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서울대의 특별한 연구소 - 1 해양연구소 해양저서생태학연구실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새만금 방조제 근처의 외부 해역, 수면 12m 아래에서 퍼 올린 토양 안에는 죽은 조개의 껍데기만 즐비했다. 게, 갯지렁이, 고둥이 살아 움직이던 방조제 멀리의 토양과는 딴판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던 이정호 교수(안양대 해양바이오시스템공학과)는 “새만금 방조제의 외부 해역은 아직 오염으로부터 자유롭지만 방조제로 가까이 가면 오염의 징조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말에 이어 한 연구원은 죽은 조개의 껍데기들을 다른 곳에서 채집한 해양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비닐 안에 담았다. “완료됐습니다”라는 말에 배는 새만금 외해의 다른 지점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새만금 주변 해역의 건강성을 연구 중인 본교 해양연구소 해양저서생태학연구실 소속 연구원들이다. 지난 달 27일부터 29일까지 새만금 현장과 실험실을 오가며 이들의 연구를 따라가봤다.

새만금 방조제로 향한 연구실

전라북도 군산시 앞바다. 총 33.9km에 이르는 새만금 방조제는 착공 20년 만인 지난 2010년 완공됐다. 환경오염, 행정구역 획정, 간척지 이용 방안 등과 관련된 숱한 논란을 거쳐 어렵게 완공된 몸이지만 아직까지도 새만금 방조제를 둘러싼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중에서도 새만금 방조제 내부의 새만금호를 담수화하기 위해 바닷물의 유통을 막으면서 그 수질이 심각하게 나빠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지난 12년에 걸쳐 정부는 2조원이 넘는 액수를 새만금호 수질 개선에 투자했지만 이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오염으로 인해 이미 어민들은 생계를 지속하기가 불가능해졌다. 또한 물이 농업용수로 쓰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4등급의 수질을 보유해야 하지만 새만금호는 이에 한참 못 미치는 6등급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7월 9일 전북대에서 열린 ‘새만금, 다른 길은 있다’ 토론회에서 김강주 교수(군산대 환경공학과)는 새만금호 수질 저하의 원인이 되는 유기물이 상류에서 흘러나오는 영양물질이 아니라 내부에서 생산되는 조류로 인해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물질이라고 지적했다. 해수 유통만이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주장이 지속되는 이유다.

이처럼 새만금호의 오염 문제가 불거지자 새만금 주변의 해양 환경까지 관찰 대상에 포함됐다. 아직까지는 새만금 주변 해역이 깨끗하지만 새만금호의 오염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 주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부터 해양연구소 해양저서생태학연구실에서 수행하는 새만금 프로젝트도 새만금 주변 해역에 대한 지속적 관찰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연구의 시작은 바다 한가운데서

연구는 현장에서부터 시작된다. 7월 28일 새벽 다섯 시 반, 군산 야미도 앞 바다에서 연구실 구성원들은 빨간 작업용 우의를 입고 작은 어선에 올랐다. 김선진 씨(지구환경과학부 박사과정·15)는 “흔히들 연구한다고 하면 실내에서 하얀 가운 입고 실험하는 것만 생각하는데, 우리는 이렇게 입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며 웃었다. 생각보다 배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기자의 말에 윤서준 씨(지구환경과학부 석사과정·15)는 “오늘따라 날씨가 참 좋고 바다도 잔잔하다”며 “날씨가 안 좋은 날에는 배가 뜰 수도 없기 때문에 현장에 와서도 마냥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윽고 조종실에서는 첫 번째 지점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선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전 6시 30분, 포인트 15, 수심 12.6m”

뒤이어 윤서준 씨와 이승준 씨(해양대학교 해양환경학과·12)가 선체 가장자리에서 기다란 밧줄에 매달린 ‘그랩’(Grab)을 천천히 수면 아래로 내렸다. 4개의 추가 매달린 네모난 철제 구조물인 그랩은 아랫부분이 여닫힐 수 있는 구조로, 바다 밑바닥에 있는 흙을 뜨는 데 사용한다. 아랫부분이 열린 상태로 바다의 밑바닥에 내려놓으면 그랩에 달린 추의 무게 때문에 그랩이 해저 토양에 적당히 박히게 되고, 다시 들어 올리면 아랫부분이 닫히면서 그 안에 흙이 담기게 된다. 인형 뽑기의 크레인을 연상시키는 구조다.

 
▲ 연구원들이 새만금호 해역 아래로 내렸던 그랩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랩’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때는 지렛대를 이용하더라도 성인 남성 두 명이 매달려야 한다. 철제 구조의 무게 8kg, 4개의 추는 각각 2kg으로 총 16kg에 달하는 장비와 그 안에 가득 담긴 물먹은 흙을 수심 약 15m 밑에서 끌어올려야 하는 고된 작업이기 때문이다. 윤서준 씨는 “가끔 무리하게 작업을 하면 배의 지렛대가 고장나기도 한다”며 “그럴 때는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 일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연구원들이 그랩으로 퍼 올린 바다 밑바닥의 퇴적물을 채집하고 있다.

이제 그랩으로 퍼 올린 흙은 커다란 체에 담긴다. 물로 흙을 씻어내 그 안에 살고 있는 저서생물을 채집하기 위해서다. 남은 흙은 토양의 오염 정도를 분석하기 위해 그 용도에 따라 지퍼백과 유리병에 따로 보관한다. 이렇게 흙을 옮겨 담으면 한 지점에서의 채집이 완료된다. 약 15개 지점씩 이틀에 나눠 총 30여 개의 지점에서 이 과정을 반복하면 시료 채집이 끝난다. 이날 새벽 6시에 시작된 작업은 6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12시 30분이 돼서야 끝났다. 퇴적물 채집 배보다 조금 더 늦게 뜬 해수 채집 배는 오후 1시가 돼서야 작업을 끝냈다.

실험실에서 완성되는 연구

▲ 연구원들이 유기화합물을 추출하기 위해 채집한 해수 안에 DOM을 넣고 있다.

군산에서의 현장 조사가 끝난 이틀 뒤, 새만금의 배 위에서 만났던 연구원들을 자연대 연구실에서 다시 만났다. 하얀 실험복을 입은 그들의 모습은 빨간 우의를 입었던 배 위에서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윤서준 씨는 “생태계의 건강성을 분석하는 데는 환경의 오염 정도를 알려주는 지표종을 활용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여기서는 화학적인 방법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실에서는 채집한 시료에서 유기화합물인 PAHs(Polynuclear aromatic hydrocarbons)와 APs(Alkyl phenol)를 추출하는데, 이 두 화합물에는 독성을 띠는 물질이 많다. 추출한 화합물 안에 정확히 어떤 물질이 들어있는지, 그 물질이 독성을 지니는지 등의 분석을 통해 새만금 인근 해역의 건강을 진단할 수 있다.

이때 해수와 퇴적물, 두 종류의 시료를 대상으로 같은 분석을 진행하지만 화합물을 추출하기까지의 과정은 시료에 따라 다르다. 해수는 필터로 불필요한 부유물을 걸러낸 후 DCM(Dichloro-methane)*을 바로 물에 넣어 화합물을 추출해낸다. 김동우 씨(지구환경과학부 석사과정·15)는 용기를 흔들다 뚜껑을 열면서 “DCM은 빠르게 기화되는 물질"이라며 "중간중간 뚜껑을 열어 기체를 빼주지 않으면 기체의 압력 때문에 유리 용기가 터져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퇴적물의 경우 유기화합물의 변성을 막고 수분을 제거하기 위해 동결 건조 과정을 먼저 거친 후 DCM으로 화합물을 추출해 분석 과정에 불필요한 황을 제거한다.

이후 유기화합물을 ‘가스 크로마토그래피’(Gas Chromatography) 기법을 이용해 분석한다.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종이에 수성 사인펜으로 점을 찍어놓고 밑 부분을 물에 담그면 물이 종이를 따라 올라가며 색소가 분리되는 현상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고정돼있는 종이는 ‘정지상’, 움직이는 물은 ‘이동상’이라고 한다. 크로마토그래피 기법이란 이같이 적절한 정지상과 이동상을 써서 물질을 분리하는 기법이다. 가스 크로마토그래피는 말 그대로 이동상이 기체인 크로마토그래피 기법이다. 연구실에서 추출한 유기화합물을 가스 크로마토그래피 기법을 통해 각각의 물질로 분리하고 각 물질의 유해성을 파악하는 과정을 거치면 채집한 퇴적물과 해수의 건강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유기화합물을 추출하고, 추출한 화합물을 기계에 넣고 분석하기까지는 해수의 경우 4일, 퇴적물의 경우 5일 정도 소요된다.

현장과 탁상, 그 간극을 메우며

김선진 씨는 “연구실에서는 새만금 프로젝트 이외에도 해양생태계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태안을 중심으로는 기름 유출 지역의 환경 건강성과 환경 복원에 대해, 영산강과 낙동강을 중심으로는 강 하구를 어떻게 관리하고 개발할지에 대해, 또 국내 곳곳의 갯벌을 중심으로 갯벌 토양에 서식하는 미세조류에 대해 연구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주로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 등의 지원을 받아 벌이는 사업으로, 연구 결과는 국가사업의 참고 자료로 활용된다. 새만금 연구의 경우 정부가 앞으로 새만금 주변 해역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다. 김선진 씨는 “이런 연구들이 의외로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연구”라며 “어찌 보면 정책 입안자와 현장 주민 사이에서 그 차이를 메우는 연구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이런 연구는 국가의 정책이 현장과 괴리되는 탁상공론이 되지 않도록 하는 데 일조 한다”며 본 연구의 의의를 말했다.

물론 현장과 탁상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연구실을 이끄는 김종성 교수(지구환경과학부)는 “해양학이나 환경과학 분야의 연구를 하다 보면 새만금 이슈처럼 정부, 지역사회, 민간단체, 특정 기업 등이 모두 연관돼있는 복잡미묘한 사안이 있기도 하다”며 “그래서 이해당사자들의 갈등을 줄이고 소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김 교수는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실험적 자료에 근거한 객관적인 결과를 내서 문제 상황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것”을 강조하며 “진실된 마음으로 연구하고 확실한 사실만을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다를 사랑하는 과학인으로서 바다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과 사회적, 생태적 소통을 하길 바라는 해양연구소 해양저서생태학연구실은 물 위에서, 그리고 뭍에서 오늘도 연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진: 유승의 기자 july2207@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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