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양성평등기본법과 성소수자

 
 

 

“선진국 중에서 좀처럼 성평등 지수가 올라가지 않는 특이한 나라.”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정현희 활동가가 진단한 한국 여성정책의 현주소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이 발표한 ‘2014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142개 국 중 117위로 그 순위가 해마다 하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7월 1일 여성발전기본법(여성법)을 양성평등기본법(양성평등법)으로 개정해 시행했다. 그런데 양성평등법으로 인해 성평등을 보는 문제의식이 약해진다는 우려와 지자체에서 양성평등법 관련 조례에 성소수자 지원 조항을 포함하면서 불거진 문제로 양성평등법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대학신문』에서는 두 달이 막 지난 양성평등법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여성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알리는 양성평등법

한국 여성정책 패러다임이 전환기에 놓였다. 양성평등법의 취지는 형식적 양성평등은 어느 정도 달성했으니 실질적 양성평등을 실현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성평등법은 모든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책임·참여 기회를 보장해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게 목적이다. 여성가족부(여가부) 정희진 서기관은 “양성평등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실질적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성의 참여와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가정에서 모성권, 부성권을 강조하고 일·가정 양립을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남성의 권리로도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양성평등법으로의 개정은 국제적인 흐름을 배경으로 한다. UN 주최로 열린 1995년 세계여성대회에서 채택된 ‘북경여성행동강령’이 그 시발점이었다. 세계여성대회는 여성정책의 큰 방향을 ‘여성발전’에서 ‘성주류화’로 바꾸자고 선언했다. 여성발전은 열악한 여성의 지위를 끌어올리고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 발전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반면 성주류화는 경제·정치·사회 등 모든 영역에 걸쳐서 여성과 남성이 사회적으로 동등한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양성평등법이 성주류화라는 세계적 흐름을 반영하는 만큼 법 개정을 반기는 목소리가 크다. 정현희 활동가는 양성평등법을 “성인지 통계, 예산, 성평등 계획을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수립한다는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성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해진다는 우려

양성평등법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의 열악한 상황이 아직 변하지 않았는데 여성과 남성을 동시에 지원하는 것은 문제의식을 약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양성평등법이 기존 여성정책을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확대하는 것이라는 반박도 있다. 정희진 서기관은 “기존의 여성정책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정책에 실질적 양성평등을 위해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를 강조하는 정책을 확대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전여성단체연합 임원정규 사무처장은 “여성이 열악한 사회적 상황에 있는 구조가 아직 변하지 않았다”고 역설하며 양성평등이라는 표현이 일으킬 문제를 우려했다. 또 임원정규 사무처장은 “성평등이 여성에 대한 차별을 없애면서 젠더 이퀄리티(gender equality)를 이루자는 것이라면 양성평등은 기계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몫을 5:5로 나누는 근거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여가부가 말하는 성평등 개념이 다양한 여성의 유형을 포괄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양성평등법은 성차별을 겪고 있는 사람이 정책의 효과를 보도록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정현희 활동가는 “그냥 여성이 아니라 여성이면서 한부모인 사람, 이주결혼을 한 사람, 장애를 가진 여성 등도 성평등 정책의 효과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법 집행에서 성주류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정책의 성주류화는 곧 모든 부처에서 양성평등을 위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을 뜻한다. 정현희 활동가는 “여가부가 여성정책을 다른 정부 부처의 영역에 걸쳐서 시행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가장 크다”며 “그렇다고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에서 분업이 잘 돼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양성평등법은 모든 성을 보호할 수 있는가

한편 양성평등법의 조례를 제정하는 과정에서 몇몇 지자체가 조례에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포함하면서 양성평등법이 논란거리가 됐다. 대전시에서는 양성평등법을 근거로 제정한 성평등기본조례(성평등조례)가 도마 위에 올랐다. 대전시는 지난여름 양성평등법 개정을 앞두고 성소수자 지원을 명시한 성평등조례를 입법예고했다. 성평등조례 제3조 2항에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이 시행계획에 포함돼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기독교계의 반발을 샀다. 제22조에서도 “시장이 성소수자가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장은 법과 조례에 따라 성소수자에도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성소수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성평등조례가 통과된 것이 알려지자 기독교계는 정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반발했다. 이에 대전시는 브리핑을 통해 “양성평등법의 입법 취지는 성소수자도 한 명의 국민으로서 인권을 보호하자는 것이고, 같은 맥락에서 조례를 제정한 것”이라며 “성소수자 용어가 문제시되면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명시된 ‘성적지향에 따른 처벌에 대한 보호 및 지원’으로 개정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기독교계에서 반발하고 여가부에서 개정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자 대전시는 불과 20여 일 만에 용어만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바꿔 성평등조례를 개정하는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대전시는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모두 ‘양성평등’으로 바꾸고 조례안에서 성소수자를 언급한 조항은 전부 삭제했다.

대전시와 더불어 과천시와 서울시 구로구도 곤란을 겪었다. 과천시에서는 성평등조례의 제16조에 있는 “시장은 성소수자의 평등한 인권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구로구의 경우 양성평등기본조례안 제2조 3항 “성차별이란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에 기반해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 성을 차별하는 태도, 신념, 정책, 법, 행동 및 언어 등을 말한다”에서 ‘사회적 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문제가 됐다. 결국 이 두 지자체도 문제가 된 내용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임원정규 사무처장은 “성소수자를 명시한 조항이 문제가 된 이후 성소수자는 명시하지 않고 성평등조례라는 명칭을 써오던 지자체에서도 자발적으로 양성평등기본조례로 개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평등 조례가 모법에 어긋나는지가 문제의 핵심

논란의 핵심은 성평등조례의 내용이 모법인 양성평등법의 입법 취지에 어긋나는 지 여부다. 이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여가부와 대전시, 시민단체 측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

여가부와 대전시는 성소수자 지원 조항이 모법인 양성평등법의 입법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정희진 서기관은 “법에서 위임된 것을 정하는 것이 조례의 목적”이라며 “양성평등법을 잘못 이해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들어간 내용을 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들은 성소수자 인권은 양성평등법의 내용이 아니므로 그 하위법인 성평등조례에서 다룰 것이 아니라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다뤄야 하는 내용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전시 여성가족청소년과 우희재 여성정책 담당자는 “성적 지향에 따라 차별을 금지하는 법은 국가인권위원회법”이라며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인권 관련 조례에 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성소수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내용이 양성평등법의 입법취지에 어긋난다는 근거가 없으며 성소수자를 명시적,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현희 활동가는 “여가부가 대전시 성평등조례가 모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취지에 어긋나는지 설명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여가부가 성소수자 지원 조항을 삭제하라고 요청한 것은 성주류화정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는 지적도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지난 8월 13일 성명서를 통해 “성적 지향 등 성평등과 관련된 개념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실질적 양성평등을 꾀한다는 입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성평등법을 시행하고 불과 두 달여 시간 동안 지자체 조례를 둘러싼 논란이 크게 번졌다. 양성평등법의 향후 시행에 대해 임원정규 사무처장은 “여성정책을 포함한 성평등의 맥락으로 가야 하며 성소수자 인권 문제의 공론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한국에서 성 정책의 헌법으로 기능할 양성평등기본법의 귀추가 주목된다.

 

삽화: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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