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는 생활인으로
홀로서는 생활인으로
  • 대학신문
  • 승인 2015.08.2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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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류학과 이유리 교수

서울대를 이제 ‘모교’(母校)로 부르게 될 여러분들은 ‘S대 출신’이라는 뿌듯하고도 버거운 이름표이자 꼬리표를 한평생 달게 되었습니다. 이 꼬리표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몇 가지 굴레를 씌웁니다. 첫째, 이 꼬리표의 위력은 생각보다 대단해서, 더 쉽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게 할 것이며, 아마도 조금 더 많은 기회를 여러분에게 선사하는 마법을 부릴 것입니다. 예전 같지는 않다고들 하지만, 감사하게도 아직은 그런 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뛰어난 능력은 주변의 찬사와 감탄을 끌어내겠지만, 그 이면에는 숨막히는 질시와 견제가 함께할 것입니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성장의 거름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협력과 배려, 양보 등등, 경쟁의 긴장감을 조이고 풀 줄 아는 힘을 관악 바깥세상에서 부디 발휘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굴레는 훨씬 더 무겁습니다. 서울대인들이라면, 민족의 가는 길을 제시할 수 있을 만큼 큰 이상을 품고, 흠 없이 도덕적이고, 세상의 틀을 바꾸는 사고를 하고 실천하기를 기대합니다. 울분이 풀리지 않는 사건을 맞닥뜨리면 처음에는 분노를 느끼다가도 일상에서 반복되는 구조의 모순 앞에서 저항심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방관하거나 순응하곤 합니다. 하지만 남들은 그래도 서울대인만큼은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저 역시도 이 점을 강요라고 생각될 정도로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굴레라기보다 도전이며 어쩌면 특권이지 않을까요? 여러분 손으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을 누군가로부터 받는다는 것에 대해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조금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S대 출신이라는 굴레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동안 익숙했던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자랑스러운 모범생 아들딸’이라는 이름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나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그야말로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입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라는 여러분의 고민 속에서 저는 늘 부모님의, 주변의 기대와 타협하며 살아왔던 긴 시간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너무 과한 애정과 기대를 주셔서, 혹은 나에게 너무 고단한 삶을 안겨주셔서 내 삶이 내 삶이 아닌 것처럼 살아왔던 지난날과 현명하게 결별하는 순간이 바로 이 졸업(卒業)이길 바랍니다.

 

이제 독립된 생활인으로서 필요한 기본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엄청나게 어려운 공식을 풀고, 박학다식을 자랑하고 해외로 오지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여러분들이지만, 물어보고 싶습니다. 자신을 위한 소박하지만 건강한 밥상을 스스로 차릴 줄 알고, 정성껏 빨래하고 빳빳하게 다림질을 하여 차려입고, 꼼꼼히 내 방 청소를 하며 정돈된 일상을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러저러한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 지저분한 강의실과 복도, 무책임하게 어지럽게 벽에 붙여진 게시물들, 무질서한 음주와 불규칙한 외식습관 등, 오랫동안 캠퍼스 곳곳에서 아쉽게도 목격해 왔습니다. 내 일상 하나하나를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소소한 생활의 질서의 힘을 믿으십시오. 여러분들이 오래, 멀리,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달릴 수 있는 근원이 될 것입니다.

 

각설하고, 떠나는 이에게 참 잔소리가 많았습니다. 이별을 앞에 두고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여러분들처럼 총명하고 아름다운 청년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그저 말을 걸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졸업의 문 앞에 서있던 20여년 전의 나 자신을 떠올리며 다시 초심을 가질 것을 다짐해 보는 주문 같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뻔한 것인데 말입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요?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여러분 같은 수재들과 함께할 수 있어 선생으로서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은 충분히 슬기롭고 멋집니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유리

의류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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