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연대하는 대학생 - ② 세월호

지난달 28일 잠수사들이 처음으로 세월호 선체에 진입했다. 여전히 9명의 실종자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인양 작업에서 눈을 뗄 수 없다는 가족들은 사고 해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참사 500일이 넘은 지금,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세월호는 자리를 내줬고 사람들의 가방에선 노란 리본이 하나둘 떨어졌다. 그런데 여기, 가슴에 간직한 세월호를 행동으로 기억하겠다는 대학생들이 있다. 이들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법을 들어보자.

‘기억하겠습니다’에서 ‘행동하겠습니다’로

▲ 올해 3월 연세대 신촌캠퍼스 중앙도서관 앞에서 매듭이 세월호 1주기를 추모하는 부스를 열었다. 학생들이 부스에서 유가족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 출처: 매듭 페이스북 페이지

◇세월호 문제를 매듭짓는 그날까지=세월호 이야기로 뜨거웠던 지난해 9월 잠잠했던 송도가 달아올랐다. 국제캠퍼스에서 열린 세월호 유족 간담회에 100명이 넘는 연세대 학우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경과를 짚고 세월호를 둘러싼 오해에 대한 질의응답이 오갔던 이 자리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연세인의 모임’(매듭)이 결성된 단초가 됐다. 6명의 연세대 학우들이 시작한 노란 물결은 송도를 넘어 신촌으로 퍼졌다. 신촌캠퍼스에서도 성공적으로 간담회를 연 후, 산하 씨(연세대 국제학전공·14)가 이 모임을 총학생회 사업국으로 정식 출범시킬 것을 제안했다. 정기적으로 소통의 공간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렇게 이듬해 3월 28일 산하 씨를 단장으로 한 매듭이 첫발을 내디뎠다.

매듭이라는 이름에는 이들이 매듭을 만든 이유가 담겨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를 둘러싼 문제들이 이제는 매듭지어지길 바란다는 의미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려는 학생들이 하나로 묶인다는 중의적인 의미다. 산하 씨는 “매듭이 사회 참여를 하면서도 세월호 문제와 관련된 학습을 기대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며 “외부에서 연대하면서도 학내에서 세월호 참사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고 세미나를 통해 구체적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활동방향을 소개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치유=매듭의 활동에는 치유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지난 7월 매듭은 안산으로 세월호를 되새기는 기행을 다녀왔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한창 입시 준비 중이던 지금의 새내기들이 안산에 가서 직접 유족들을 만나고자 떠난 여행이었다. 먼저 유족들이 만든 상복 소재의 옷, 실로 만든 목걸이를 전시한 기억전시관과 단원고 교실에서 아이들의 흔적을 돌아봤다. 이후 분향소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유족들과 대화를 나눴다. 자정까지 이어진 유족과의 자리에선 매듭 단원들이 준비한 합창과 몸짓, 그리고 이에 대한 유족들의 답가가 오갔다. 서영 씨(연세대 경제학과·14)는 “장소 때문인지 기사로 보거나 세미나를 준비할 때보다 감정적으로 와 닿았고 진심을 담아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됐다”며 “학생의 신분으로서 세월호 관련 의제나 진상 규명에 필요한 공부에 힘써주길 당부하신 유족분의 말씀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안산 기억 기행은 대표적인 개인 차원의 치유 활동이었다. 당시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무기력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개인 차원의 치유라면 사회 차원의 치유는 사회가 변해야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매듭은 세월호 참사가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 만큼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과 함께 사회운동이 수반돼야 함을 피력했다. 이러한 신념 하에 매듭은 지난 4월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촛불행동에 참여하고 경찰의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6·27국민대회에 힘을 보탰다.

사회가 변하고 제도가 변해야 한다는 외침에 ‘정치적이지 않느냐’는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많았다. 조건희 씨(연세대 의예과·15)는 “(한 세미나에서) 한 학우가 노란 리본만 달고 추모만 하지 집회에서 소리까지 지르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며 “세월호에 대한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밝혀나가는 행위를 방해하는 정부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치적이라면 충분히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오늘도 매듭은 당연하게 여겼던 가치들을 되새긴다. 내가 타는 배가 안전하다는, 누군가 바다에 빠지면 구해야 한다는, 자식을 잃은 부모가 슬퍼하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당연한 것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 2학기에도 그 움직임은 계속될 것이다. 오는 12일(토)에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고대인 모임’과 함께 안산으로 기억 기행을 떠난다. 매년 가을 열리는 연합축제 연고전에서도 부스를 설치해 노란 리본과 리플렛을 나눠주며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일깨울 예정이다. 산하 씨는 “우리들에겐 너무나 슬프고 익숙한 것이 당연한 게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상실감을 줬다”며 “존재하지 않았지만 존재했다고 착각했거나 깨졌던 가치들을 다시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다졌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관악의 예술가들

◇일상의 관성을 타파하고자=관악에선 미술 작업으로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미대생 5명이 모였다. “우리가 밟고 선 땅바닥이 당연한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땅바닥 모임’(땅바닥)이다. 모임의 이름을 붙인 땅바닥 김소희 대표(동양화과·14)는 “세월호 참사 이후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는 생각으로 익숙한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며 “내가 쓰는 물감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당연한지부터 학교를 다니는 게 온전히 내 능력인지, 매일 먹는 밥과 다니는 학교가 당연한 것인지 묻고 싶었다”고 모임을 시작한 동기를 밝혔다.

땅바닥은 관습적인 것을 의심하는 주제의식 하에서 2주에 한 번씩 이야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 땅바닥의 첫 이야기 모임은 혼자서만 품어왔던 세월호에 대한 단상을 털어놓는 자리였다. 지난해 입시를 준비하면서 겪고 느꼈던 이야기들이 오갔다. 당시 고3이었던 한 부원은 입시 현장에서 목격한 세월호 침몰을 이야기했다. 학교와 학원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입시 문제가 나올 것을 준비시켰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교실을 뛰쳐나간 그가 교실로 돌아와 마주한 것은 성적이 가장 우수했던 친구가 세월호를 주제로 입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었다. 그는 그 충격을 마음에 묻어둔 채 대학에 왔다. 이에 당시 입시생이었던 이정민 씨(동양화과·15)는 단원고 학생들의 대입 특혜 논란과 관련해 분노했던 기억을 풀어냈다. “대입 특혜 이야기가 보도되자 유족들에 대한 고3 친구들의 태도가 가차 없어지고 크게 동요했다”며 “정부가 대입에서의 특혜를 대가로 부당함을 겪은 사람들의 입장을 무마시키기 위해 제안한 것 같았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잇따라 나머지 부원들도 참사 이후 감정에 짓눌린 그림밖에 그려지지 않았던 기억,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던 무기력했던 순간, 어른들에게 무작정 화가 많이 났던 속내를 털어놨다.

이야기 모임을 통해 관성적인 일상을 반성하는 작업은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의 경계를 허무는 접점이 됐다. 김소희 씨는 “세월호 참사는 평소에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소한 방식들이 모여서 일어났다”며 세월호가 결코 일상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님을 일깨웠다.

▲ 지난해 8월 김소희 대표가 그림책 준비를 위해 습작한 삽화. 사람들이 흙을 퍼내 벽을 쌓아 세상 가운데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긴 이야기를 형상화한 것. 사진 출처: 땅바닥 김소희 대표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쌓아 만드는 그림책=이러한 깨달음은 미대생에게 익숙한 매체인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첫 프로젝트는 그림책 만들기다. 이달 내로 세상에 나올 그림책은 부원 한 명당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묶은 그림 단편집이다. 부원 각자가 느끼는 다양한 문제의식을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고 나열해 총체적으로 묶어내려는 의도다. 김채영 씨(조소과·14)는 “미술 작업 특성상 개인적인 활동이 많은데 미술이 혼자 하는 취미로만 끝나는 것은 아닌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지 고민했다”며 그림책을 만들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땅바닥은 평소 하던 그림 그리기를 살려 그림책, 설치조형, 퍼포먼스 등 미술 작업만이 줄 수 있는 자극과 여운을 강조했다.

여러 차례 이야기 모임을 거쳐 한창 작업 중인 그림책에는 세월호에 대한 각기 다른 기억이 녹아 있다. 각기 다른 주제를 담은 에피소드 중에는 다수가 인정하지 않는 목소리는 묻히는 세상에서 진짜 앎에 대한 고민을 담은 이야기, 세상의 목소리에 떠밀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있다. 이정민 씨의 작품은 시키는 대로 하면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풍자한다. 이정민 씨는 “우리 모두가 잘 살고 싶어한다는 평범한 생각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며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운 건 맞지만 주체적으로 살지 않았을 때 흘리게 되는 눈물을 표현했다”고 간략히 소개했다.

이희주 씨(동양화과·15)는 “땅바닥에서 일어나는 일을 끌어안고 가야겠다는 경각심이 들었다”며 “할 일 하면서 살기도 바쁜 세상이라 생각했지만 땅바닥 활동을 통해 세월호 참사는 물론 불합리한 사회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고 두 달여간의 활동에 소회를 밝혔다. 모임을 만들기 전까진 분노와 슬픔만 있고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갈피가 안 잡혔다던 땅바닥 부원들에게는 이달 내로 그림책을 완성해 캠퍼스 내에 배포·전시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땅바닥은 세월호 참사가 역사의 전환점이 된 것은 물론 각자의 일상에서도 분기점이 됐다고 이야기한다. 스스로를 ‘세월호 세대’라고 칭하는 땅바닥이 앞으로 그려나갈 세월호의 기억에 귀를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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