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매장문화재 규제 완화 논란

지난 7월 문화재청에서 발표한 문화재 분야 규제혁신 방안에 대해 학계와 전문가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매장문화재 조사대상 명확화 및 조사기간 단축’ ‘매장문화재 조사의 검토체계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이 방안은 개발업자의 손실을 줄이는 규제완화다. 때문에문화재청은 문화재 보존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한국고고학회를 비롯한 5개 고고학회는 지난 달 26일 ‘문화재청의 매장문화재 관련 개정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개정안 내용 중 논란이 되고 있는 항목은 △지표조사 실시 기준 강화 △조사 및 검토기간 제한 △발굴유예 기준 확대 △교육기관 발굴조사 참여 제한이다.

◇지표조사 실시기준 엄격해져=제일 먼저 지적된 항목은 지표조사를 고증, 학술 등 근거가 있는 경우에만 실시하도록 조항이 개정된 점이다. 지표조사는 지면을 30cm 정도 긁어내 문화재의 흔적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작업으로, 이번 개정안에 의하면 사업면적이 3만m² 미만인 지역에서 문화재가 있다는 근거가 없을 경우 지표조사를 할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집행하는 지표조사에 자의적 집행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를 불식시키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도록 한다는 것이 그 취지다.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 강현숙 교수(동국대 경주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는 “지표조사 실시 기준 확립과 이의제기 절차 신설을 통해 개발업자들이 발굴조사의 이유에 대해 납득하고 사유재산 침해 논란도 감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5개 고고학회 측은 오히려 근거가 없는 경우에 지표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개발을 진행할 때 지표조사를 통해서 비로소 유적이 발견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 황평우 관장(전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되거나 파악되지 않은 유적이 많은 만큼 불확실한 지역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학계는 이번 개정으로 지표조사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개발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숨겨진 문화재들이 지표조사를 거치지 못해 그대로 파괴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설사 지표조사를 통해 유적이 발견되지 않더라도 ‘유적이 없다’는 사실은 의미를 갖게 된다. 중부고고학회장 권오영 교수(국사학과)는 “유적이 없다는 것이 지표조사로 명확히 밝혀져야 개발 도중에 유적이 나와 공사가 중지되고 개발업자가 벌금을 무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조사 및 검토기간 한정해=더불어 문화재청은 과거의 매장문화재의 조사 및 검토기간이 지나치게 길었다는 이유로 산정 방법에 따른 발굴기간을 지켜야 한다는 항목을 신설했다. 강현숙 교수는 “발굴조사 이후 유적 보존 방법 등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이 행정절차에 따르면 빨라도 30일, 늦어도 60일 정도가 걸린다”며 “해당 기간을 단축시켜 경제적 손실을 줄이고 주민과 사업시행자의 의견을 반영할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고고학회 등 학계에서는 이전에도 짧았던 발굴기간이 더 짧아졌다는 반응이다. 권오영 교수는 “일본에서 2년 정도에 걸쳐 진행할 발굴을 우리나라에서 6개월만에 끝낼 정도로 우리나라의 발굴 기간은 보편적으로 짧았다”며 “정해진 기간 내에 발굴을 끝내지 못하면 남아있는 유적은 그대로 파괴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시공사와 개발업자 측의 비용 부담과 경제적 손실을 방지할 장치 역시 마련되어 있다고 학계는 주장한다. 현재 민간 개발사업의 경우 발굴조사 비용을 사업시행자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지만, 3만m² 이하 면적의 지표조사 비용은 국가에서 부담하며 사업자가 개인인 경우에는 발굴조사 비용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발굴은 미루고 개발부터?=발굴유예 기준이 성토(흙을 쌓는 작업)에서 건축으로 완화된 것도 논란이 되는 사안이다. 발굴유예란 말그대로 문화재 발굴을 미루는 것으로, 발굴이 유예되면 그 면적에 흙을 쌓는 등의 개발 공사가 진행될 수 있어 추후 문화재 발굴이 어려워진다. 보통 공사가 매장문화재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 발굴을 유예하는데, 개정된 조항에서는 건축 시공 시에도 발굴유예를 할 수 있도록 해 문제시되고 있다. 5개 고고학회는 성명서에서 “단순 성토의 경우에도 매장문화재에 치명적 영향을 줄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건축시공까지 허가하는 것은 매장문화재의 보존을 보장할 수 없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황평우 관장은 “종로의 경우 유적이 많았던 피맛골이 개발되면서 매장문화재가 훼손됐고 현재 보신각도 원래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이동됐다”며 과거부터 매장문화재가 건축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가 많음을 강조했다.

◇‘교육기관 본분 다하라’ 대학 발굴 제한=대학박물관 등이 발굴조사에서 배제되면서 고고학 교육에 대한 우려 또한 이어지고 있다. 발굴조사는 크게 학술적 목적의 발굴인 학술발굴과 개발이나 건설로 유적이 파괴될 수 있을 때 진행하는 구제발굴이 있다. ‘발굴허가 관련 업무처리 지침’에 따르면 대학박물관과 연구소, 공립박물관 등에서는 교육기관의 취지에 맞게 구제발굴이 제한되고 학술조사에 한해서만 발굴이 가능해진다. 권오영 교수는 “고고학과 학생들을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발굴조사에 참여해 경험을 쌓고 고고학 전문 인력으로 나아갈 기회를 주는 곳이 대학 박물관”이라며 “대학에서 발굴조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구제발굴을 제한하는 조치는 부적절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와 같은 최근 문화재청의 개정 행보는 본래의 목적인 문화재의 보호보다 개발의 편의성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사고 있다. 지표조사를 까다로운 조건 아래 실행하거나 조사기간을 제한하는 것은 사실상 해당 지역의 개발을 편리하게 하는 조치이며 결과적으로 문화재 보호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를 지녔다는 점에서 환경에 비유되기도 한다. 하지만 권오영 교수는 “환경은 긴 시간이 흐르면 복구될 수 있으나 매장문화재는 한번 사라지면 그것으로 끝이다”고 강조했다. 재생불가능한 매장문화재의 가치가 지켜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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