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자본에 종속될 때, 화려한 말이 현실을 가린다
과학이 자본에 종속될 때, 화려한 말이 현실을 가린다
  • 대학신문
  • 승인 2015.09.19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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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과학으로 본
유전자, 세포, 뇌
힐러리 로즈·스티븐 로즈 저
김동광·김명진 옮김|바다출판사
|456쪽|2만 5천원

오랜 시간 과학은 ‘진리’의 동의어로 사용돼왔다. 하지만 과학이 세계대전을 거치며 국가의 제도에 포섭되기 시작한 후로 더 이상 보편과 객관을 상징할 수 없게 됐다는 우려가 커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급진과학운동’(Radical Science Movement)은 국가에 포섭돼 수단화된 과학을 경계하는 진보적 운동을 표방해왔다. 급진과학운동가들은 과학자들의 연구 모두를 ‘자연 탐구를 통해 밝힌 진리’로만 여겨선 안 되며, 그 제안 뒤에 있는 자본의 흐름과 이데올로기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꾸준히 외쳐왔다.

『급진과학으로 본 유전자, 세포, 뇌』는 이러한 급진과학운동의 선두주자 힐러리 로즈와 스티븐 로즈 부부의 40년간의 연구가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저명한 과학사회학자인 힐러리 로즈와 현직 생명과학자인 스티븐 로즈는 급진과학운동가의 시각으로 현대 생명과학계에 팽배한 상업화를 진단한다. 그들은 이 책을 통해 현대 생명과학 중 가장 거대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유전체학, 재생의학, 신경과학의 뒤에 숨겨진 자본과 과학의 결탁을 파헤치고, 대중을 상대로 허황된 미래를 약속하고 있는 상업화된 과학의 뒷면을 들춘다.

세 개의 성배와 석 잔의 거품

현대 생명과학계를 흔들었던 세 가지 주제는 모두 한때 성배에 비유됐다. 첫 번째 성배는 ‘인간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로, 인간의 DNA 염기서열을 컴퓨터로 모두 읽어내어 자료화하는 사업이다. DNA는 생명활동에 필요한 정보들을 A, G, C, T라는 네 가지 형태의 염기의 배열로 암호화된 물질이다. 과학자들은 이 DNA에서 염기들이 어떻게 배열됐는지를 모두 파악하면 생명활동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두 번째 성배인 ‘배아줄기세포’에 대해서도 과학자들은 이것이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의 모체라는 점을 이용해 원하는 세포를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다. 마지막 성배인 ‘뇌’의 작용원리를 밝힌다면 인간의 모든 정신 활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많은 과학자로 하여금 신경과학 연구에 뛰어들게 했다.

저자들은 위의 세 영역이 고가의 기자재와 다수의 인력, 그에 따르는 자본을 요구하는 ‘거대과학’의 반열에 올라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위해선 여러 대의 슈퍼컴퓨터를 오랫동안 운영할 연구비가 필요하다.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기 위해선 난자뿐만 아니라 고가의 세포배양시설들이 필요하며, 뇌는 어떻게 연구하고자 하느냐에 따라 슈퍼컴퓨터와 세포배양시설 둘 다 혹은 그 이상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구들을 뒷받침하는 자본은 주로 국가나 과학연구를 지원하는 대형 재단으로부터 나온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과학자들은 국가와 재단에 종속될 수밖에 없으며, 연구주제를 선정함에 있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만일 이런 거대과학의 영역에서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주도하고자 한다면, 그는 기업가로서 주변 자본가들의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이때 저자들은 과학자가 자본가들에게 투자를 촉구하는 과정에서 연구과제에 대해 과하게 부풀려진 청사진이 그려진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만 같이 비치고, 이해관계에 포함되지 않은 과학자마저 현혹할 우려를 내포한다. 실제로 인간게놈프로젝트에 대해 한 학술지는 DNA의 염기 배치 순서를 파악하는 것이 모든 질병에 대한 해결책 및 조기 예방책을 개발하고 나아가 사회 전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허황한 사설을 싣기도 했다. 배아줄기세포 역시 모든 불치병을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만능열쇠 같이 여겨진 바 있으며, 과학자들은 뇌 속에서 인간 정신활동의 전부를 파악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고 저자들은 덧붙인다.

자본이 ‘환원주의’의 작두를 타다

특히 저자들은 기업가가 된 과학자들이 과장된 기대를 제시하는 것 너머엔 환원주의라는 생물학의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다고 역설한다. 환원주의적 자세를 취한 과학자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을 이루는 세포를, 세포를 이해하기 위해 그것을 구성하는 물질을,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원자를 연구하는 식으로 범위를 점점 좁혀나간다. 이들은 원자에 대해 파악한 후엔 그로부터 역으로 물질을, 세포를, 인간을 이해하는 식으로 지식을 구성해 나간다.

책에 따르면 환원주의의 문제는 이러한 사유의 방식 속에서 과장된 가설들이 나올 수 있다는 데 있다. 환원주의는 기본 단위에 대한 파악이 곧 전체에 대한 파악으로 확장된다고 보는 것으로, 이는 현대 생명과학의 밑바닥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에까지 다다른다. ‘모든 생명활동의 정보를 DNA 서열에서, 모든 불치병에 대한 해답을 줄기세포에서, 모든 정신활동의 원리를 뇌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가들이여 투자하라, 우리는 이 연구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될 것이다!’

환원주의에 기반을 두고 화려한 수사들로 포장된 세 분야는 결국 이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상당한 자본을 얻어갔다. 하지만 저자는 묻는다. 기업가들이 약속한 미래 중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이 있는가?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결과를 놓고 보면 생명과학자들은 역설적으로 DNA가 정보의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줄기세포 연구는 난자 기증 문제를 넘어서서 이를 활용한 치료의 부작용이 지속적으로 보고되자 임상 실험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뇌를 연구할수록 정신질환의 원인과 요인은 다양하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제약회사들은 신경정신과 질환 치료제 개발에 손을 떼고 있다. 성급한 환원주의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 데만 그친 것이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미래를 약속하는가

저자들은 이런 거대과학이 환원주의를 내세워 국가나 자본가의 투자를 얻어낸 뒤 시민들이 연구에 동조하게 만들어 이익을 얻으려는 측면이 있다고 경고한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초창기에 꿈꾼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내자 이후 DNA 바이오뱅크 사업이 뒤를 이었다. 이는 특정 국가 전체 혹은 일부 구성원을 대상으로 생물학적 시료를 채취한 뒤 시료에 포함된 DNA 염기 서열을 모두 읽어내 자료화하는 사업이다. 아이슬란드 정부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은 DNA 바이오뱅크 기업인 디코드 사는 아이슬란드 국민의 DNA 서열을 수집해 보건의료정책과 융합시킬 목적으로 전 국민에게 이를 설명하는 팜플렛을 발송했다. 이 팜플렛에는 정보 제공을 거부할 권리가 소개돼 있을 뿐 방법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인간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의 난자를 실험재료로 얻는 과정을 ‘이타적’이라고 포장하는 사례도 있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자인 앨리슨 머독 교수(영국 뉴캐슬대)는 난자를 기증한 여성들을 이타적인 사람으로 격상시켜 ‘연구자들에게 난자를 공급하는 원천을 마련하는 데 활력이 되길 바란다’는 논평을 싣기도 했다. 신경과학계는 정신질환 진단 기준을 바꿔 환자의 범위를 확장하고, 이전의 약보다 나을 것이 없는 신약을 처방하는 식으로 대중을 제약 시장으로 유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저자들은 아래서부터 위로의 변화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자본과 손잡은 생명과학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생명과학에 ‘민주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일반 대중은 과학적 지식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반기를 든다. 책에서는 미국왜소증협회(Little People of America)가 그들만의 DNA 바이오뱅크를 설립해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사례가 소개된다. 이들은 거대기업의 바이오뱅크를 떠나 그들만의 통제권을 가지고 이들이 신뢰하는 연구진들에게 자신들의 유전정보 데이터를 선택적으로 제공하며 대중적, 민주적 과학의 면모를 띠었다.

화려한 수사와 희망찬 미래를 의심하라

물론 이 책은 ‘현대 생명과학의 상업화’를 꼬집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지만, 저자들이 현대 생명과학의 전반을 비판한 것은 아니라는 걸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저자들이 지적하는 분야는 생명과학 중에서도 필연적으로 첨단기술이 요구되는 거대과학으로 변모한 세 분야다. 책에는 거대과학화된 세 분야가 상업화 과정을 거치며 일으킨 폐단이 등장하는데, 이는 현대 생명과학의 넓은 분야 중 특정 분야에 가깝다.

또 저자가 제시한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층위에 다소 차이가 있어 아쉬움이 따른다. 그들이 책의 뒷부분에서 제시한 ‘민주적 과학’은 기업과 정부가 주도하고 시민의 참여를 강요하는 식의 사업에 맞서는 대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환원주의에 대한 물음은 현대 생명과학뿐만 아니라 과학 일반에 대한 논쟁으로, 과학 활동 그 자체를 향한 본질적인 물음이다. 이를 어느 정도 환원주의를 상정할 수밖에 없는 기존 ‘과학’에 의한 민주화로 메울 수 없다.

급진과학운동의 시각으로 유전체학·재생의학·신경과학을 면밀히 파헤친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연구가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것이라는 낙관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이 책은 상업화된 생명과학의 실태를 지적하고 환원주의에 물음을 던져 생명과학의 근본에 대한 물음까지 포괄하고자 한다. 책에 드러난 저자들의 견해가 앞으로 더 복잡다단해질 현대 생명과학에서 대중이 길을 잃지 않도록 길을 밝혀 줄 ‘민주적 과학’의 한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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