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론 열심히 공부하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2009년 초, 입학을 허가 받은 후 친구들과 모였던 술자리에서 나는 저렇게 얘기했었다. ‘대학에 가면 논다’는 당시 어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땐 어떤 분야에서 잘해야겠다는 사명감도 없었고, 앞으론 공부를 강요할 누군가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저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이렇게 ‘공부’와 ‘배움’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가졌던 우물 안 개구리는 같은 해 3월부터 본격적인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겨울에 내가 했던 저 말이 틀렸음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학년 때부터 전공필수과목을 수강해야 하는, 몇 개 없는 과에 들어왔다는 사실과 선배들이 얘기해주었던 재수강에 대한 두려움, 잘하는 친구들에게 뒤처지면 안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들은 나를 공부하게 만들었다. 책으로 하는 공부 말고도 여러 가지 배울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겪는 자취 생활엔 뭐가 필요한지, 선배와 친구, 이성친구들과의 인간관계는 어떻게 형성하고 유지하는지, 기타는 어떻게 치는지, 근력운동은 어떻게 하는지…. 그런데 그땐 이 대부분의 ‘공부’와 ‘배움’들은 ‘왜 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에 시원한 답을 못한 채 이루어졌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겠다’ ‘뒤지긴 싫으니까 열심히 하자’ ‘일단 잘해두면 손해보진 않겠지’와 같은 수동적인 이유들이 지배적이었고, 나만의 인생을 찾기보다는 주어진 것들을 해나가는데 급급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너무 모른 채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을 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한편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의문을 항상 가졌기 때문이겠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전공분야는 나랑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아 잘해보고 싶다’ ‘스피치를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취미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싶다’ 등등. 자연스레 무엇을 공부하고 배워야 할지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군복무를 마친 후 복학해 3학년이 끝날 무렵에는 진로를 결정하게 됐고, 어떤 모습으로 앞으로를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윤곽을 잡았다.
대학 초년 때와 다르게 나만의 인생을 찾아 살기 시작하니 여러 가지 ‘공부’와 ‘배움’들의 그 의미와 범위가 다르게 느껴졌다.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분야라면 그만큼 공부하고 배워야 할 깊이가 깊다는 당연한 사실은 물론, 지속적인 관심을 쏟지 않으면 금세 잊게 되고 예전보다 못한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또한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자 하니, 주어진 것들 이상으로 공부하고 배울 것들이 많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됐다. 초년 때는 외골수적인 면이 없지 않았는데, 한두 가지에만 몰두하기엔 인생은 너무나 다양한 분야들로 구성돼 있다고 점차 생각했다. 1년간의 고시공부 끝에 좋은 결과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분야를 잘 알고 있다고 확언할 수 없는 나, 법/경제/경영/외국어에 무관심했으나 이젠 도서관에 가서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고 있는 나, 여행 준비와 취미 개발을 위해 마찬가지로 책을 찾아 읽고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금의 나의 모습은 ‘공부’와 ‘배움’에 대한 달라진 생각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앞으론 열심히 배워야 할 것이 매우 많을 것이다.” 후기 학위 수여식을 한 달 앞둔 여름,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책에서 배울 것이고 만나는 사람으로부터 배울 것이고 간혹 새로운 풍경만 보아도 무언가를 배울 것이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경험해야 하며, 새로운 것을 익히고 깊이 있게 배워야 하는 것은 학교에 몸담고 있을 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자신만의 뚜렷한 목표가 있는 삶에서는 늘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배우는 것은 주어진 것을 수동적으로 배우는 것보다 즐겁고 덜 힘든 일임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기에 지난 대학 생활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세상은 공부할 것, 배울 것들로 가득하고 그 깊이가 깊다는 것과,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공부하고 배우겠다는 자세인 ‘학여불급’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교문을 나선다.
주상연
기계항공공학부·학사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