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중반까지 서울대를 다닌 사람들은 아직도 가끔 동숭동 캠퍼스의 향수에 젖는다. 시계탑 앞 잔디에 누워 맞았던 햇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띤 토론을 벌이던 마로니에 그늘, 모차르트 40번을 들으며 모닝 커피를 마시던 학림 다방, 학생증 맡기고 외상을 긁었던 튀김 집이나 짜장면 집 진아춘(璡雅春)의 낭만을 말한다. 또 낡은 가방에 모자를 쓴 꼭 고물장수 같았던 노 교수님이 가끔씩 허리 펴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꾸부정한 채 길을 따라 오시던 모습을 되살린다. 그 때가 대학 같았다고들 한다.

물론 국립공원 안에 있는 이 관악 캠퍼스도 자연 경관은 정말 좋다. 슬럼 가에 인접해 있어서 으스스한 미국 명문대학들이나 오랜 세월 확장되다 보니 시내 한 복판에 건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유럽대학들에 비하면 우린 참 괜찮은 환경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또 처음 이전했을 때를 생각하면 이제 나무들도 많이 자랐고, 개강파티 한번 하려면 노량진까지 가야했던 데 비하면 주변이 아주 참 편해졌다. 그런데도 왠지 정이 안 든다고들 한다.

학기가 시작되었는데도 이리저리 피해 다니게 공사판이 되어버린 흉한 교정이나 수시로 드나드는 트럭들과 오토바이들의 소음 때문만은 아니다. 아침에 등교해서 이십 분씩 주차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하여튼 뭔가 무드가 달라진 때문인 것 같다. 예컨대 요즘 같은 시대에 학생들이라고 학교에 차 타고 오지 말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잣집 학생들이 자가용차로 와서도 학교 앞에서 내리질 못하고 일부러 혜화동 로타리까지 가서 몰래 내려 걸어오곤 하던 동숭동 시대의 문화가 사라진 탓 말이다.

하긴 테니스 라켓만 들고 다녀도 별종 취급을 하고, 도시락을 주로 싸 가지고 다니던 그 시절과 어찌 비교를 하겠는가? 하숙비 꼬박꼬박 부쳐 받던 학생들이 성적이 잘 나와도, 불도 못 때면서 자취하는 친구들 눈치보느라 장학금 신청도 못하던 그 시절과 어찌 견주겠는가?

그 동안 세상 많이 바뀐 것은 맞다. 부잣집 학생이라도 대학에 들어왔으니 스스로 학비를 마련해보고 싶어서 장학금을 신청했다는 데 무어라 하겠는가? 힘든 고시 공부하려면 교수식당에서 좀 나은 식사를 하겠다는 데 막을 구실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새 문화에 적응이 잘 안되는 고리타분한 내가 잘못이지. 그냥 내 탓을 하고 만다.

그래도 며칠 전 어느 자리에서 “요즘엔 강남의 부잣집 애들이 과외 덕에 공부도 잘해서 서울대에 더 많이 들어간다며? 학문도 돈이 있어야 한다니까” 하는 친구 말이 꼭 욕처럼 들려서 나도 모르게 발끈 화를 냈다. 빈티 나게 살았던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나. 그런 나의 콤플렉스 때문일까?

모처럼 관악산에 올라 학교를 내려다본다. 비집고 간신히 들어가 주차하려던 공간, 강의 시간에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던 길들이 갑자기 좁아만 보인다. 학생들도 하루쯤은 이렇게 산에 올라와, 눈앞의 일에만 얽매여 경쟁적으로 메마르게 살아온 삶을 한번 내려다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당장은 좀 손해가 나더라도 평면적 삶을 넘어서 더 높은 데 올라서 멀리 바라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해서다. 그러면 이 캠퍼스에도 남 생각하는 여유와 추억할 만한 낭만의 문화가 살아나지 않을까? 더 대학 같아지지 않을까? 결국엔 또 학생들 탓만 하고 만다.

김종서 교수
인문대ㆍ종교학과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