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올라온 지 6년 차라던 그는 생각보다 앳돼 보였다. “온종일 인터뷰만 하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연 임현수 씨(생명과학부·11)는 마침 다음 학기에 진학하기로 예정돼있는 연구실 교수와 면담을 하고 오던 차였다. 그는 계속 “나는 뛰어난 성과를 갖고 있지 않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방황’이 기준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 있다”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보였다. 그의 자신감은 세 번의 수능과 세 개의 학과, 네 곳의 연구실을 거치며 자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시간으로부터 오는 듯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졸’이 돼 기쁘다”는 그의 이야기를 교내의 한 카페에서 들어보았다.

▲ 교내 한 카페에서 임현수 씨가 졸업에 대한 소회를 얘기하고 있다. 연구자의 삶을 이어갈 그는 과학자가 자연의 원리를 밝히는 과정을 '등불을 들고 떠나는 여행'으로 비유했다. 학자로서 "다음 세대에게 등불을 잘 전해주는 역할까지 하고 싶다"는 그에게서 깊은 배움이 주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예술에서 과학으로=그림은 어릴 때부터 숨 쉬듯이 그려왔다는 임현수 씨는 원래 예술가를 꿈꾸던 고등학생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장대익 교수(자유전공학부)의 『다윈 & 페일리: 진화론도 진화한다』를 읽고 그는 예술가와 과학자 사이를 고민할 정도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학창 시절 그는 또래와는 남다른 감수성으로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와 같이 인간의 실존에 닿아있는 물음을 던졌는데 장 교수의 책이 그의 물음을 해결해준 것이다.

“책 속에서 진화론이 ‘인간은 생물의 진화과정의 끝에 남겨진 존재’라 말하고 있었다. 비로소 답을 찾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를 계기로 생명과학에 발을 들였다. 그림 공부에 열중해야 했던 1학년 겨울방학, 그는 도서관에 노트와 대학 일반생물학 교과서 등을 들고 가 하루에 8시간씩 공부해 1,500쪽에 달하는 책을 독파했다. 진화론뿐만 아니라 생명과학의 모든 것이 재밌다고 느끼던 때였다.

하지만 그의 꿈은 수능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가로막혔다. 이제 갓 과학을 접한 그에게 이공계열 입시 공부는 큰 벽이었다. 그는 재수생활을 거치고 원하던 대로 생명과학 관련 학과에 지원했지만 합격 통보가 온 곳은 홍익대 예술학과뿐이었다. 재수생활을 하던 당시 그의 부모님이 “미술사와 미학을 배우면 실기 능력이 필요한 예술학과가 잘 맞을 것”이라 권유했던 것이 유일한 선택지로 남게 됐다. 하지만 “예술이 결국 운명인가 보다”는 마음에도 그는 교양 생명과학 강좌를 홀로 수강하면서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과학이 취미가 될 것이라는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결국 세 번째 수능에 도전했고, 본교 생활대 식품영양학과로 진학할 수 있었다.

진학 당시 그는 생물의 ‘먹고 사는 일’을 세부적으로 공부하는 것도 재밌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학년 1학기를 맞자마자 그는 생활과학이 추구하는 방향이 그의 방향과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수업을 들으면서 생활과학은 인간의 복지를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하지만 나에게 생명과학은 오로지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생활과학이 추구하는 실용적인 사고방식과 생명과학이 취하는 오롯이 앎을 추구하는 태도에는 다소 괴리가 있었다. 고민 끝에 그는 3학년 1학기에 생명과학부로 전과했다.

◇온 몸으로 체험한 생명과학의 길=생명과학부로 전과한 비슷한 시기, 임현수 씨는 자유전공학부 과목인 주제탐구세미나 중 그를 생명과학의 길로 이끈 장대익 교수의 ‘인간 본성의 과학적 이해’를 청강했다. 그 과목은 진화론의 관점에서 15주에 걸쳐 종교, 사회성, 예술 등을 분석하는 수업이었다. 그는 청강생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고, 종강 후 장 교수와 면담을 한 끝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소속 ‘인간 본성 및 생물철학 연구실’(인생연)의 세미나에 학부생 인턴 자격으로 참여했다. 세미나는 매 학기 ‘동물에게 문화가 있는가?’와 같은 주제에 대한 논문들을 비판적으로 읽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와 더불어 임현수 씨는 장 교수의 지도를 받아 ‘진화학’이라는 이름의 학생설계전공을 만들었다. 그가 학생설계전공을 통해 진행했던 자율연구는 인간이 동물에게 갖는 공감과 책임의식에 대한 것으로, 길에 죽어있는 고양이와 시장판에 떨어진 생선을 보며 느끼는 슬픔의 정도가 다르다는 점에서 착안해 도덕심리학 분야의 관련 논의들을 정리해 논문을 작성했다.

한편 ‘인생연’에서 논문을 읽던 것과 다르게 그는 직접 동물을 관찰하고 실험하는 연구실로 자리를 옮겼다. 생명과학부 소속 ‘행동생태 및 진화연구실’(행진연)의 학부생 인턴으로도 들어가서 그는 박새를 직접 돌보며 그들의 행동을 연구했다. ‘행진연’에서 보인 그의 열정을 눈여겨 본 피오트르 야브윈스키 교수(생명과학부)의 추천으로 그는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미국자연사박물관 소속 남서부 연구센터(Southwestern Research Station, SWRS)에 인턴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남서부 연구센터는 해발 1600미터 고산지대에 있는 국유림으로, 그는 그곳에서 국유림을 사용하기 위한 연구자들의 실험보조를 하며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연구가 무엇인지 직접 체험했다. “떡갈나무의 잎을 새벽 2시에서 5시 사이에 반드시 따야 해서 새벽에 헤드램프를 쓰고 등산을 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은 낮에 벌새를 보기 위해 섭씨 42도의 더위를 견뎌야 했다”며 그는 “한국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온갖 연구들을 맛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길을 찾다=임현수 씨는 긴 여정 끝에 생명과학부 소속 ‘유전과 발생 연구실’에서 예쁜꼬마선충의 이주 행동을 결정하는 신경회로에 대해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예쁜꼬마선충과 같은 간단한 모델을 연구하면서 진화·행동·신경이 맞물린 지점, 나아가 "자유의지와 의사결정에 관련한 보다 복잡한 연구”를 할 거란 기대감을 표했다.

그의 학부시절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경험과 성찰을 거듭하며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는 “한 가지를 해 보고 그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깨달은 뒤 그에 맞는 것을 다시 해 보고, 또다시 그것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열의를 보이며 ‘인생연’ 세미나에 참석했지만 그는 결국 그 길로 선뜻 갈 수 없었고, 자연 속에서 직접 실험하며 연구하는 길 앞에서도 멈추어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그가 속했던 연구실들은 모두 진화론을 기본으로 하지만, 연구 방법이나 연구 대상에 있어 판이했기 때문에 그에게 매번 새로운 성찰을 안겨 줬다. 임현수 씨는 그것들을 자양분 삼아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선택지를 좁혀 지금에 이르렀다.

임현수 씨는 “나처럼 한 분야에만 파고드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지만 여러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사람도 있다”며 “다만 내가 그중에서 어떤 성향의 사람에 속하는지 끊임없이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지를 알아야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 결정들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한다”며 각자의 삶에서 책임 있는 선택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스스로의 내면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기 때문에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초심을 잃지 않는 일만 남았다”고 다짐을 전했다.

그는 이제 ‘대졸’이 되는 동시에 그가 꿈꾸던 생명과학 연구자의 삶을 시작한다. 지금까지 그를 있게 한 성찰의 힘으로 그 앞에 펼쳐질 여정들 또한 잘 헤쳐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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