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 사이 서울대학교는 몰라보게 세련돼졌다. 이제 ‘함바집’처럼 생긴 촌티 나는 건물을 서울대에서 찾아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도서관, 기숙사, 강의동과 연구동까지 가릴 것 없이 민간자본의 경연장이 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혹자는 애꿎은 법인화를 탓하며 2011년 본부 점거의 향수에 잠기기도 하지만, 사실 법인화는 민자 유입을 가속화했을 뿐이다. 국립대 시절부터도 이미 서울대는 달달한 탄산음료를 끊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투자에 갈증을 내고 있었다.

2007년 여름, 독일 유수 연구기관 연합인 막스플랑크협회 소속 학자들을 대거 초빙하여 문화관에서 개최한 한독학술교류회 당시 한 대과학자의 황당해하는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세포막 내 이온 통로의 존재를 규명하여 1991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에르빈 네어(Erwin Neher) 박사는 점심시간에 꼭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고 싶어했다. 지금만 해도 캠퍼스 어디에서나 5분 이내에 구할 수 있는 에스프레소이나, 변변한 간판도 없는 조그마한 생협 직영 카페가 고작이던 당시에 학내 지리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 방문객이 서울대에서 에스프레소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염없이 캠퍼스를 배회하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자하연 카페에 도달해 가까스로 주문을 한 박사가 받은 것은 일반 종이컵에 볼품없이 내려주는 에스프레소였다. 오후 세미나 시간 내내 연사들은 네어 박사의 날카로운 질문 세례를 받아야 했다.

이제 학내에서도 투썸플레이스, 파스쿠찌, 자바시티까지 입맛 따라 커피를 골라 마실 수 있게 되었으니 네어 박사가 다시 온다 해도 2007년 당시처럼 ‘국격 떨어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자본의 유입과 함께 고도성장중인 서울대가 다시 경험하지 못할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먼저 육중한 두산인문관이 들어서기 전 해방터에서 언제나 볼 수 있던 서울대 마지막 노점상 김밥할머니의 오후 4시 떨이 장사를 금세기 안에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귀신이라도 나올 것처럼 낡아빠진 노천강당이 5월 1일 새벽에만은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 주최하던 노동절 전야제 행사로 떠들썩해지곤 했는데, 비슷한 성격의 정당이 행여 한국에 다시 나타나 비슷한 행사를 연다 해도 서울대에는 이를 위한 공간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대학신문』1906호 1면은 ̒학내 유일의 대형 야외 문화 공간, 풍산마당 준공식 열려̓라는 제목으로 학교가 보유하게 된 또 하나의 자본형 랜드마크를 소개했다. 도서관 부정출입 문제 정도 외에는 관심을 독점할 다른 학내 현안이 다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풍산마당에 대한 보도는 머리기사 치고 지극히 조촐한 편이었다. 일간지를 보는 습관 때문에 후면에서 관련기사가 있는지 뒤져본들 찾을 수 없었다. 다른 학내 개발사업들과 비교하면 노천강당 재개발은 애초부터 아예 쟁점이라는 것이 없었다. 날 선 비판으로 관정이나 시흥캠퍼스 담론을 주도한 『대학신문』도 지난 2년간 풍산마당에 대해서만은 유난히 관대했다. 분명 지금 서울대는 풍산마당에 대해 위험할 정도로 무지하다.

유리구슬을 받고 맨하탄을 팔았다고 흔히 일컬어지는 인디언 이야기처럼 어쩌면 서울대는 풍산마당이라는 미래적 디자인의 세련된 공연장을 얻는 대가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풍산마당 무대가 동아리들의 다채로운 퍼포먼스만이 아닌 진보 성향의 문화제나 토크콘서트도 올릴 수 있는 공간인지, 옛날처럼 개인이 아무 때고 찾아가 태극권 연습을 할 수 있는지, 서울대 구성원은 새로운 서울대 노천강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대학신문』이 나서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영영 모를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대학신문』덕에 딱 관정관에 대해 아는 만큼만 풍산마당을 알아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성민

생명과학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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