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수원 편집장

학내 떠들썩하게 만든 수강신청 오류
정작 원인제공한 정보화본부는 미온적
돌려진 증오의 화살, 홀짝으로 갈린 학생들
한 발짝 떨어져 ‘유력한 용의자’ 직시해야

지난 7월 30일 오전 6시경, 필자는 서울대입구역 근처 PC방에 자리 잡았다. 강좌 신청 순서를 다시 점검하고, 서버시간을 확인하면서 손가락을 풀었으며,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지 못할 경우 대체할 강좌와 다른 시간표도 몇 개 준비했다. 수강신청에 실패한 적이 없었던 필자의 대(對)시간표 전략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 시간표가 이후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이어지는 1시간 사이에 거짓말같이 일어난 평소와 사뭇 다른 상황들 때문이었다.

7시를 약 15분 앞두고 단순히 로그인을 하는 데도 대기시간이 걸린 것은 물론이요, 예상 소요시간은 점(...)으로만 표시돼 기약 없는 기다림에 혼란을 더할 뿐. 7시가 지나도 로그인이 안 되자 이른바 ‘현자타임’이 와서 주변을 둘러보니, 뒷좌석에 앉은 새내기들도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7시를 10분 넘기고 로그인이 됐으나 이번에는 매크로 방지 번호가 뜨지 않았다. 또 한 번의 기다림, 가까스로 번호를 기입하고 신청버튼을 누르자 찾아온 것은 뜻밖의 자동 로그아웃. 그 이후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학내 커뮤니티들을 살펴보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다른 사람의 계정으로 로그인됐다는 사람, 로그인에 일찍 성공한 사람은 쾌적하게 수강신청이 가능했다는 리포트, 정보화본부 직원과의 통화, 롤백 논의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중 주된 정서는 홀수는 마루타라느니 ‘홀수저’(설명: 홀수+수저, 수저는 경제적 신분을 나타내는 인터넷 용어로 금수저, 흙수저 등으로 활용된다) 물고 태어난 내가 잘못이라는 식의 ‘웃픈’ 자조와, 사태의 총책임자인 정보화본부의 무반응을 향한 분노였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자 분위기는 급격히 반전됐다. 짝수학번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매우 쾌적하게 했다는 반응이 학내 커뮤니티에 잇따라 올라오며 정보화본부를 향한 분노가 어느새 롤백을 놓고 벌이는 짝수와 홀수의 기싸움으로 변한 것이다. 논의가 격해지면서 ‘짝수로 태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못한 홀수의 잘못’이라는 논리, ‘짝수충’이라며 상대를 비하하는 혐오성 표현, ‘짝블리스 짝블리제’의 아량으로 ‘홀수저’를 보듬어주자는 비꼼 등이 가세하자 이내 기싸움은 ̒개싸움̓이 되고 말았다.

더욱 놀라운 부분은 하루 사이에 학생들의 ‘분노’가 홀짝의 ‘분열’로 변모하기까지 사태의 원인제공자인 정보화본부가 특별히 의도한 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정보화본부가 한 일이라고는 첫째 날은 일을 못하고(?) 둘째 날은 일을 잘한(?) 것뿐이다. 시스템의 명백한 오류를 놓고서 함께 목소리를 내도 시원치 않은 판에 학생들이 스스로 분열을 서슴지 않은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물론 뒤늦게 ‘홀짝수가 분열되면 안 된다’며 자정의 목소리가 득세하긴 했으나 이미 서로에게 낸 상처를 되돌리기엔, 정보화본부에 어떤 요구를 하기엔 늦은 후였다.

왜 학생들이 수강신청 시스템의 오작동을 놓고 홀수와 짝수로 분열했는지 원인을 확신할 수는 없다. 이해관계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지극히 경제적인 행동일지도, 아니면 시스템에 항의해봐야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분노를 배설할 대상을 찾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번 사태에서 불거진 서로에 대한 증오가 우리 사회가 분열정책(Divide and Rule)이 쳐놓은 함정에 빠진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는 점이다. 관정 도서관 출입을 놓고 휴학생과 재학생이, 국민연금을 두고 공무원과 비공무원이, 세월호를 두고 유가족과 다른 국민이 싸우는 동안 정작 일을 저질렀거나 상황을 수습해야 할 시스템의 책임자는 마술처럼 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오작동하는 시스템이 고쳐지지 않으면 홀짝 순서가 바뀌든 말든 모두가 영원히 고통 받을 뿐이다.

정보화본부는 당분간 사과를 담은 게시물을 올릴 계획도, 주도적으로 수강신청 문제를 해결할 의사도 없다고 한다. 이제, 어질러진 사무실같이 난장판이 된 현실에서 벗어나 멀리 떨어져서 문제를 보는 건 어떨까. 어느 유명한 반전 영화처럼 유력한 용의자(usual suspect)를 놓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사라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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