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태국의 식용곤충 문화

“다리가 여섯 개 달린 가축”(Six-legged livestock)

▲ 사진1. 대나무웜 한입

곤충이 인류를 위한 새로운 가축이자 식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다리가 여섯 개 이상 달려 있고 여기저기 전염병을 몰고 다녔던 곤충은 인류 역사상 단순히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미식가와 고급 레스토랑 셰프는 곤충에서 숨겨져 있던 식도락을 찾고 있고 환경주의자들은 환경 재앙을 피하기 위해 다리가 네 개 달린 가축 대신 곤충을 식탁 위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2050년의 고기 수요를 지금의 거의 2배에 이르는 4억 5,500만톤으로 전망한다. 현재 70억명인 인구가 90억명으로 증가하는데다 개발도상국의 구매력 또한 증가하면서 원래 고기를 사먹기 어려웠던 사람들까지 고기를 사먹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행 방식처럼 소, 돼지, 닭을 사육함으로써 2배로 껑충 뛴 고기 수요를 충족할 경우 환경 재앙이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래에는 고기 대신에 곤충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다리가 여섯 개 달린 가축’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곤충은 사료를 단백질로 전환하는 비율이 소에 비해 6배나 높고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적인 가축이다.

하지만 곤충을 전 세계인의 식탁에 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큰 장애물은 혐오감이다. 서구인들은 식용곤충을 찾기 힘들었던 환경에 살았던 탓에 곤충을 먹는 것에 대한 사회적 터부와 혐오감이 강하다. 반면 열대지방 국가에서는 식용곤충 자원이 풍부해 오랫동안 곤충을 식용해 왔다. 20억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곤충은 여전히 전통 음식의 일부인 것이다. 하지만 서구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러한 전통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 사진2. 메뚜기 수프

그 가운데 태국은 식용곤충의 세계 수도라고 불리며 식용곤충에 관한 전통과 인프라가 탄탄한 곳이다. 하지만 최근 서구화와 근대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태국은 식용곤충에 대한 상반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식용곤충 분야의 권위자로 통하는 유엔 식량농업기구 패트릭 더스트 고위 산림관은 “서구화로 인해 식용곤충 소비가 감소하는 것이 전 세계적 추세이지만 태국은 감소에서 증가로 돌아선 몇 안 되는 흥미로운 국가 중 하나”라며 “식용곤충을 주로 소비하는 곳은 가난한 지역인 태국 북동부인데 이 지역 사람들이 방콕 등 대도시로 직업을 찾아 이주한 결과 대도시 사람들이 한동안 잊었던 식용곤충의 매력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태국인은 마트에서 메뚜기를 산다=방콕 카오산 거리, 온갖 국적의 배낭 여행객들로 가득 찬 거리 사이사이에 식용곤충을 파는 행상인들이 눈에 띈다. “정력에 좋아요.” 행상인은 커다란 전갈을 가리키며 자신의 알통을 자랑하며 말했다. 가격은 한 마리에 100~150바트, 우리 돈으로 3,300원 정도였다. 거리의 흙먼지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전갈의 독침이 그대로 남아있는 흉측한 생김새 때문인지 전갈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카오산 거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위치해 있다. 차오프라야 강이 그대로 내다보이는 방에서 일하고 있는 패트릭 더스트 씨는 처음 만난 기자에게 악수 대신에 메뚜기 스낵 제품을 건넸다. 그는 “대형 슈퍼마켓 스낵 코너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제품”이라며 “태국 사람들이 자주 사먹는다”고 말했다. 가격은 50g에 30~35바트, 우리 돈으로 1,000원 정도다. 먹기 힘든 딱딱한 부위는 제거돼 있었고 한입 베어 물자 고소하고 향긋한 냄새가 입안에 퍼졌다. 더스트 씨는 “식용곤충은 더 이상 관광객들에게 ‘너 이거 감히 먹을 수 있겠어?’(I dare you to eat this)같은 상술(gimmick)이 아니고 정말 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메뚜기 스낵이 담겨 있는 세련된 디자인의 포장지 뒷면에 적힌 영양 성분 표시는 식품안전에 대한 신뢰감을 줬다. 실제로 이 제품은 전 세계로의 수출을 준비하는 단계에 있다.

▲ "새우도 겉보기에는 맛있어보이지 않아요. 곤충도 마찬가지죠. 저는 메뚜기의 맛을 좋아해요. 마음을 열고 맛을 느껴보세요" - 유엔 식량농업기구 패트릭 더스트 고위 산림관

더스트 씨는 산업적 가치가 가장 큰 식용곤충으로 메뚜기를 꼽았다. 우선 메뚜기는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메뚜기가 야생에서 소규모로 채집됐으나 1998년 태국에 처음으로 메뚜기 사육 기술이 도입된 이후로 메뚜기는 사육 농가에서 대량생산되고 있다. 태국에는 메뚜기 사육 농가가 2011년 기준으로 2만호 정도로 한해 총 7,500톤을 생산한다. 낙후된 지역인 태국 북동부에서 주로 중, 소형으로 운영되는 사육 농가에서 메뚜기는 작은 가축(minilivestock)으로 불린다. 메뚜기의 크기가 작아서이기도 하지만 사육 면적이 작고 사료와 물 소비량이 현저히 적어서다. 특히 메뚜기 사육은 자기 소유의 땅이 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 여성 등 사회 취약 계층도 손쉽게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다.

메뚜기는 태국의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곤충이기도 하다. 향과 맛이 강하지 않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데다 단백질, 오메가-3 등 불포화 지방산, 미네랄이 풍부해 영양적 가치 또한 육류나 생선에 뒤지지 않아서다. 그렇다보니 가격은 메뚜기 1kg당 300~350바트로 75~100바트인 닭고기에 비해 3~4배 이상 비싸다. 더스트 씨는 “태국에서는 중산층 이상의 소득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메뚜기 등 식용곤충을 영양 스낵으로 먹는다”며 “가격이 비싼 것은 메뚜기에 대한 마케팅 전략이 스낵에 치중된 탓도 있다”고 말했다. 태국에서는 메뚜기가 가난한 사람보다는 돈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별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인기가 좋은 메뚜기조차 대부분 간식으로만 소비되다 보니 식용곤충의 세계 수도로 불리는 태국에서도 식용곤충의 수요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더스트 씨는 “식용곤충 산업은 아직 규모가 크지 않고 시작단계에 있을 뿐”이라며 “식용곤충을 가루, 반죽으로 가공하고 요리 재료로 활용하는 방식을 개발하는 등 먹는 방식을 다양화해 수요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3. 메뚜기 연꽃잎 스낵

 

◇눈을 감고 코와 입을 열어라=“셰프가 물방개를 구운 다음 배를 갈랐어요. 굉장히 흉하게 생겼지만 냄새는 굉장히 인상적이였죠. 레몬향 같았어요.”

프랑스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국제적인 요리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 방콕 지점에서 지난 2월 ‘식도락의 맥락에서 본 곤충’을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를 개최한 크리스토프 멀시에 씨는 곤충의 가장 중요한 미각적 가치로서 특유의 향을 꼽았다. 멀시에 씨는 “곤충은 당신이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향을 가지고 있다”며 “곤충의 생김새를 잊을 수 있다면 향이 정말 좋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미나에서는 곤충의 생김새를 숨기고 향과 맛만 느낄 수 있도록 한 곤충 요리만 소개됐다. 멀시에 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심리적 장벽을 넘는 것”이었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 사진4. 버터와 허브를 곁들인 왕풍뎅이 칩

개미는 향이 가장 독특하고 심오한 식용곤충 중 하나다. 개미가 의사소통을 할 때 사용하는 페로몬에는 소나무향, 바닐라향, 감귤향, 계피향 등 온갖 향기 물질이 포함돼 있다. 또 개미가 적과 싸울 때 사용하는 방어 물질인 개미산 역시 레몬과 비슷한 향과 맛을 띤다. 멀시에 씨는 “태국 음식은 향의 혼합과 폭발을 특징으로 한다”며 “태국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오믈렛에 개미를 넣어 먹는 방식으로 개미의 시큼한 향을 즐겨왔다”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에서 ‘노르딕푸드랩’ 소속 로베르토 플로어 셰프는 흔히 과일즙을 넣어 먹는 증류주인 진(gin)에 개미에서 추출한 즙을 넣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에 지난 5월 노르딕푸드랩이 캠브리지 양조장과 손잡고 앤티 진(Anty Gin)을 출시했다.

한편 요리에서는 향과 맛뿐만 아니라 식감 역시 중요한 요소다. 멀시에 씨는 “아직까지는 곤충 요리에서 곤충 외골격 특유의 바삭거리는 식감은 사람들에게 선호되지 않는다”며 “외골격을 제거하거나 애벌레 단계의 곤충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애벌레 단계의 곤충을 구우면 소고기나 닭고기와 비슷한 식감을 내고 보기도 훨씬 좋다”고 말했다.

▲ "저희 요리학교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이예요. 주방에서 쫓아내야 할 대상인 곤충을 솥에 넣고 사람들의 입에 넣기까지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어요" - 르 코르동 블루 방콕 지점 크리스토프 멀시에

이런 점에서 대나무 웜(bamboo caterpillar)이나 밀웜(mealworm) 등 애벌레 단계의 곤충은 서구인이나 한국인처럼 식용곤충의 전통이 약한 국가의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곤충으로 꼽힌다. 현재 한국의 식품 산업, 학계는 애벌레를 이용한 요리 세미나를 여는 등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밀웜을 식품으로 허가한 데 이어 2016년까지 곤충 7종을 식품으로 허가할 계획을 밝히면서 곤충의 식품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침, 점심, 저녁에 곤충 요리를 식탁에 올리는 날이 과연 올까? 더스트 씨는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서구인 중에는 날생선을 절대 먹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스시가 팔리면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뉴욕, 도쿄, 파리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지금 곤충 요리가 팔리고 있다.

 

글·사진: 김준엽 전임기자

identifyitem@snu.kr

사진 출처(①~④): 르꼬르동 블루 두싯 요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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