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부산대 교수 투신으로 불거진 대학 자율성 논란

▲ 지난 24일(월) 부산대, 전남대, 전북대 등 전국 19개 국공립대 학생들이 부산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장 직선제를 통한 대학 자율성 보장을 촉구했다. 사진 제공: 전남대 김한성 총학생회장

지난 17일(월) 고현철 교수(부산대 국어국문학과)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내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서 고 교수는 총장 직선제의 이행을 촉구했다. 부산대의 이번 사태는 총장 선출을 둘러싼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산대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부산대의 비극 어디서 시작됐나

총장 직선제는 1987년 민주항쟁의 산물이다. 정권의 대학 통제장치였던 총장 임명제가 폐지되면서 총장 직선제가 전국 83개 대학으로 확산됐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이 대통령 직선제라면 대학 민주화의 상징이 총장 직선제였던 셈이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총장 직선제로 인한 폐해가 드러났다. 표를 얻기 위해 학연·지연 위주의 파벌 형성, 선거과열, 금품수수, 보직교수 나눠맡기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이는 교육부가 국립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각 국립대 총장들을 몰아낼 좋은 구실이 됐다. 2010년 이명박정부는 거점국립대의 단계적 법인화와 단과대학장 및 교대 총장의 직선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립대 선진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직선제로 선출된 당시 총장들은 학내 구성원의 뜻에 따라 법인화 반대를 고수했고 추진 상황은 지지부진했다. 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법인화 추진이 지지부진하자 교육부는 정책추진을 위한 수단으로 총장 직선제 폐지를 밀어붙였다”고 분석했다.

박근혜정부 들어서 돈을 미끼로 한 압박은 한층 심해졌다. 교육부는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ACE사업)*과 대학특성화 사업(CK사업)**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총장 직선제 폐지 여부를 평가 항목에 포함시켰다. ACE사업과 CK사업 평가 과정에서 총장 직선제를 유지하는 대학은 각각 3점과 2.5점씩 불이익을 받는다. 또 사업에 선정된 대학이라 하더라도 총장 직선제 관련 규정을 그대로 둔 국립대는 사업 지원금이 최대 50%까지 삭감될 수 있다.

교육부의 예산압박에 시달려야 했던 상당수 국립대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총장 직선제 조항을 삭제한 것이다. 2012년 8월 부산대도 마찬가지로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꾸는 학칙 개정안을 의결했다. 차기 총장을 선출할 때가 되면 대학 구성원과 합의를 통해 직선제를 시행할 방법을 찾겠다는 본부의 약속하에서였다. 당시 총장도 직선제로 선출된데다 총장 직선제 고수를 공약으로 내건 만큼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2013년 4월 부산대 총장선출제도위원회(총선위)는 총장 선출 규정을 교수회 총회 총투표로 확정하는 데 합의했다. 투표 결과 직선제를 주장한 교수회 안이 84%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본부가 총선위 합의안을 어기면서까지 투표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선 것이다. 이때부터 시작된 교수회와 본부의 갈등은 결국 고 교수 투신 사망사건이라는 최악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부산대 교수회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본부는 물론, 교육부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평가와 예산을 내세워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도록 대학을 압박한 교육부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부산대 교수회 이지훈 전문위원은 “대학평가 지표의 대부분이 대동소이한 상황에서 총장 직선제 때문에 불이익을 받게 되면 순위가 상당히 내려간다”며 “학교예산 대부분을 국가에 의존하는 국립대 입장에서 총장 직선제를 고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예컨대 올해 부산대는 총장 직선제를 유지한다면 지원액의 50%가량이 삭감돼 총 66억 원의 손해를 감수해야하는 상황이다.


간선제 택한 대학에서도 대학 자율성 침해 논란돼

간선제로 총장 후보를 선출한 대학에 대해서도 교육부가 잇따라 총장 후보자 임명을 거부해 총장 선출을 둘러싼 논쟁은 대학 자율성 논란으로 증폭됐다. 교육부는 한국방송통신대, 경북대 등에 뚜렷한 이유 없이 1년 이상 총장 후보 임명제청을 하지 않고 있다. 현 총장 임기가 이달까지인 진주교대 역시 교육부에 1, 2순위 후보를 보고했지만 교육부가 지난달 말 “총장 후보자를 다시 뽑으라”는 공문을 학교에 내려보냈다. 이에 교육부가 입맛에 맞는 총장을 선출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공주대는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공주대는 지난해 3월 총장추천위원회(총추위)에서 1, 2순위 총장 후보를 추천했지만 교육부는 임명제청을 거부했다. 현재 공주대 총장은 1년 5개월째 공석이다. 총장 공석의 장기화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공주대 윤규상 총학생회장(공주대 상업정보교육과·10)은 “대표자가 없다 보니 사업 선정과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산학협력 선도대학 사업평가 당시 총장 부재로 인한 대응력 부족을 이유로 2단계 사업에서 탈락했다”고 밝혔다.

대학 안팎으로 교육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만 교육부는 묵묵부답이다. 공주대 총장 후보 1순위였던 김현규 교수가 교육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은 “교육부의 총장 임명제청 거부처분이 행정절차법을 위반한 행위이며, 대학의 자율성을 유린하는 폭거”라고 판결했다. 학내 반발도 거세다. 공주대 총학생회는 교육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과 서명운동을 여는 한편 대법원에 소송을 빨리 진행해달라는 성명서를 보냈다. 전남대 총학생회 송진아 사무국장(전남대 산림자원학부·08)은 “공주대 사태는 교육부가 자기 입맛에 맞는 총장을 세우려고 대학의 민주주의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보여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공주대 입구에는 ‘교육부는 헌법으로 보호된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교육부는 행정기관 내의 의사결정 과정이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대학정책과 관계자는 “해당 대학에 재추천을 요구했지만 학교에서 다른 후보를 재추천하지 않아 총장 임명을 못 하고 있을 뿐 다른 목적은 없다”고 못 박았다. 윤 총학생회장은 “의사결정 과정이라면 부적합 사유를 밝혀서 모든 학내 구성원을 납득시키고 재추천을 진행하면 된다”며 “총장 후보자조차도 이유를 밝혀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조건 다시 뽑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교육부의 대학 길들이기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일부 사립대에서도 대학 자율성 논란 불거져

사립대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주체가 교육부에서 재단으로 바뀌었을 뿐 빛바랜 대학 민주화의 초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동국대는 총장 후보 추천을 두고 조계종 종단의 개입으로 내홍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연임이 유력했던 김희옥 전 총장이 “조계종이 사퇴를 종용했다”고 밝히며 돌연 사퇴했기 때문이다.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이 총장 후보자 3명에게 “보광스님이 괜찮으신 분이니 이번에 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한 것이 뒤이어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동국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학내에 위치한 20m 높이의 조명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며 항의했다. 또 학생들은 1인시위, 학내집회, 이사장실 점거, 조계사 항의 방문 등을 통해 거세게 반발했다. 동국대 교수협의회는 단식 릴레이를 시작했고 강의실 밖에서 천막 강의를 진행했다. 조계종 개입을 규탄하며 삭발식을 거행했던 동국대 김건중 부총학생회장(동국대 정치외교학과·10)은 “종단이 보광스님을 총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에 외압을 가했다”며 “종단이 대학운영의 자주성을 침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하대는 총추위 구성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간선제로 총장을 선출하는 인하대는 총추위 투표를 통해 1, 2순위 후보자를 선정한 후 이사장이 최종 임명한다. 최종 임명을 이사장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데에도 학내 구성원의 반발이 거세지만 더 큰 문제는 총추위 구성에 있다. 총추위 내 재단과 학교 측 인사의비율이 6:5여서 재단이 몰표를 던지면 재단 측 인사가 1순위가 되기 때문이다. 인하대 현승훈 총학생회장(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09)은 “박춘배 전 총장은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총추위 재단 인사의 지지를 바탕으로 2011년 총장에 선출됐다”며 “재단이 입맛에 맞는 총장을 선출해 재단 이익만을 기준으로 한 구조조정을 시행해왔다”고 지적했다.

현승훈 학생회장은 송도캠퍼스 문제를 그 대표적인 피해로 꼽았다. 인하대는 2014년에 송도캠퍼스를 개교할 예정이었으나 재단이 투자를 거부했다. 박 전 총장은 개교 시점이 다가오자 재단의 책임회피를 눈감아주기 위해 재단과 밀실계약을 체결해 송도캠퍼스 개교를 2014년에서 2020년 이후로 최소 7년 이상 연기했다. 현 학생회장은 “재단을 보호하기 위해 총장이 나서서 학생사회의 요구를 무시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본질은 직선제 고수가 아닌 대학의 자율권 보장

지난 27일 부산대 대학본부와 교수회가 직선제 선출 학칙개정안에 최종합의하면서 부산대 사태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 교수 투신 사건은 각 국립대의 총장 직선제 회복 논의에 불을 붙였다. 올해 말 차기 총장을 선출해야 하는 충남대는 간선제로 치러질 예정이던 총장 선거를 잠정 중단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본질이 총장 직선제가 아니라 퇴색된 대학 자율성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 연구원은 “총장선거는 대학 의사결정의 최고 정점에 있는 것”이라며 “총장 선출에 학내구성원의 참여를 더 확대해 대학의 민주주의를 보장할 수 있다면 직선제냐 간선제냐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수사회 또한 여기에 공감했다. 이 전문위원은 “교수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직선제가 아니라 대학에 총장 선출 방식 선택권을 일임해 대학 자율성을 보장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ACE사업: 교육부가 학부교육 선도모델을 발굴하고 이를 확산하기 위해 2010년부터 매년 20개 내외의 대학을 선정해 4년간 지원한다.

**CK사업: 지역사회의 수요와 특성을 고려해 강점 분야를 중심으로 대학의 체질 개선을 목표로 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