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

지난 2일(수) 터키 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세 살 꼬마의 사진이 전 세계를 울렸다. 엎드린 채 모래에 얼굴을 묻은 이 꼬마는 시리아 출신 난민 아일란 쿠르디다. 시리아 북부를 점령한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IS)의 위협을 피해 지중해를 건너던 쿠르디 가족이 타고 있던 고무보트가 뒤집히며 일어난 비극이었다. 쿠르디 가족처럼 내전과 박해를 피해 자기 땅을 떠난 이들이 유럽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유럽에 도움을 청하는 이들은 누구고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난민, 그 이름은 어떻게 얻나요?
 

난민의 지위는 국제법이 보장한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지 못할 때 이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국제사회 차원에서 보호하기 위함이다. 난민의 정의는 1951년 국제연합(United Nations, UN)이 채택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급증하자 이들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원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난민협약은 난민을 ‘인종·종교·정치적 의견 등의 이유로 박해의 공포가 있어 출신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받기를 원하지 않거나 또는 출신국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난민협약은 지리적으로는 유럽에만, 시간상으로는 1951년 전에 발생한 난민에만 적용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1967년 제약 조건을 삭제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난민의정서)가 작성됐다.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는 이후 난민 관련 국제문서나 개별 국가의 난민법 제정에 본보기가 됐고, 현재 이에 가입한 145개국은 자국 내 난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게 됐다.

난민(refugee)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났다는 점에서 이주민(migrant)과 다르다. 이주민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자발적으로 떠났기 때문에 이들이 도착한 국가가 요구하는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추방될 수 있다. 반면 난민의 경우 불법적인 통로로 입국했더라도 해당 국가는 그들을 위협이 도사리는 고국으로 송환할 수 없다. 난민과 이주민은 체류 기간과 목적에서도 차이가 있다.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는 “난민은 원래 있었던 고향의 상황이 안정되면 돌아간다는 약속하에 인도적 차원에서 받아준다”며 “반면 이주민의 목적은 도착한 땅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권 획득이나 일자리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설명했다.

 

시리아 내전으로 고국 떠나는 난민들
 

올해 유럽을 떠도는 난민의 수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엔난민기구(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UNHCR)는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이 다음해까지 85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최근 이처럼 유럽에 홍수처럼 난민이 밀려든 것은 시리아 내전 탓이다. 5년째 이어지는 내전이 끝을 보이지 않자 시리아 국민들이 총탄이 떨어지지 않는 곳으로 몸을 피했기 때문이다. 40년 넘게 이어온 아사드 대통령 부자의 독재로 쌓인 시민들의 불만이 아랍의 봄을 기점으로 폭발하면서 내전이 시작됐다. 2011년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에 정부가 육군을 동원해 포위 공격하면서 시위는 무장 폭동으로 번졌고 정부군의 진압은 더욱 강경해졌다. 이후 이스라엘·터키·레바논 등 주변국이 개입했고 민주화 요구로 시작된 내전은 알라위트파-시아파 정부군과 수니파 반정부군 간의 종파 갈등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다 수니파 무슬림 무장단체 IS가 이라크를 넘어 시리아까지 손을 뻗쳐 국토 대부분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됐다.(『대학신문』2014년 11월 23일 자)

지금도 폐허가 된 국토를 등지고 살길을 찾아 떠난 시리아 난민이 매일 수천 명에 달한다. 올해 유럽으로 들어온 난민의 53%가 시리아 출신이며, 전세계 국가 중 가장 많다. 시리아를 떠난 난민들은 처음에는 국경을 맞대는 터키·레바논·요르단에 난민촌을 지었다. 하지만 늘어나는 난민을 더 수용하기엔 인접국의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고, 특히 레바논은 수니파 난민의 유입으로 종교적 갈등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인접국이 포화상태가 되자 시리아 난민은 터키·그리스·세르비아·헝가리를 거쳐 서유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리아 외에 내전을 겪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소말리아의 국민들도 유럽행 보따리를 싸고 있다. 올해 1분기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에 도착한 난민 25만명 중 약 90%가 시리아·아프가니스탄·이라크 출신이다.

 

난민 수용 두고 유럽 내 불협화음
 

난민 수용에 대한 유럽 각국의 대응은 제각각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추가로 3만여명, 2만4천여명의 난민을 수용할 예정이지만 헝가리·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강력히 거부하고 있다. 서유럽에 비해 경제적 여유가 모자란 탓도 있지만 종교적인 부담감도 한 몫 한다.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무슬림 난민이 몰려와 유럽의 번영과 정체성, 기독교적 가치가 위협받을 것”이라며 거부감을 드러내며 최근에는 국경선에 3중 철조망을 설치하는 초강수를 뒀다. 슬로바키아·폴란드·키프로스는 기독교 난민만 수용하기로 밝혔다.

전문가들은 국가 간 입장이 엇갈리는 가장 큰 이유로 난민을 수용할 경제적 여건이 다르다는 점을 꼽는다. 난민협약 체약국은 난민에게 자국민과 동등한 복지 혜택을 제공해야 하는데 국가마다 복지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제 상황이 좋은 독일과 달리 영국이나 헝가리는 실업률이 높고 경제가 어려워 자국민으로부터 걷은 세금으로 난민을 위한 대규모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든 형편이다. 정상률 교수(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는 “프랑스의 경우 2011년 리비아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을 수용하는 데 하루에 1인당 30달러 정도가 들어 골칫거리”라며 “수만 명의 난민이 오면 굉장히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로 안 받아들이려고 계속 미루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각국의 종교적인 상황 역시 난민을 받아들이는 데 영향을 끼친다. 동유럽 국가들은 중동·아프리카 출신 무슬림 난민이 쏟아져 들어오면 기독교적 복지 국가가 위험에 빠진다는 것을 명목으로 난민 유입에 반대한다. 유럽 전체적으로 이슬람권 출신 인구가 많아지는 현상에 대한 거부감이 만연하다는 지적도 있다. 서정민 교수(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는 “유럽과 아라비아가 합쳐진 유라비아(유럽의 이슬람화)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유럽인들은 자국 내에서 이슬람권 출신 비중이 높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특히 이슬람권 사람들은 아기를 많이 낳기 때문에 인구 구성에서 아랍 사람이 너무 많이 늘어나는 것도 유럽인들이 우려하는 점”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럽으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몰려드는 난민 수용에 유럽 국가들이 인색한 태도를 보이자 위험천만한 불법 이민 중개가 기승을 부린 것이다. 알선 자체가 불법이다 보니 수송 수단의 안전성은 물론 기본적인 물과 음식조차 오랫동안 입에 대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들 브로커들은 수명이 다한 배에 난민들과 선원들을 싣는다. 항해 중 악천후나 장애물로 위험에 처하면 선원들은 도망가고, 남은 난민들은 해안 경비대가 구난신호를 보고 구조하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난 1월 지중해에서 표류하다 이탈리아 해안 경비대에 구조된 난민선 이자딘호가 대표적이다. 이자딘호는 50여년간 가축들을 옮겼던 배다. 구조 당시 선원들은 이미 배를 빠져나갔고 연료와 전기는 끊긴 상태였다. 이렇게 지중해를 건너던 도중 바다에서 숨진 난민은 올해만 해도 2,643명에 달한다.

 

유럽 난민 위기, 당장의 해법은 없다
 

가장 완벽한 해결책은 ‘살 수 없는 땅’이 없어지도록 분쟁이 끝나는 것이지만 현재 진행 중인 싸움은 금방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 우세하다. 인남식 교수는 “궁극적인 해결책은 난민이 나오는 대로 다 받아줘서 잘 살게 해주자가 아니라 난민을 발생시키는 근원지를 바꿔놓는 것”이라며 “그러나 시리아나 이라크가 정치적 안정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고 말했다. 분쟁 지역이 정치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국제 사회가 힘쓰는 것이 사태 해결의 첫 걸음이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서정민 교수는 “과거 미국과 러시아가 시리아 사태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해 제대로 된 결의안이 나오지 않아 시리아 사태가 지금까지 장기화된 것”이라며 “국제 분쟁에 대한 국제 사회의 외교적 노력이 배가 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난민 유입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차선책으로 제시된 것이 ‘난민쿼터제’다. 전례 없는 규모의 난민을 한 국가가 떠맡을 수는 없으니 이웃 국가끼리 나눠 수용하자는 취지다. 지난 9일 유럽 의회(European Parliament, EP)에서 장 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은 유럽이 현재 4만명의 난민에 12만명을 추가적으로 수용해 인구와 GDP 등을 반영해 회원국에 할당하는 난민쿼터제를 제의했다.

초안에 의하면 독일·프랑스·스페인 3개국이 추가 수용 인원 중 60%를 감당한다. 서유럽 국가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지만 동유럽은 “의무적이고 영구적인 쿼터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서정민 교수는 “난민들이 내년까지만 온다면 쿼터를 나눠서 수용하고 끝날 테지만 단기적으로 끝날 상황이 아니라서 유럽 국가들도 정책을 결정하기 어렵다”며 “산업이 발달한 독일과 경제 상황이 다른 대부분의 국가는 쿼터제를 받아들이면 자국에 경제적으로 너무 큰 부담”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난민쿼터제는 14일 각료회의에서 유럽연합 26개 회원국의 표결을 통해 운명이 결정된다. 세 살 꼬마 쿠르디의 참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유럽 국가들이 힘을 합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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