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어국문학과 방민호 교수

관악에 새롭게 몸담은 지 어느새 십 년이 넘었다. 그 사이에 고운 정, 미운 정 다 든 학교다. 어느 면에서는 학교와 나 자신을 쉽게 분리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사이에 구성원들을 자극하는 변화의 흐름이 적어도 세 번은 있었다. 한 번은 대학 교육이 교양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공 이수 학점이 많던 시대에 학부를 다닌 나로서는 무슨 얘기인지 종잡을 수 없었지만 뭔가 뜻이 있으려니 했다. 또 한 번은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이 때 학부 정원이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아는데, 밭에 씨를 적게 뿌려놓고 많이 거두겠다는 뜻 같았지만, 그때도 어떻게 할 일은 없었다. 마지막으로는 법인화였다. 법인이 되면 뭔가 획기적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 그 선택이 좋았다고 말하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동안 겪어온 세 번의 변화의 결절점을 지나오면서 흔쾌한 마음을 갖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제 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도 됐다.

무엇보다 우리는 학부에서의 전공 교육, 전공 공부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나 한다. 학부제다, 학과제다, 복수전공제다 등등 많은 변화의 목소리, 제도 변화가 일어나는 사이에 학부에서의 전공 교육과 연구, 학생들의 공부는 내실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외부로부터 온 요인도 많다. 무엇보다 학교 바깥의 환경이 경쟁주의로 흐르면서 학생들부터 자기가 몸담은 학과, 학부의 공부보다 고시, 대기업, 공기업을 위한 항시 입시 체질로 변모해버렸다. 학생들은 어떤 학과에 소속해있든 영어 공부에 매달리고 제2의 입시 공부 팀을 만들어 열띤 생활을 한다.

이러한 학생층 변화와 함께 교수들 또한 이러한 변화에 무기력한 적응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것도 있다.

다시 전공에 대한 관심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들의 많은 문제를 서서히 회복시켜 줄 것이라 기대한다.

우선, 전공 공부야말로 대학의 근간 구조를 지탱하는 요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어국문학과라면 국어학, 고전문학, 현대문학의 세 코스가 학과의 교수 구성부터 학생 교육, 강좌, 학점 등의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된다. 이 기본적인 요소가 실제로 중시되는 운영을 꾀해야 한다.

다음으로, 전공 능력의 깊이야말로 복합적인 학문 능력을 쌓을 수 있는 기초 역할을 한다. 만약 동아시아학에 종사하려는 학생이 있다 하자. 그가 한국어나 중국어, 일본어 가운데 어느 하나에 우선 정통하지 않고 실력 있는 학자로 성장해 갈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또, 전공 능력이야말로 학생들의 평생의 삶과 사유를 실어갈 수레와 같은 것이다. 세월이 하수상한 나머지 학교 바깥도, 안도 모두 경쟁주의에 휘말려들고 있다. 약육강식, 우승열패의 고색창연한 논리가 사회적 상호부조와 동정, 연민의 사상을 가볍게 짓누르고 득의의 표정을 짓고 있다. 이런 세계에서 관악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또 배출된 사람들이 힘을 위한 실용 지식에만 눈을 돌린다면 그러고도 이 사회의 미래가 밝을 수 있을까.

이 사회는 그렇지 않아도 원칙과 기본,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와 존중 대신에 자기 생존을 위한 속악한 권력 논리가 힘을 발휘해왔으며, 그러한 작용력에 대한 내구력이 지금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약화되어있는 형편이다.

모두들 각자 하나의 길을 통해 광장에 다다르는 것이다.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개, 세 개의 길을 걸을 수 없다. 전공은 좁은 길이지만 이 길을 걸어 인간이든 사회든 광장의 만남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가치가 더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허여받은 것들이 우리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몸담고 있는 학문의 분과들이 이 사회라는 총체를 위해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미래를 기약해보고 싶다.

어느새 뜨거운 여름이 갔다. 여름의 고통과 번민과 압박도 여름이 가듯 보내고, 새 가을, 새 학기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