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국 농업의 대들보


1994년 UR 당시, 한국은 개도국의 지위를 인정받아 쌀에 한해 10년간 관세화(관세 부과를 제외한 모든 수입 제한 조치가 금지되는 것)를 유예받았다. 대신 관세화 유예의 대가로 최소시장접근(MMA: 5% 관세의 의무수입물량)을 허용, 국내 쌀 소비량(1988년 기준)의 4%인 20만 5천톤을 수입해 가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올해는 UR의 쌀에 대한 특별취급 완료 시한으로, 우리나라는 5월 14일 미국을 시작으로 중국ㆍ호주 등 9개국과 순차적으로 양자협상을 진행했다. 현재는 핵심당사국인 중국, 미국과 3차 라운드까지 마무리한 상태이며, 중국은 예외없는 관세화, 미국은 MMA 확대와 MMA의 민간판매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관세화냐 … 최소시장접근물량 확대와 일반 판매냐

고율 관세 지속은 불가능하다는 전망 지배적


▲관세화 논란

한국이 이번 협상에서 관세화를 택할 경우, 변동 수입과징금, 수입량 제한과 같은 수입제한조치가 금지되는 대신 그만큼의 기대효과가 ‘관세상당치’로 계산돼 원래 있던 관세에 더해진다. 이와 같이 계산하는 경우 한국의 시행 첫 해 일반관세는 400%선으로 예상된다.

 

 

관세화를 지지하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서진교 박사는 “관세화된다면 쌀 공급 증가로 인해 가격 이 하락하겠지만, 수입쌀과의 가격차는 적을 것”이라며 “한국 쌀의 평균 가격이 16만원(80kg)이고 MMA로 들어오는 중국과 미국 쌀이 4만원(80kg)정도인데, 수입쌀에 대해 400%의 일반관세를 적용할 경우 수입쌀의 가격은 한국 쌀의 가격과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 쌀 가격의 급락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그럴 경우 일반관세에 130%의 관세를 더 부과할 수 있는 특별 세이프 가드를 발동할 수 있다”며 반박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 쌀 제외하면 5%… 미국 134%, 프랑스 195%

 

그러나 이태호 교수(농경제사회학부)는 “매년 관세를 감축하도록 한 UR 협정의 규정에 따라 400%와 같은 고율 관세는 유지할 수 없다”며 “특히 국내시장 진입이 가능해진 미국, 중국 등이 점차적으로 가격을 낮출 경우 한국 쌀의 가격 대응능력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최소시장접근물량(MMA) 확대 

UR 농업협정 부속서는 한국이 계속해서 관세화 유예를 적용받을 경우 상대국에게 ‘추가적이고 받아들일 만한 양허’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관세화 조치가 유예되는 방향으로 협상이 타결된다면 현재 4%인 MMA 수준을 늘리는 추가적인 양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MMA를 확대했을 때에는 관세화와 달리 쌀 수입량을 규제할 수 있고, 국내 농업의 구조조정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MMA재고 물량이 지난해 말 36만톤을 넘어섰고, 국내 가공용 쌀의 수요는 늘지 않아 언제까지 재고량을 늘릴 수는 없다. 농림부 국제농업과 최정록 계장은 “관세화 유예를 계속 고집할 수는 없으므로 관세화 이후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UR 협정에 따라 관세를 계속 인하하고 있는데, 10년 후에 관세화할 경우 지금보다 훨씬 낮은 관세화율을 적용시킬 수밖에 없다”며 우려했다. 또 UR 농업협정서에서는 관세화 유예 기간의 MMA는 관세화 시행 후에도 허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만약 이번 협상에서 관세화 유예에 성공하더라도 몇 년 후 관세화를 하게 될 경우, 허용해야 할 MMA는 훨씬 증가한다.

 

 

▲ © 노신욱 기자

▲일반 판매 허용

정부는 MMA로 수입된 물량을 전량 가공용 쌀로 공급해, 수입쌀의 일반판매는 사실상 통제돼 왔다. 그러나 미국, 중국 등은 한국에게 관세화 유예를 허용하는 대신 MMA의 일정부분 민간 판매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농 전정란 간사는 “대만은 2003년 쌀 소비량의 8%가 MMA로 들어와 시장에 풀려 국내 쌀값이 폭락하자 관세화로 돌아섰다”며 “대만의 예처럼 MMA의 민간판매가 시작될 경우 쌀값이 폭락해 충격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한국농어민후계자연합 정책조정실 한민수 대리는 “MMA의 민간판매가 시작될 경우, 질보다 값을 중시하는 식당이나 급식소에서는 수입쌀을 선호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말했다. 또한 한[]칠레 FTA 이후 실제 포도나 복숭아의 수입은 크게 늘지 않았는데도 수많은 과수원이 폐원하고 있는 사실을 근거로 “일반 판매 물량이 아무리 적더라도, 산술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파장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MMA의 민간판매를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정록 계장은 “가공용 쌀은 이미 재고가 남는다”며 “민간판매 허용 여부는 쉽게 결정할 수 없어 신중하게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협상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식량자급률의 법제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6.9%(쌀 제외 5%)로, 미국의 134%, 프랑스 195% 등과 비교할 때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민노당은 ‘농업농촌기본법’에 각 품목별 자급 목표치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가격 보장이나 논농업 직불제 등을 통한 생산기반 유지, 생산인력 확충 방안 등을 구체적 수치로 제시하고 그 방법과 예산 확보 문제까지 명문화하는 내용의 초안을 작성중이라고 밝혔다.

 

 

민노당 강기갑 의원 보좌관 이호중씨는 “일본과 스위스, 스웨덴 등 유럽국가들이 식량자급법을 시행하고 있는 만큼, WTO 규정 안에서 충분히 식량자급률 법제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한호 교수(농경제사회학부)는 “아직 쌀 관세화 재협상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법제화를 하는 것은 큰 혼란을 부를 수 있다”며 “법제화는 재협상 이후 논의해야 할 일”이라고 충고했다. 이에 대해 한민수 대리는 “쌀개방 이후 급속도로 농업이 쇠락할 것이 자명한데, 그 때 농업을 복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사후약방문 격이 되지 않게,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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