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
박태균 저|한겨레출판
|350쪽|1만 6천원

가족을 위해 타국의 전장에 나서는 가장. 잔인한 베트콩들의 위협을 무릅쓰고 현지 주민을 돕는 정의로운 군인. 지난해 겨울 천만 관객이 선택한 영화 「국제시장」이 그린 베트남 파병 한국군의 모습이다. 한국 박스오피스 역대 2위의 자리를 차지한 이 영화는 1950년대 한국전쟁부터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관통하며 기성세대에게 뜨거운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 기성세대의 열광만큼이나 뜨거웠던 것은 신세대와 평론가들의 비판이었다. 베트남전에 대한 묘사를 비롯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영화라는 쓴소리가 거셌다.

지난해 파병 50주년을 넘어 올해에는 종전 4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사회는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또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여기에 박태균 교수(국제대학원)는 지난 10년간의 연구를 모아 출간한 그의 저서 『베트남 전쟁: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을 통해 우리 사회가 베트남전을 기억하는 방식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대답한다. 책에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수호’와 ‘한강의 기적이라는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요약되는 베트남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억이 어떤 부분에서 반쪽짜리 기억인지 짚어낸다.

박 교수는 베트남 파병의 이유가 어떻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수호’로 기억될 수 있었는지, 그 만들어진 기억의 근원, 파병의 진짜 이유를 검토한다. 저자는 자국의 방위조차 스스로 책임지지 못했던 한국이 국내외 안보가 불안정한 시기에 해외에 대규모 전투 병력을 파견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꼬집는다. 이에 대해 그는 베트남 파병은 대외적으로는 공산주의 세력 확산을 막고 자유세계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한미 동맹의 공고화를 통한 지원 유치와 국내 정치 안정이 주목적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있는 한국군을 마치 ‘알라딘의 램프’처럼 생각하며 미국에 온갖 지원을 요청한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또 당시 박정희 정부는 베트남 파병에 주의를 돌려 한일협정 반대 시위 등을 침묵시키고 국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유신 체제를 선포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저자는 베트남 전쟁이 자유주의 진영의 남베트남과 공산주의 진영의 북베트남 사이의 이념 전쟁이라는 인식도 반쪽짜리 기억임을 지적한다. 책에 따르면 베트남전은 부패한 남베트남 정부와 이에 반발하는 남베트남 주민들의 갈등에서 시작됐고 위기를 느낀 남베트남 정부가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국제전으로 불거졌다. 저자는 미국을 도와 한국군이 지키고자 했던 남베트남 정부가 정말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이름으로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정부였는지는 반문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한다.

이어서 박 교수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가 따라붙는 베트남 경제 특수라는 기억에도 물음표를 찍는다. 그는 많은 기업이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큰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도덕과 분배의 관점에서 그러한 경제 성장은 맹점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도덕적 측면에서 저자는 경제 특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철저히 베트남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일본 극우 세력이 한국전쟁으로 인한 한국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전쟁 특수에 집중한 것처럼 한국사회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인식 역시 이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또 저자는 분배적 측면에서는 실제로 목숨을 바쳐 전장에서 싸운 참전자들에게 경제적 보상이 충분히 돌아가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파월 군인과 노동자에게 주어진 월급은 타국 병사들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었으며 그마저도 계속 체납됐다. 고엽제 피해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참전자에 대한 보상도 현재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기억”이라며 우리가 반쪽짜리 기억에 의존해 지난 실수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고 있음을 꼬집는다. 베트남 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는 뭇매를 맞았고, 많은 참전 군인들은 고통 속에서 나날을 보내는가 하면, 일본 극우 세력은 ‘너희도 베트남전에서 똑같이 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린 어떤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아직 끝나지 않은, 베트남전을 반성하려는 움직임 속에 보다 정확하게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베트남 전쟁: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

박태균 저|한겨레출판

|350쪽|1만 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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