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가는 대로에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사람들이 하나의 무지개색 천막을 함께 들고 행진하고 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세상’을 주제로 한 이날 부스 행사에서는 성소수자 관련 단체 외에도 환경 및 동물보호단체, 의류‧화장품 브랜드 등 80여 개 주체가 부스를 운영했다. 그중에 퀴어 서적에 관한 퀴즈를 마련한 부스도, ‘괜찮아’라는 주제로 수십 점의 사진작품을 전시한 부스도 있었다. 부스 중간에 설치된 대형 무지개벽은 내가 나일 수 있는 세상을 소망하는 메시지를 적는 공간이었다. ‘나는 나다! 내 색깔대로 살자!’ ‘그 누구도 사랑을 막을 권리는 없다’와 같은 외침이 빼곡하게 적혔다. 
오후 5시에는 축제의 절정인 퍼레이드가 1시간 반 가량 이어졌다. 축제를 이끄는 네 대의 트럭 사이사이에는 무지개를 두른 사람들이 줄지어 행진했다. 서울광장에서 출발해 을지로 2가, 퇴계로 2가, 회현사거리를 지나 소공로를 돌아 광장으로 돌아오기까지 대로는 온통 함성으로 가득찼다.


올해 축제의 슬로건은 ‘사랑하라 저항하라, 퀴어 레볼루션’이었다. 이 슬로건에는 성소수자가 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피력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들을 반대하는 세력에게 평화적으로 저항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퀴어문화축제 강명진 위원장은 “사랑으로 사회의 차별과 혐오에 저항해서 이를 이겨내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 권리를 이루자는 의미에서 이러한 슬로건을 지정했다”고 전했다.


◇평화로써 저항하다=이번 행사가 열린 일시와 장소는 역사적으로 시민 항쟁과 관련이 있었다. 46년 전 6월 28일은 미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스톤월 항쟁이 일어났던 날이다. 스톤월 항쟁은 뉴욕의 술집 스톤월 인에서 성소수자들이 처음 자발적으로 경찰의 단속에 저항한 운동이다. 한편 올해 축제가 열린 서울광장은 근·현대사의 위기마다 시민들이 연대했던 역사적인 장소다. 강명진 위원장은 “서울광장은 시민역사 속에서 부당한 사회에 대한 시민 저항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 한 외국인 부부가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피켓 속 태극기가 무지개색으로 꾸며져 있다.

이날 참여자들은 날짜와 장소에 깃든 저항정신을 이어가면서도 평화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동성애 out’ 피켓을 든 사람들이 보일 때마다 “We love you(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라며 환호를 보내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에릭 씨(31세)와 에릭 씨(30세) 커플은 “반대 세력이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LGBT들을 대했음에도 참가자들은 오히려 환호하며 긍정적으로 대응해서 멋졌다”는 소감을 전했다.


서울광장을 둘러싼 반대 집회에 퀴어축제 참가자들은 도리어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반대 측의 북소리에 맞춰 비눗방울을 날리는 한편 반대 측에서 준비한 발레 무대가 끝나고는 박수를 보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 부스를 운영한 김현철(29)씨는 “많은 사람들과 축제를 즐길 수 있어 좋았고 특히 교회 분들의 공연 덕에 흥이 더 났다”고 말했다. 부스를 구경하던 시민 A씨도 “반대 집회에서 발레 공연하는 것을 보고서 이 축제의 존재를 알았다”며 “곡의 작곡자인 차이코프스키가 게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한 것 같다”고 밝혔다.


◇서로 다른 너와 나, 한데 모여 ‘우리’=이례적으로 많은 사람이 참여했던 이번 축제에선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도 곧잘 눈에 띄었다. 성소수자의 부모님도 함께 행진했을 뿐만 아니라 이성애자인 커플들과 가족들도 부스 행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자친구와 함께 온 박수민 씨(28세‧성남시)는 “모두 융화돼 같이 즐기는 분위기라 즐거웠다”며 “가봤던 많은 시위 현장 중 퀴어문화축제가 가장 재밌었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온 박종숙 씨(43세‧마포구)는 “아이들이 본인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들(성소수자)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왔다”고 축제에 온 이유를 밝혔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외국 주요 인사도 한국의 성소수자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서울광장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많은 나라에서 평화 시위가 진행되는 것을 언급하며 한국 퀴어퍼레이드를 응원했다. 고려대 어학당을 다니는 디알로 씨(22세‧캐나다)는 “토론토에서는 마찰 없이 세계 최대 규모의 평화 시위를 진행한다”며 “앞으로 한국 퀴어문화축제가 캐나다에서처럼 모두가 지지하는 분위기 속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좋겠다”며 응원을 보냈다. 노르딕 5개국, 유럽연합 9개국, 미국 그리고 캐나다에서는 주한 대사관이 직접 부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주한 유럽연합(EU)의 아나 베아트리츠 마틴스 1등 참사관은 “이번 행사는 한국청년들이 사회에 다양성과 개방성을 요구하고 대중과의 공명을 원한다는 지표”라며 “LGBTI*에 대한 한국사회의 포용력이 싹틀 기반이 될 것”이라 평했다.

▲ 시청 앞에서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사랑하라, 저항하라, 그리고 성장하라=많은 사람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이번 퀴어퍼레이드에서도 선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지나치게 노출을 한 일부 사람들과 한 여성주의 부스에서 판매한 성기 모양의 간식은 보기 불편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참가자 최홍범 씨(언어학과·14)는 “퀴어퍼레이드는 성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축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성적이고 도발적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일부 논란은 있었지만, 이번 행사는 한국의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십 수 년 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려 했던 성소수자들은 이제 ‘사랑으로 연대해 평화로 저항하자’며 서로 손을 잡고 행진하고 있다. 6년째 한국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데니 씨(31세‧미국)는 “6년 전에 비해 올해 축제는 약 두 배 정도 커졌다”며 “폐쇄적이던 성소수자 문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동시에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훨씬 많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무지개 아래에서 연대하는 성소수자들은 매년 무지갯빛 꽃잎을 켜켜이 쌓아가고 있다. 사랑하라, 그리고 저항하라. 한층 더 성장해있을 그들의 내년 슬로건을 기대해본다.

 

*LGBTI: 기존의 LGBT에 양성의 생물학적 특성을 같이 지니는 간성(intersex)을 포함시켜 성소수자 전반을 이르는 말

사진: 장유진 기자 jinyoojang03@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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