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서병수 부산시장이 부산국제영화제 측에 세월호 참사를 다룬 사회적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의 상영을 취소하도록 공식 요구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제 독립성을 이유로 상영을 강행했고 이 때문에 올해 1월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부산시로부터 사퇴 권고를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4월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지원금이 예고 없이 대폭 삭감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은 행정당국이 정치적 압력을 행사해 영화계를 길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왔다.   
이에 문제의식을 가진 영화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영화계에 닥친 독립성의 위기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7월 10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영화계 독립성,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이 토론회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주관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 고영재 대표를 비롯한 영화인들이 참여해 영화계 각층의 목소리를 냈다.


◇행정당국의 원칙 없는 간섭과 검열=부산국제영화제의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예산 결정 과정에서 드러난 비합리성을 짚었다. 「다이빙벨」 사건 이후 영진위는 내년도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을 지난해 14억 6000만원의 절반 수준인 8억원으로 삭감했다. 이에 남 프로그래머는 영진위가 영화제 예산 총액을 35억원으로 한다는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뜨렸으며 삭감한 예산 6억원을 사용할 대안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부 영진위원은 다른 영화제를 위해 예산 지원금을 양보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영화제에 대한 예산 증액은 미미했다. 남 프로그래머는 “영진위의 정책이 자의적으로 집행되고 큰 틀에서 원칙이 없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주국제영화제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또 다른 논란의 불씨가 됐던 ‘등급분류 면제추천 제도’ 개편이 영화제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해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이 제도 때문에 영화제에서 등급분류를 받지 않고도 영화를 상영할 수 있었으나 영진위가 개정을 추진하면서 모든 상영작들이 사전심의를 받게 될 가능성이 생겼다. 그는 “사전심의가 존재하는 나라는 중국이 유일했다”며 “다양한 가치를 품고 있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 영화제의 매력인데 정치적 이유로 어떤 영화가 상영되지 못한다면 해외 참석자들이 신뢰를 가질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결국 사전심의는 유야무야됐지만 아직도 영화제의 상영작 선정에 당국이 개입할 여지는 남아있다. 이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영화제 측에서 국고 지원을 신청할 때 모든 상영작 목록과 함께 상영작의 선정 이유를 쓰도록 하는 규정이 최근 신설됐다.


◇표현의 자유냐, 문화기본권이냐?=일부 토론자들은 현 정권 하에서 이뤄지고 있는 표현의 자유 탄압이 영화계 독립성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는 견해를 제기했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 탄압 공동대책위원회’ 임순혜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 때부터 영화계를 좌우로 나누고 좌파영화인 색출에 나섰던 전력이 있었다”며 “박근혜 정부 하에서 벌어지는 영화계의 논란들은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억압하고 묶어놓으려는 시도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독협 고영재 대표는 영화계가 ‘표현의 자유’라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고 대표는 정부에 비판적인 영화를 정책적으로 배제하는 영진위와 이에 ‘표현의 자유’라는 전통적 프레임으로 대항하는 영화계가 모두 진영논리에 갇혀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그는 영화계가 문화정책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 관객의 문화기본권 보장을 위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기본권이란 누구나 동등하게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뜻한다. 
이어 고 대표는 현 정부와 영진위의 정책이 문화기본권 실현에 무관심하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할 때부터 ‘문화융성’을 주요 국정과제로 내걸었고 2013년 국민의 문화권을 명문화한 ‘문화기본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정부의 산하기관인 영진위가 내놓은 정책은 영화 관객의 문화기본권 증진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고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영진위가 영화진흥을 위한 세부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바 없고 영화발전기금도 효과적으로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립예술영화관의 자율성 침해=이날 토론회에는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운영하는 영화인들의 생생한 발언이 이어져 주목을 끌었다. 지난달 영진위는 지난 13년 간 시행해왔던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을 사실상 폐지하고 위탁업체가 정하는 영화 24편 중 2편을 의무 상영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새 정책을 내놓았다. 이에 독립예술영화계는 이 정책이 극장의 프로그램 자율성을 침해하고 관객의 영화선택기회를 박탈하는 등 문제가 많다며 반발하고 있다. 시네코드 선재 김난숙 대표는 “왜 영진위가 프로그래머 역할을 하려고 할까 의문이 든다”며 “관객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지정한 영화를 트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개선안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서 발언한 ‘인디스페이스’ 원승환 이사는 영진위의 ‘2015년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 계획이 정부의 눈 밖에 난 독립영화관들을 솎아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원 이사는 “지난해 가장 높은 성과를 기록한 인디스페이스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지적했다. 동일한 예산이 집행됨에도 지원 대상이 축소되고 공교롭게도 지난해 「다이빙벨」을 상영한 극장들이 사업에서 탈락하고 상영하지 않은 극장에 대한 지원은 유지됐다. 이에 그는 앞으로 사회적 논란이 되는 독립영화의 상영기회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국은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서야=토론자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문화정책 당국이 영화계와의 소통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당국은 사전공지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발표하거나 추진해 영화계의 불신과 반발을 사왔다. 논란이 발생한 후에 해명이나 토론을 요구해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다. 서두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은 “한국 영화계가 독립성의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영화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토론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영화계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려면 정부와 영진위가 먼저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영화계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영화 진흥과 문화기본권 정착을 중심에 둔 정책으로 진정한 독립을 누리게 될 영화계의 내일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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