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각종 기관에서 발표하는 세계 대학 순위들은 주기적으로 일간지의 지면을 차지한다. 세계 1위 대학은 어디인지, 우리나라 주요 대학들은 몇 등이나 차지했는지, 어느 대학이 작년보다 등수가 올랐는지의 여부는 흥미로운 기삿거리가 된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처럼 극단적인 대학 서열화에서 비롯된 표현도 대학 입시에 익히 등장한다. ‘순위화’를 넘어 ‘서열화’가 돼버린 대학 등수 매기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학문의 영역조차 줄 세우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데버러 로드 교수(스탠퍼드대 법학과)는 저서 『대학의 위선』을 통해 지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오늘날의 대학을 향해 일침을 가한다. 책에서 그는 ‘지위의 추구’가 ‘지식의 추구’를 방해하는 오늘날 대학 현실을 꼬집으며 연구와 수업 전반에 산재하는 대학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비판한다.

모호한 목표, 모호한 평가 기준

▲ 대학의 위선

데버러 로드 저|윤재원 역|알마 출판사

350쪽|1만 6천원

 

본론에 앞서 저자는 대학의 모호한 목표가 오히려 해당 목표를 추구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대학의 목표는 학문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미 사회 전반에 걸쳐 공감대가 형성돼 있을 정도로 자명하다. 하지만 저자는 모두가 동의하는 대학의 목적은 ‘훌륭한 것’에 대한 추구일 뿐 그 ‘훌륭한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실질적 내용 없이 고민해야 할 어려운 선택들을 뭉뚱그려 놓은 ‘대학의 목표’라는 개념은 대학기관에 대한 평가를 어렵게 만든다. 대학의 모호한 목표를 실제로 대학 현실에 어떻게 구현해낼지 아무런 합의가 없기 때문에 대학의 특정 행동을 평가할 명확한 기준 역시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모호한 기준으로 대학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지식의 추구’와 ‘지위의 추구’가 뒤엉킨다고 진단한다. 여기서 ‘지식의 추구’란 말 그대로, 그 자체로 목적이 되거나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발전시키고 축적시키기 위한 노력을 뜻하며, 저자는 이것이 대학 본연의 목적이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지위의 추구’는 ‘지식의 추구’와는 대치되는 부정적 개념으로, 대학들이 가시적인 성과에만 집착하는 행태를 말한다. 그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대학 평가 기준이 각 대학을 ‘지식의 추구’에 따라 올바르게 평가하지 못하는 데 그 원인이 있다. 결국 지식을 추구한 대학이 사회적인 명성도 경제적인 이득도 얻지 못하면서 대학들은 자연스레 지식 대신 지위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자의적인 기준에 따른 대학 순위

 특히 대학 평가의 가장 대표적인 지표는 각종 일간지와 평가 기관에서 매해 발표하는 대학 순위이다. 저자는 이런 순위들이 ‘지식의 추구’의 척도보다는 비전문가들이 실제 교육, 연구의 질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몇 가지 요소를 자의적으로 선정하고 중요도를 부여해, 이에 따라 단순히 점수를 매긴 결과물에 가깝다고 본다. 물론 대학 순위 평가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투자’(input)와 ‘결과’(output)는 언뜻 객관적인 기준처럼 보인다. 입학생의 성적, 동문회 기부금, 학생 1인당 도서 수 같은 투자에 해당되는 요소와 졸업생 비율, 취업률 같은 결과에 해당되는 요소는 모두 숫자로 나타낼 수 있고, 보통 숫자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는 이 요소들이 얼마나 교육, 연구의 질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지의 여부이다. 현재로서는 어느 요소가 얼마나 교육의 질과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대학 사회 내에서 전반적인 합의나 구체적인 고민, 공인된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대학 교육에 있어 비전문가인 사람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자의적으로 평가 요소를 정하고, 또 거기에 자의적으로 중요도까지 부여한 대학 순위의 기준은 신뢰성이 낮은 척도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결국 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순위에 대학들이 매달리게 되면서 정작 당장 필요한 교육과 연구에 지원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즉 대학 순위에서 중요하게 평가하는 요소들에만 집중적으로 투자가 몰리고, 이 요소들이 교육과 연구에 그토록 중요한 요소인지는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지원이 시급한 교육과 연구는 역설적으로 소외된다. 저자는 호화로운 학생 서비스가 큰 평가 요소를 차지하는 <U.S.뉴스> 순위를 예로 들어 많은 대학이 이 지표를 근거로 새로운 체육관과 학생 라운지를 짓는데 대부분의 돈을 들인다고 지적한다. 이런 모습이 바로 저자가 앞서 우려했던 ‘지위의 추구’에 의해 ‘지식의 추구’가 방해받는 경우다.

찍어내는 연구, 성가신 수업

 저자에 따르면 출판물의 양산을 부추기는 학계 분위기에서 난해하고 불필요한 내용을 쏟아내는 오늘날의 학술 동향도 제대로 평가 받아야 할 대상이다. 저자는 논문을 몇 편이나 냈는지, 몇 쪽짜리 책을 냈는지, 출판물이 몇 번이나 인용이 됐는지 등 ‘숫자’로 요약되는 출판물 실적을 따라 학문의 성과를 평가하는 학계 분위기가 교수들로 하여금 글을 양산해내도록 부추긴다고 말한다.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 사회적으로 무가치한 연구를 하거나 윤리적으로 안이한 방법을 택하는 학자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부 기금이 투입된 무의미한 연구를 선정해 비판하는 ‘황금 양털상’의 수상작을 예시로 삼발이가 가지는 예술성, 툰드라 수컷개구리의 먹이 포획 성공률과 짝짓기 성공률의 관계에 대한 연구들은 지나치게 사소하고 무의미한 주제라고 지적한다. 결국 책에서는 ‘훌륭한 학자’로서의 명성이 양적으로 많은 결과물을 낸 학자에게 주어지는 대학 사회의 분위기가 ‘지식의 추구’를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숫자에 따른 연구 실적으로 평가되는 교수 사회의 분위기는 비단 연구의 영역뿐 아니라 수업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교수들이 대학 사회에서 인정받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한 편이라도 논문을 더 써야 하는 상황에서 저자는 경력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학부생 수업을 교수들은 그저 골칫덩이로 여긴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업에 대한 평가는 졸업생 비율, 전문직 진입률, 자격증 시험 통과 비율 등을 대표적인 기준으로 삼아 학생 개인 역량 평가에만 치중한다. 이러한 평가 기준은 교육을 통해 학생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직접 드러내지 못하며, 따라서 학부 수업이 질적으로 개선하는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에 더해 수업은 주로 해당 대학의 총장이나 임원, 학부 처장들에 의해, 다른 교수의 수업에는 관심도, 지식도 없는 동료 교수들에 의해, 또 손쉽게 좋은 학점을 받고자하는 학생들에 의해 평가된다. 저자는 바람직한 평가 기준이 없어 좋은 수업이 좋은 수업이라고 인정받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교수들이 수업을 등한시하는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고 주장한다.

더 나은 평가가 가능할까

 하지만 책에서 그가 비판하는 오늘날의 그릇된 평가 기준을 대신할 해결책이 제시됐는지는 의문이다. 그는 현재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을 비판하고 올바른 기준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설하는 데에 책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올바른 평가 기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 더 나아가 이를 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책 전반에 부재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이처럼 대안 제시가 빈약하다는 점은 곧 ‘대안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앞서 저자가 지적한 잘못된 순위 평가 기준, 잘못된 연구 평가 기준, 또 잘못된 수업 평가 기준이 사실상 현실적으로 구현 가능한 평가의 최선책이며, 그 너머의 더 정교한 평가는 지나친 이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현 수업 평가 기준에서 교육의 효과와 학생 개인 역량을 완전히 분리해 온전히 교육의 효과만을 평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 선까지를 학생 개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보면서 또 그에 반해 대학 교육의 부가가치는 어느 선 까지라고 인위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학 사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여러 문제들을 관통하는 ‘지식의 추구’와 ‘지위의 추구’의 혼재를 짚어냈다는 점은 분명 유의미하다. 저자는 ‘지식의 추구’가 제대로 평가돼야 대학에 대한 명성과 부가 올바르게 분배되고, 이처럼 ‘지식’을 추구하다보면 자연스레 ‘지위’가 뒤따르는 구조가 형성돼야 ‘지식의 추구’를 장려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개별적인 현상으로 여겨지던 대학의 문제들에 근본적으로 어떤 공통의 문제점이 있는지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지난달 27일 정부가 발표한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에는 산업 수요에 맞게 학사구조를 조정하는 대학에 최대 300억의 재정적 지원을 하겠다는 대학 구조개혁 방안이 포함돼있다. 이는 대학이 취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학과를 만들거나 통폐합하게 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미 건국대는 예술계열 학생 정원을 줄이고 생명공학계열 정원을 늘렸으며, 중앙대에서는 학과제를 아예 폐지하고 광역으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방안을 내놓았다가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에 시달린 바 있다. 이처럼 ‘졸업생 취업률’ 이라는 획일적 평가 기준에 의해 대학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학과의 존폐까지 결정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이 책의 저자가 우려하는 바와 매우 닮아있다. 대학사회가 구조조정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 책을 통해 지금 대학이 가는 길에 ‘지식’은 없고 ‘지위’만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점검하는 시발점이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