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동자들이 살맛 나는 그날까지”
“동행! 노동자들이 살맛 나는 그날까지”
  • 최하영 기자
  • 승인 2015.08.30 18: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연대하는 대학생 - ① 노동

과거엔 청년과 노동계의 연대가 활발했다. 청년들은 동맹휴업, 파업지지 시위 등의 방법으로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며 노동운동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불씨가 많이 죽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스펙 쌓기, 취업 준비로 내 한 몸 간수하기도 바쁘다는 변명을 뒤로하고 연대의 불씨가 되고자 나선 당찬 청년들이 있다.

 
“유니폼 이론 알아요? 청소부 유니폼만 입으면 우린 투명인간이 돼요”
-영화 「빵과 장미」 중


먼 이야기가 아니다. 저임금과 부당대우 문제에 시달리는 청소노동자들의 삶은 대학생 가까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그런데 청소노동자들의 ‘빵과 장미’를 위한 투쟁에 동참하는 학생들이 있다. 서강대 학생들과 학내 청소노동자들의 연대활동을 실천하는 ‘함께하는 세상, 맑음’(맑음)이다. 서강대 엠마오관에서 만난 이들은 방학 중에도 다음 학기 활동 계획을 짜느라 분주했다. 열띤 분위기 속에서 “청소노동자분들 이름을 다 알지 못해 아쉬웠는데 그분들의 이름이 적힌 팔찌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그분들이 고된 일로 힘드실 테니 부담 없이 쉬면서 할 수 있는 활동이었으면 좋겠다”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 지난해 9월 서강대 축제에서 '여성노조 서강대 분회'의 청소노동자 연대주점이 열렸다. 맑음의 학생들이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주점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출처: 맑음 페이스북 페이지

◇봉사가 아닌 연대의 마음으로=전공도, 나이도, 학번도 다 제각각인 이들이 모이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맑음은 ‘청소노동자들도 학내구성원인데 대부분의 학생이 이들을 투명인간처럼 취급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들의 첫 만남은 2010년 청소노동자들과 학생들이 마련한 간담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간담회 뒤풀이 자리에서 참가 학생 중 한 명이 청소노동자들에게 “배우고 싶으신 게 있느냐”는 질문을 했고, 한 청소노동자가 “강의실마다 쓰여 있는 영어를 읽어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를 시작으로 맑음의 첫 사업인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영어교실이 탄생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교사가 돼 영어교실을 진행했고, 학생들과 청소노동자들이 함께 영어팝송 공연을 준비해 신입생 환영회 무대에 서기도 했다. 멀어 보이기만 했던 학내의 두 주체는 그렇게 점차 서로를 알아가게 됐다.

이를 시작으로 맑음은 청소노동자를 대상으로 교육 사업을 이어왔다. 정기적 사업인 ‘교실’에서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쳤고 청소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요가 수업을 열었다. 교육뿐 아니라 청소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써 붙이고 시위에 동참하는 방식으로 직접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들은 점심시간마다 틈틈이 학교 곳곳에서 1인 시위와 피켓 시위를 했고, 학교 본관 앞으로 나섰다. 노동절에는 부스를 만들어 학내 노동자들의 부당한 처우를 알렸다. 이들의 활동은 교내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청소노동자 처우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과 고민하기 위해 청소노동자와 연대하는 각 대학의 단체를 모아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맑음 활동을 시작했다는 김평강 씨(서강대 수학과·14)는 “처음만 해도 봉사와 연대가 어떤 차이였는지 몰랐다”며 활동을 통해 “봉사라는 개념은 위에서 아래로 우리가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없는 사람에게 주자는 개념이고, 연대는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며 함께 나아가자는 것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함께 걸었기에 발견한 희망=청소노동자들과 함께 걷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학교와 용역업체와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정민주 대표(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과·14)는 “용역업체가 재계약을 두고 청소노동자들을 협박해 활동을 중단한 적이 있다”며 “당사자가 아닌 연대단체에서 느끼는 한계에 많이 낙담했다”고 회상했다. 청소노동자의 식대와 노동시간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용역업체에 대해 학교 측에 대화를 요구했으나 학교 측이 귀를 닫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꿋꿋이 투쟁한 끝에 의미 있는 성과도 이뤄냈다. 투쟁 결과 한 끼에 400원 정도 지급됐던 식대가 2,700원 수준으로 올랐고 시급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액수에서 6,000원 선으로 많이 올랐다. 이가현 씨(서강대 정치외교학과·12)는 “식대 투쟁을 하면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힘없는 사람들도 뭔가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힘줘 말했다.

학내 청소노동자들도 이런 학생들의 노력을 반기고 있다. 서강대에서는 청소노동자들이 주점 수익금을 모아 학생들에게 주는 ‘민들레 장학금’을 운영하고 있다. 교내 청소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상호 협력과 교류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가현 씨는 “청소노동자분들은 학생들이 없으면 안 된다며 앞으로도 함께 하자는 말씀을 하신다”고 전했다.

맑음은 오늘도 학교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정민주 씨는 “청년 문제와 비정규직 노동문제, 그리고 곧 노동자가 될 우리의 삶은 다 연결돼있다”며 “(맑음은) 소외되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이들과 손잡고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나가고자 한다”고 전했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노래 「사계」 중


70~80년대 구로공단은 이 노래의 슬픔이 그대로 묻어나는 곳이었다. 이 당시 구로공단은 한국 수출의 10%를 담당할 정도로 경제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속에서 구로공단 노동자들은 산업역군으로서 소명을 다 했지만 경제성장의 결실은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가난을 견디지 못해 상경한 어린 여공들은 먼지 나는 지하방에서 온종일 가발을 만들고, 미싱 일을 해서 번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가족의 생계를 부양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더 나은 근무환경을 보장받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대학생들은 이를 지원하려 야학을 운영하기도 했다.

섬유산업이 사양화되며 구로공단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변모했다. 업종도 제조업뿐 아니라 벤처기업, IT산업 등 다양해졌고 노동자들의 직종도 그에 맞춰 변화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도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많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낮은 임금과 잦은 부당노동행위에 시달린다. 근속연수가 1년 미만인 노동자의 비율은 45%에 달하고 평균 실질임금은 한국 평균 실질임금의 58%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2015구로/금천 실태조사」, 노동자의미래)

▲ 지난 26일(수) 서울디지털산업단지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공장 일대에서 열린 집회에서 임솜이 씨가 "노동자들과 노동조건에 대해 함께 대화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이 고민을 같이 하고 싶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여전히 아픈 역사가 지속되고 있는 구로공단 일대에서 특이한 노동자 시위가 있었다. 지난 26일(수)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공장 일대에서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가 주최한 ‘하이텍 분회 투쟁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가 열렸다. 여느 때처럼 사측의 노동조합 분쇄 시도와 노동조건 악화를 규탄하는 정기 집회였으나 이날 눈에 띈 것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구호를 외치는 앳된 학생들이었다.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학생모임’(로도스 구로)이다. 이날 마이크를 든 임솜이 씨(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10졸)는 “저희는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선 노동자들의 연대가 회복돼야 한다”며 “오늘 그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 이 자리에 오게 됐다”고 운을 뗐다.

◇임금·노동조건 넘어 공단 노동자의 ‘삶’ 연구하고자=로도스 구로는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던 몇몇 학생들에 의해 시작됐다. 지난 4월 학회를 함께 하던 사람들끼리 사회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하다가 구로공단의 노동 실태에 생각이 미쳤다. 노유리 씨(서양사학과·10)는 “구로 지역은 예전부터 노동자들이 모이고 공단이 계속 형성되면서 우리나라 산업 발전이나 노동운동이 집약돼온 공간”이라며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 문제의식을 모으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대를 비롯해 이화여대, 성균관대, 중앙대 등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한 학생들 10여 명이 현재의 모임을 만들었다.

앞서 맑음이 오랜 기간 많은 활동을 했다면 로도스 구로는 이제 막 첫발을 뗀 상태다. 지난 여름 로도스 구로는 자체적인 연구 사업을 시작했다. 기존에도 구로공단의 노동 실태를 조사하는 연구는 있었지만, 양적 분석에 그쳐 공단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을 질적으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로도스 구로는 공단 노동자들의 생활양식과 생활수준, 그리고 심리적인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심층 면접을 계획하고 있다. 중장기 목표는 연구를 통해 공단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번 여름방학에 기존의 연구를 검토하는 작업을 비롯해 전문가들에게 연구방법이나 연구 윤리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거송 씨(기계항공공학부·07졸)는 “막상 시작해보니 노동자분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며 연구 사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니온 홀’ 통해 노동조건 개선에 이바지하고파=이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연구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의 집단적 정치 공간인 ‘유니온 홀’(Union Hall)을 세우고 이를 통해 공단 내에서 사실상 사라진 노동조합을 복원하는 것이다. 로도스 구로는 연대의 핵심을 노동자들의 만남과 대화라 보고, 휴식을 취하거나 노동자들이 소모임을 갖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구상해 유니온 홀이라고 이름 붙였다. 임솜이 씨는 “구로 지역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모여서 삶에 관해 이야기도 좀 하고, 같이 뭔가를 해보는, 어떤 정치적인 실천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에는 작업장 외에 노동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연대가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노조 가입률은 1%대에 머물고 있다.

오후 6시가 되자 이들은 마리오아울렛 앞 집회 현장으로 이동해 마리오아울렛 해고 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윤윤선 씨(응용생물화학부·10졸)는 “예전 70~80년대에 비해 지금은 경쟁이 치열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신경 쓰기 힘든 상황”이라며 “하지만 나만 잘사는 게 아니라 다 함께 잘사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강조했다. 피켓을 들고 이들을 지켜보던 마리오아울렛 분회 윤유석 부분회장은 “오늘처럼 여기 계신 학생 여러분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사회에 나가서도 불의에 쉽게 꺾이지 않고 투쟁했으면 좋겠다”며 학생들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