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부 강민정 기자

세상의 눈과 귀가 유럽으로 쏠리고 있다. 지중해를 건너다 난파당한 난민 쿠르디의 사연과 국경에 4m 높이의 철벽을 치는 먼 나라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히 비극적이다. 이러한 비극을 당장 눈앞에 둔 유럽의 양심은 연일 뉴스에 의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그런데 이번 기사를 쓰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과연 우리나라는 쿠르디의 이야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시리아에서 내전이 터진 후 우리나라가 받아들인 시리아 난민은 고작 3명이다. 2012년 146명, 2013년 295명, 2014년 204명의 시리아인이 우리나라의 문을 두드렸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가 결코 시리아 난민에게만 인색한 것은 아니다. 난민을 처음 받아들이기 시작한 1994년 이후 올해 7월까지 난민신청자 7,735명 중 522명만이 난민이 될 수 있었다. 100명 중 6명꼴로 OECD 최저 수준이다. 우리나라가 난민 문제의 인도적 성격을 이해하고 난민협약 체약국으로서 하루 빨리 난민에게 안전한 보호를 제공해야 하는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대한민국 난민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은 국경지대의 철조망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난민심사는 까다롭고 오래 걸리기로 악명 높다.(『대학신문』2013년 11월 3일 자) 2011년 우리나라는 난민의 개념과 인정 요건을 명확히 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난민을 보호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도 ‘명확한’ 난민 요건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불법 체류자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떠밀려온 존재를 감싸기 위한 법이 도리어 이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꼴이다.

난민신청자들에게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3~4년은 희망 고문의 시간이다. 아직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상태이기에 일자리는 물론 최소한의 의료 서비스나 잠잘 곳조차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신청자가 일할 수 없는 상태의 고령자 혹은 장애인이거나, 심사 기간 도중 사고를 당하거나 출산을 앞둔 경우라면 하루를 살아내는 것조차 고역이다. 정부는 2013년이 돼서야 난민신청자들을 위한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를 설립했지만, 이 또한 극소수의 신청자만 수용할 수 있고 배경이 각기 다른 이들을 한곳에 몰아넣는 방식이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여지가 크다.

열악한 처지에 있는 이들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발의된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은 국회의 서랍 속에 묵혀 있다. 법의 골자는 부모가 난민이거나 불법체류자인 아동도 출생 등록을 할 수 있고, 5년 이상 거주 시 학교 교육과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혈세를 낭비하고 불법체류자를 양산할 것이라며 일부 보수단체가 거세게 반발했고 동료 의원들은 침묵으로 일관해 상임위원회에 상정되지조차 못했다.

외면(外面). 마주치기를 꺼려 얼굴을 돌린다는 뜻이다. 쿠르디의 주검에 가슴 아파하고 난민 아이에 발길질한 헝가리 기자에 분노했던 마음이 한반도로만 돌아오면 차갑게 식는다. 언제까지 바다 건넌 지구촌 난민 이야기에만 눈물 흘릴 텐가. 이미 우리 곁에는 우리의 눈길과 손길을 요하는 수많은 한국의 쿠르디들이 있다. 이제껏 우리가 밖으로 돌린 얼굴을 다시 안으로 돌려 일그러진 자화상을 마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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