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육교육과 진현주 박사과정

내가 기획한 미래의 클럽이 있다. 이름하여 ‘박보(博譜) 클럽’. 박사 바보의 준말로 박사학위 소지자만 가입 가능한 이 클럽의 목적은 넓은 시선을 통해 제대로 된 현실 인식을 하고(博), 그 현실에 좌절하지 않는 법을 익힐 수 있도록 공동체를 형성하여(譜), 시민사회에서 박사의 의무를 다하는 데 있다.

박보 클럽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지적인 인간이라는 칭호인 ‘박사’와, 가장 어리석은 인간을 지칭하는 '바보'라는 메타포를 결합하여, 실제로 박사가 전혀 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다. 유명한 파리(蠅)학과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학위가 높아질수록 연구자 본인만 아는 이야기를 연구해야 하고, 또 그렇지 않으면 박사가 될 수 없다. 박사가 되려면 파리 뒷다리 발톱에 대해 온 힘을 다해 파고들어야 한다. 그 때문에 파리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다 잊어버린다. 간단히 말해 먼지같이 작은 자신의 전공 분야 말고 다른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게 된다. 심지어 석사논문으로 썼던 파리 뒷다리에 대해서도 다 잊게 된다. 박사가 가장 지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무지한 이유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좌절감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지적인 인간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바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때의 분열은 극복하기 쉽지 않다. 대부분 박사는 경험했다. 석사논문을 쓰고 난 이후에 그 논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어땠는지를. 나의 경우 석사논문을 쓰고 나서 양가감정에 시달렸다. 다시는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할 것 같은 공포와 이런 것을 또 만들어낸다면 앞으로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자기 비하를 이겨내는 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석사논문을 능가하는 산출물을 생산하게 된다면 그 자괴감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벌써 두렵다. 그리고 제대로 된 박사논문은 타 분야에 대한 무지를 필수적으로 동반해야 하므로 바보가 되지 않고서는 박사논문을 완성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자괴감 없이는 박사가 될 수 없다. 가장 지적인 존재가 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하는 역설로 인한 두려움과 자조적인 회의에 빠지지 않는 데에 이 클럽의 효용성이 있다. 바보들 간의 우정의 연대로 자조에 먹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친구와의 우정은 자기 의무를 방기하는 개인적인 우울함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를 도와 학문 공동체를 견인할 것이다. 박사는 가장 지적인 바보가 되기 위해 기나긴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받은 것을 사회에 환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본인이 바보인 것을 잊고 의기양양해질 때마다 옆의 친구들을 통해 자신의 바보성을 반성하도록 하여 자신의 무지를 덜어내기 위한 노력을 잊지 않기 위함도 박보클럽의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다. 이러한 노력은 가장 지적인 존재와 가장 무지한 존재라는 존재론적 충돌을 약화해 삶의 균형을 찾는 것에 도움을 줄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바보임을 두 가지 차원에서 인정하고 그것을 잊지 않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다. 바보가 되지 않으면 박사가 아니다. 그러나 박사가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잊으면 가장 무지한 상태에 머무르고 만다. 박사란 전공 바보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 박보 클럽의 멤버들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주제다. 이 시간 관악을 밝히고 있는 (나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미래의 멤버들에게 진심 어린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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