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해양공학부 이신형 교수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의『로마인 이야기』 1권의 부제로 알려진 이 말은『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가 원작자라고 한다.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 게 어디 로마뿐일까. 해도 해도 부족하고 잘 안 되는 것들. 필자만의 고민일까.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고 끊임없이 어려운 것 중에 최고봉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영어’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 와중에 완벽한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못해 얄미울 정도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그렇게 되기란 쉽지 않다. 입시, 취업, 승진, 해외파견 등 무엇이든 영어성적을 요구하는 현실 속에 살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은 쉽게 점수 따는 길을 선택한다. 그것이 자신의 진짜 영어 실력인지 암기 실력인지 찍기 실력인지는 안중에 없어 보인다. 이들에겐 진짜 영어 실력보다 중요한 것이 고득점 획득이기 때문이다.

이런 약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연간 1천억원 이상의 응시료 매출을 올리는 시험이 바로 토익이다. 토익은 이름 그대로 국제커뮤니케이션 테스트로 서로 통할 정도의 영어 실력이 있는지 보는 것이다. 마치 고려 시대에 아라비아 상인들이 우리나라에서 무역을 했던 정도의 솜씨라면 영어 실력으로서 토익 만점 수준이다.

그 정도면 됐지 뭐가 문제인가 하는 사람도 있겠고 우리가 아라비아 상인들처럼 물건만 사고판다면 상관이 없다. 그게 토익의 개발 목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21세기를 선도해 나가겠다는 선진 대한민국이 이 수준에 그쳐서야 하겠는가? 실전영어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게 우리가 열심히 공부한 결과여도 괜찮은가?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원어민도 인정할 만큼 속 깊은 얘기도 할 수 있는 정도가 돼야 비즈니스도 성장할 수 있다. 반기문 사무총장만큼 영어를 해야 21세기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

전 세계의 토익 응시자 수는 연 700만명이 넘는다. 그중 일본이 240만여 명, 우리나라가 230만여 명이다. 전 세계 토익응시인원의 70%가 한국과 일본에서 나오는 셈이다. 1978년 일본의 의뢰로 미국 ETS사에서 개발된 토익은 일본에서 최초로 시행됐다. 그만큼 토익은 일본과 밀접한 시험이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는가? 일본이란 나라가 세계를 선도하는가? 사실 창피하지만, 인구수 대비 토익 응시 인원을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일본보다도 더 많은 셈이다. 국내 사교육 기관을 통해 매년 1천억원씩 응시료를 쓰는 것이 국가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가? 그래서 일본처럼, 일본 사람들처럼 되고 싶은가?

영어 공부를 하려면 제대로 하자. 대강 뜻만 통하는 영어는 초·중·고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영어시험도 제대로 된 시험을 보자. 한두 달 ‘연습’만 잘하면 200점도 오르는 시험은 대한민국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자제했으면 한다. 미국 사람들이 “너희처럼 영어 못하는 사람들은 이 정도만 해도 된다”는 시험을 봐야 하나? 영어를 공부하는 비영어권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그들의 영어실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며, 그들의 발전을 돕기 위해 만든 시험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바로 서울대가 자랑하는 TEPS(Test of English Proficiency developed by SNU)다. 10여 년의 준비를 거쳐 개발된 시험, 17년간 엄격하고 공정하게 시행되고 있는, 공신력 있는 시험이다. 대강 통하는 영어가 아닌 영어전반의 능력을 깊이 있게 평가해 영어 실력향상을 도와주는 시험이다. 학생들 중에 TEPS를 한두 번 보다가 토익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이유를 물어보면, 토익은 점수가 금방 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끄러운 줄 알았으면 좋겠다. 특히 국내 최고의 서울대생이라면 당당하게 자신의 진짜 영어실력을 평가받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도 제대로 된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 영어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그까짓 영어! 피하지 말고, 부딪혀 이겨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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